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5월25일, PM 11:44:21 파리 : 5월26일, AM 06:44:21 서울 : 5월26일, PM 01:44:21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사진필진 l Kor-Eng    
 
열린기자
·열린 기자 (562)
열린 기자
뉴스로는 네티즌 여러분을 위한 ‘열린 마당’입니다. 여러분이 취재한 이야기와 사진들, 화제와 에피소드, 경험한 모든 것들을 인터넷 세상의 다른 분들과 함께 공유하세요. 타 매체에 올린 글들도 출처만 밝힌다면 환영합니다. 뉴스로 관리자(newsroh@gmail.com)에게 보내주시면 편집 과정을 거쳐 ‘열린 기자’ 코너에 게재해 드립니다.

총 게시물 562건, 최근 0 건 안내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주부대상 토크쇼의 트루맛쇼

글쓴이 : 김재환 날짜 : 2011-08-16 (화) 12:38:47

 

주부대상 아침 토크쇼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몇 가지 패턴이 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상투적인 제작 방식에 대해 알아보자.

방송 3사 주부 대상 아침 토크 프로그램에 톱스타는 안 나온다. 대신 ‘한 때 톱스타’들이 우리의 아침을 책임진다.

이 분들이 오랜만에 방송에 나와서 꼭 공개하는 건, 1. 가격이 싸고 협찬이 수월한 필리핀으로 가족여행 다녀오는 걸 보여주기, 2. 잡지사와 공동으로 진행한 협찬으로 개조된 세트 같은 집 공개하기, 3. 역시 협찬 받은 냉장고 열어보거나 협찬 받은 소파나 스탠드를 배경으로 메인 인터뷰하기, 등이다.

중간에 스튜디오로 넘어오면 주로 주부님들이 좋아하는 이혼이나 결혼, 출산관련 토크를 하고, 어려운 시절 회고(回顧)하며 우울증이나 자살충동을 고백한 후 눈물 흘리기를 감동코드로 버무리면 방송시간의 2/3쯤 지나간다.

그러다 다시 야외촬영 장면으로 넘어오면 협찬금을 낸 레스토랑에서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만나 굳이 카메라를 향해 단골이라 밝히며 메뉴를 고른다.(이 때 살짝 가려진 식당의 외경과 메뉴판 공개는 협찬 필수조건이다.)

또 남편과 자주 데이트 하는 곳이라며 여기저기 다니면서 애정을 과시하다가(이 때도 똘똘한 홍보대행사는 촬영 콘셉트에 맞는 협찬을 물어온다.) 남편이 새로 오픈한 대형 식당(주로 프랜차이즈 가맹점)이나 새로운 사업장에 들려 내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밝은 톤으로 스튜디오로 넘어온다.

실제론 불화로 이혼 직전이더라도 엔딩 토크는 무조건 따뜻해야 한다. 진한 가족 사랑과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며 훈훈하게 마무리하면 오늘 방송도 완벽하다.

아침방송에서 출연섭외란 거래를 의미한다. 연예인이 제작사 관계자의 친인척이 아니라면 방송을 매개로 그냥 철저하게 주고받는 상업적 행위가 바로 ‘출연’이다.

연예인의 입장에서 아침 토크쇼는 ‘작품’이 아니다. 토크쇼 세트에서 녹화가 이뤄지지만 본질은 홈쇼핑에 가깝다. 그냥 솔직하게 고백하면 이런 거다. 우리 남편 사업 시작한 거 홍보해주기 위해 망신 무릅쓰고 개인사 공개하고 한 번 울어주는 거다.

방송의 위력으로 남편 사업 대박 나는 게 유일한 출연 목적이고 짭짤한 협찬 물품이 옵션으로 따라온다.(요즘은 프랜차이즈 계약할 때, 아침 방송에 출연해 식당 노출하는 조건을 수용하는 연예인은 거의 가맹비 없이 식당사업을 시작할 수 있고 출연할 방송은 프랜차이즈 본부에서 잡아오기도 한다.)

