크리스마스 날,
성명서를 공유하다가
마주하는 말들에 놀란다.
"문프의 결정을 지지합니다"
"큰 뜻이 있으리라 믿고 응원합니다"
아.. 저 분들의 신심은 어찌나 두터운지
저 사람들에 비하면 나의 신앙이란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의
찢겨진 마음을 보듬어 달라는
기도 제목을 나누다가 그만 울컥하여
조금 긴 글을 쓰고 말았다.
"작년 겨울 유가족 분들이
7주기까지 진상규명을 외치며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했습니다.
총선도 이겼고 기다림에도 지쳤을 때죠.
청와대는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고
수사 결과는 무혐의, 무혐의, 무혐의...
가족분들은 절규하며 삭발했습니다.
영하 18도까지 내려가는 그 노숙농성 기간에
비닐 한장도 들이지 못하게 해서
피켓으로 집을 짓고 농성하셨고요.
같은 기간 김진숙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위한
단식도 있었습니다.
저는 선거를 위한 유불리나 정치적 결단보다 사람들의 고통 받은 마음이 훨씬 더 아프고 중요합니다.
박근혜 퇴진을 위해 촛불 들고,
1인 시위 하고, 대선 때 길에 나가서 뛰었던
열혈 지지자인 저의 상처도 상처지만요.
촛불로 세운 정부를 지지하고 포용하는게 어디까지일지를 생각합니다.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 앞에
적폐청산, 검찰 언론 재벌 개혁,
노동 존중, 비정규직 문제 해결,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함께 해 나가리라 믿었던 정부가
이재용은 가석방하고
박근혜는 사면하는 이 현실이
정말 쓰리고 아픕니다.
내 자식이 죽은 부모님들의 절규를 들으며,
진실로 그 날 바다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격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분들이 맞이할 크리스마스가 어떠할지 가늠하기 어려워서,
크리스마스에 어울리지 않는 글을 드림을 용서하세요."
2년 전 12월에 썼던 글을 다시 읽는다.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날
나는 죽음의 망각을 말하고 싶다.

*기억되지 않는 죽음, 혹은 죽음의 망각* 12.01.19
벌써 12월 이라니,
시간의 흐름이 눈부시다.
오늘 향린교회 예배시간에는
오랜만에 펑펑 울었다.
공동기도 시간에 기도 제목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매일 같이 죽어나가는 노동자들과,
마음이 아파 스스로 생을 버리는 사람들,
하루가 멀다하고 떠오르는 총기 사고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겨울, 이 추운 날씨에
여전히 철탑 위에 매달린 김용희님과
이 계절이면 더 고통 받을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림절에 우리는
예수의 탄생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오늘의 성경 구절과 말씀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죽음을 만났다.
마태복음 2장 16~18절
16.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
17.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울부짖으며 크게 애곡하는 소리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우는데
자식들이 없어졌으므로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얼마나 끔찍한 이야기인가.
자기의 권력에 대적할지도 모를
한 아이를 없애기 위해
수십명인지 수백명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을 모조리 죽였다니.
옹알이를 하고 아장아장 걷고
엄마 아빠를 부를 법한 아기들의 죽음.
그 아이들은 이름도 무엇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였다는 잔혹한 성경 구절에만 남았다.
그 어린 아이들은 외치지 못했고
엄마들이 울며 부르짖었다.
나의 고국에서나,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나
죽음은 매일 일어난다.
사람의 안전보다 효율성을 우선하는
자본의 땅에서 반복되는 노동자의 죽음,
마음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삶을 저버리는 숱한 사람들,
어떤 정권에서도 해내지 못하는,
어쩌면 할 의지가 없는 총기 규제.
그리하여 어제는 다섯, 오늘은 열
때로는 순식간에 수십명이 죽어나가는
총기 사고들이 자꾸만 반복된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민식이법'이 아직 통과되지 못했다.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를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아이들의 목숨과 거래하는
금수만도 못한 야만의 정치에
어머니들은 또 울었다.
세월호참사 부모님들도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도
돌아오지 못하는 자식들을 가슴에 묻고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자고 외치고 있다.
세상은 그 분들께 제대로 응답하고 있었던가.
12월 1일은 국가보안법 제정일,
이 법으로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들을 죽였던가.
악법은 하루 속히 폐지하고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야 할 때.
그리고 이 국가보안법으로 심판해야 할
기무사 문건을 작성하고 방관한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설리와 하라,
젊고 아름다운 생명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연예가 소식에 어두워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들에 정말 아팠다.
폭력 가해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협박을 받는 일,
그리고 온갖 소문과 악플들이 쏟아지는 일.
직접 총 칼을 들지 않았으면 죽이지 않은 것인가.
어떤 이들은 함께 가해자였고
어떤 이들은 나처럼 어리석은 방관자였기에
그 죽음들에 우리는 조금씩
책임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자식을 떠나 보낸 아이의 엄마가 울부짖는 동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면
그래도 우리가 사람답게 산다고 할 수 있을까.
법을 상정했다고 위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은 못했으니까.
그 법의 통과를 막은 자들도
그들이 막게 내버려 둔 이들도
모두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목사님이 말씀하십니다.
"기쁘다 구주, 아직 안 오셨어요.
지금은 기뻐해야 할 때가 아니라
이 엄마들의 울음 소리를 들어야 할 때 입니다."
이 죽음들을 그냥 지나가게 하지 맙시다.
기억합시다. 잊지 맙시다.
진실의 반댓말은 어쩌면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니까요.
글 이유진 | 로스앤젤레스 평화활동가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열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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