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2019년 12월 20일. 부산 남구 감만 8부두 주한미군해상수송사령부. 주한미군의 생화학 실험 의혹이후 처음 열린 설명회에서 주한미군 스티븐 윌리엄스 참모장(소장)은 자체 분석실과 탐지 장비를 공개하고 "그동안 사용한 샘플은 '과학적인 실험'이나 '연구'가 아니라 탐지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하는 보정용(calibration)으로 쓰였다"며 실험의혹을 부인했다.
장면 2
2020년 1월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외곽.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는 미국의 공격용 무인기 MQ-9 리퍼가 한 차량 행렬을 향해 미사일 공습을 감행했다. 이 공격으로 이란 군부의 핵심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피살되고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부사령관 등 7명 이상이 사망했다.
새해를 2주 전후로 미국이 관련된 두 개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주한미군의 생화학 의혹과 이라크 야전사령관을 드론을 이용해 암살한 사건이다.
주한미군은 구랍 12월 20일 화생 위협 방어용 감시체계인 '주피터 프로그램' 운용체계에 대해 "우리가 10년간 운영한 생물방어체계 중 가장 최근 단계의 방어 감지 체계이며 건강에 위험을 미치지 않는다"며 "한국에 생균이나 활성화 시료를 절대 반입하지 않았으며 한국 내 실험도 진행 안 한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미군부대 세균무기실험실 추방 부산시민대책위원회는 같은날 8부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주한미군이 세균무기를 8부두에 몰래 반입해 놓고도 형식적인 설명회로 덮으려 한다면서 주한미군 세균무기 실험실을 즉각 철거할 것을 촉구했다. 주한미군은 현재 부산 8부두와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센타우르를 운용 중이다.
대체 세균무기는 얼마나 가공한 것일까. ‘백색의 수소폭탄(水素爆彈)’으로 불리는 탄저균은 사람의 호흡기를 망가뜨려 죽게 만드는 무서운 병원균이다. 탄저균은 포자, 즉 홀씨 형태로 있으면 몇십 년을 없어지지 않고 분말로 만들 수 있어서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다. 탄저균 100㎏ 정도를 저공으로 비행하면서 대도시에 뿌리면 100만 명에서 300만 명을 죽일 수 있다. 수소폭탄 1메가 톤에 해당되는 살상 위력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1년 9·11테러 직후 탄저균(炭疽菌 Anthrax)’ 편지 배달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탄저균을 연구하던 미 육군 연구소 직원이 앙심을 품고 극미량의 탄저균을 편지 봉투에 넣어 배달해, 배달부와 이를 받은 언론사 직원을 포함해 5명이 숨지고 17명이 치명상을 입었다.
FBI는 이후 용의자를 메릴랜드 주에 있는 미 육군 전염병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미생물학자 브루스 아이빈스 박사로 지목했다. 아이빈스 박사는 FBI가 수사망을 좁혀오자 2008년 7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앞서 2005년 미 연방 검사 제프리 테일러는 2005년 탄저균 DNA 식별법을 개발한 아이빈스 박사가 개발한 탄저균이 정부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자 앙심을 품고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했지만 아이빈스 박사의 가족은 물론, 탄저균 테러를 당한 피해자인 톰 대슐 민주당 상원의원이 FBI의 수사가 엉터리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FBI는 당초 아이빈스 박사의 연구소 동료인 스티븐 해트필을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무혐의로 드러나자 브루스 연구원에게 혐의를 떠넘겼다는 것. 아이빈스 박사의 딸은 FBI가 가족들을 협박, 회유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방 법무부는 2010년 보고서에서 아이빈스 박사 혼자서 탄저균 편지를 보냈다고 결론지었다. 국립과학협회가 구성한 조사위원회도 2011년 2월에 자체 조사에서 과학적인 증거를 봐서는 브루스 아이비스 박사가 범인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증명할 수는 없다며 하나마나한 발표를 했다. 결국 이 사건은 용의자의 자살로 막을 내렸고 진상은 미궁(迷宮)에 빠져버렸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탄저균 편지 배달 사건이후 미국 정부가 관련 예산을 크게 늘렸다는 것이다. 탄저균 테러가 났던 2001년에 생물학 무기 방어 연구에 미국 정부가 2억7천만 달러를 썼는데 2003년에 이 예산이 무려 14배나 껑충 뛰어 37억 달러가 된 것이다. 생물 무기 연구를 절실히 원한 누군가에게 탄저균 테러 편지 사건은 결정적인 ‘효자손’이 된 셈이다.