우리 주부님들의 시선을 붙잡는데 진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늘 방송이 일부 거짓으로 채워져도 이게 뭐 검찰이 수사에 나설만한 사안도 아니고, 아침 방송을 정밀 검증해 보겠다는 언론인도 없을 것이며, 방통위는 종편 채널의 안정적인 시장 안착을 걱정하느라 바쁘셔서 지상파 아침방송은 관심도 없고, 내일이면 또 다른 ‘한 때 톱스타’가 나와 새로운 협찬 품목들을 배경으로 어제와 내용은 비슷하지만 주인공만 다른 이혼이야기와 눈물의 심경고백을 할 것이다.

물론 주부대상 아침 토크쇼를 통해 진심으로 시청자를 만나려는 착하고 순진한 연예인이 가물에 콩 나듯 있을 수 있지만 이건 정말 가물에 콩이 나는 스페셜한 경우다.

한 번씩 아침방송에 그 동안 절대 안 나오던 A급 연예인이 출연해도 너무 놀라지 마시라. 어떤 파격적인 조건에서 특별한 거래가 한 번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연예인 남편이 사업을 시작했던지 아니면 주로 협찬으로 총알을 축적한 제작사가 방송사에서 받는 제작비를 무시하고 과감하게 질러서 잡아오는 경우다.

제작사 입장에선 이렇게 한 번씩 질러줘야 한다. 그래야 계속 프로그램을 맡을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물론 다른 제작사들은 섭외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목졸림을 당하겠지만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요즘엔 협찬과 PPL이 주요 사업이고 방송제작은 주요 비즈네스를 위한 악세사리로 전락한 방송 제작사들이 많아졌다. 제작사는 홍보대행사에 가깝고, PD는 브로커를 닮아간다. 내 기억에 이런 트렌드를 주도한 건 SBS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이고, 이런 제작방식이 시청률 우위로 나타나자 방송 3사 주부대상 아침 토크쇼의 정형화된 틀이 되었다.

방송사 입장에선 가상이든 조작이든 협찬 열심히 끌어오고 미친 척하고 한 번씩 질러서 인기 연예인 데려오는 제작사가 최고다. 그게 좋은 방송이고 제작사 경영능력이다.

영화 속 트루먼 쇼와 차이점이 있다면, 아침 토크쇼에서 트루먼 역할을 맡은 우리나라 연예인들은 처음부터 제작자와 상호 합의 하에 촬영을 진행한다는 것 정도다. 영화 <트루먼 쇼>의 결말은 진실을 알게 된 트루먼의 탈출이었는데, 우리나라 아침 토크쇼의 트루먼들은 처음부터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탈출을 시도한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시도할 것 같지 않다.

이건 교양도 예능도 아니다. 그냥 세미 드라마다. 일부 실화(實話)에 바탕을 둔 역할극일 뿐이다. 좀 슬픈 건, 시청자들은 계속 이런 방송을 볼 것이고 아침 토크쇼는 SBS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거다.

한국판 트루먼 쇼 제작진들은 무얼 꿈꾸고 있을까? 다양한 변형 트루먼 쇼를 통해 제작 스킬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 그 때부터 자기 작품을 만드는 감독님이 되거나 잘나가는 작가 선생님이 될 꿈을 꾸고 있을까? 아니, 아예 꿈꾸는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이런 방송 환경에서 세상을 바꾸는 좋은 PD, 멋진 작가가 되는 건 말 그대로 꿈일 뿐인가? 이들을 꿈꾸지 못하게 하는 구조를 설계한 자들은 누구인가?

* 글쓴이 김재환 감독(42)은 영화 <트루먼쇼>의 한국판 리얼리티 버전인 독립영화 <트루맛쇼>로 올해 큰 파문과 화제를 일으켰다. 1996년 MBC PD로 미디어에 입문, 5년 뒤 퇴사해 독립 제작사 B2E를 창업했다. <트루맛쇼>는 브로커와 홍보대행사 외주제작자, 방송사, 스타가 유착한 TV맛집의 허구를 통렬하게 폭로한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경기도 일산에 직접 식당을 차려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고 TV맛집과 관련한 검은 비리를 본때있게 까발겼다. <트루맛쇼>는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장편경쟁 부문 관객상을 받았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QR CODE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제호 : 뉴스로 l발행인 : 盧昌賢 l편집인 : 盧昌賢
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l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 l창간일 : 2010.06.05. l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 전화 : 1-914-374-9793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