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의 작은 도시 글렌데일이 미국 최초로 소녀상을 세우면서 세계지도에 자리를 잡은 지 5년이 되었다. 6년 전, 캘리포니아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각 도시와 대학의 문을 두드리고, 할머니를 모셔와 강연회, 전시회를 하고, 마켓 앞에 모금함을 들고 나가 한푼 두푼 모금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가주한미포럼이 앞장섰지만, 그 뜻을 적극 지지하고 함께 나서준 글렌데일 시의원들과 우리 한인 동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미국에는 세계적인 이슈에 관해 지방 자치체가 양심적인 목소리를 내는 오랜 전통이 있다. 아르메니안 인종청소를 잊지 않고 해마다 기념하는 인권의 도시 글렌데일시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고, 가장 대규모로 이루어진 국가주도 성노예 범죄에 대해 캘리포니아 최초로 목소리를 내고 기림비를 세운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글렌데일시 지도자들은 일본의 극우정부가 지원하는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공격에 당당히 맞섰고, 그들이 제기한 소녀상 철거소송은 항소에 항소를 거듭하여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결과는 글렌데일의 승리요, 표현의 자유의 승리요, 할머니들의 승리였다.
글렌데일 소녀상은 돌아가신 할머니들을 추모하고, 아픈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성지(聖地)가 되었다. 더 나아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전시 여성 성폭력 문제에 대해 인식을 새로이 하는 교육의 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랑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특히 용감하게 침묵을 깨고 배상과 교육을 위한 세계적인 운동을 이끌고 있는 우리 할머니들의 이슈를 제 일처럼 끌어안은 글렌데일 아르메니안계 지도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티 리더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글렌데일의 모습은 타주에까지 감명을 주었고, 이로 인해 조지아주 애틀란타와 샌프란시스코에도 ‘위안부’ 동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본정부는 해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역사왜곡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아직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혀 모르는 대다수 미국인들과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인식을 높이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가주한미포럼에서는 지난 2016년 커뮤니티 캠페인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캘리포니아 고등학교 세계사 과목에 포함시킨 후, 교사들에게 수업지도안과 교육자료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교사들이 ‘위안부’ 문제를 쉽게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CARE)’라는 이름으로 주류사회에 더 깊숙이 파고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이끌어 오신 지난 27년간의 투쟁을 되돌아 볼 때, 대부분 자원봉사에 의존하여 전 세계를 상대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산을 옮겨 왔는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일본정부가 ‘역사전’의 전쟁터로 규정한 미국 땅에서 할머니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이 길에 우리 한인사회가 든든하게 함께 하고 있으니 자, 이제 어느 산을 옮겨볼까.
글 김현정 가주한미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