이처럼 가공할 생화학무기가 우리가 사는 땅에서 ‘주피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연구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2015년이다. 미국의 군 연구소에서 오산미군기지에 탄저균이 민간택배회사를 통해 배달된 사실이 들통이 난 것이다. 이미 미국은 2013년 6월부터 탄저균 페스트 보톨리눔 독소 시험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2017년엔 주피터 시설의 최종 점검을 위해 북한의 가상도시를 상정한 시가전 모의훈련을 한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심각한 것은 SOFA 규정에 따라 주한미군이 무엇을 하는지 우리 국민들이 전혀 알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주한미군의 생화학전 프로젝트인 ‘주피터 프로젝트’를 총괄한 책임자는 “한국은 아무 곳에서나 실험하기에 아주 좋은 우호적인 국가”라는 소름 돋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이런 미국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인간들을 보면 이게 나라인가라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새해 벽두부터 미국은 중동에 죽음의 전운(戰雲)을 드리우고 있다. 이란 혁명군 지도자 솔레이마니와 일행에 대한 드론 살해사건은 전시도 아닌 상황에 이라크영토에서 감행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다. 그것이 탄핵위기에 몰린 트럼프의 전략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세계는 야심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미국의 민낯을 여지없이 보고 있다.
이번 공습은 구랍 12월 31일 이라크 바드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 피습 사태 이후 결정됐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여러개의 대응방안을 트럼프에게 보고했는데 선택 가능성이 가장 낮은 것으로보 보였던 ‘암살’을 트럼프가 결정해 놀랐다는 후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불확실성이 세계를 경악케 한 드론 암살 작전을 낳은 셈이다.
트럼프는 공습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솔레이마니는 미국 외교관과 군 요원에 대해 사악한 공격을 꾸미고 있었고 우리는 그를 현장에서 잡아 끝장을 냈다”고 말했으나 사악한 공격의 구체적인 근거를 내놓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시절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거짓 정보를 내세운 미국이니 이번에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운 상황이다.
며칠 뒤 공개된 드론 공격의 동영상은 실로 끔찍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탄 차량 행렬을 드론이 그야말로 벌집만들 듯 미사일을 쏘아대고 일부 생존자들이 차량을 탈출해 달아나자 드론 미사일은 이를 악착같이 추적, 공격했다. 마치 전자오락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트럼프가 트위터에 “이란이 미국인이나 미국의 자산을 공격할 경우를 대비해 이란의 52곳을 이미 공격 목표 지점으로 정해놨다”면서 이중에는 이란의 문화유적지도 포함돼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이란의 52곳은 40년전 이란에서 억류된 미국인 인질 52명을 시사한 것이었다.
미국의 대통령이 이란의 문화유적지를 포함해 52곳을 공격할 수 있다고 거침없이 말폭탄을 떠뜨리는 모습은 2001년 아프간의 불교사원 유적을 파괴한 탈레반을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의 52 경고에 대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위터에 “숫자 '52'를 언급하는 자들은 IR655의 숫자 '290'도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IR655는 1988년 7월 미군의 이란항공 여객기 격추 사건을 말한다. 당시 미군 순양함 빈센스 호는 이란 남부 항구도시 반다르압바스를 떠나 두바이로 향하던 이란항공 IR655 편을 호르무즈 해협 부근 상공에서 미사일로 격추했다. 이 사건으로 여객기에 탔던 승객과 승무원 290명이 전원 사망했다. 당시 사건에 대해 미국은 이란 전투기로 오인했다고 변명한 바 있다.
파괴는 파괴를,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소곤이의 세상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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