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브루조아구나.”
고3인지, 대학에 갓들어간 때인지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수십년전 그날 친구가 던진 한마디는 잊혀지지 않은채 평생 내 귓전을 맴돌고 있다,
난 우리 집을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더도 덜도 아닌 중산층 말이다. 우리 집이 브루조아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친구에겐 그렇게 비춰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서울 변두리일망정 은평구의 단독주택에서 살고 아버지가 작은 회사의 중역으로 계신 반면 친구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가정이었다.
친구의 표현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단지 우월한 생활형편을 지적한게 아니라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님, 아버지의 안정된 직장이라는 중산층의 삶 자체를 시대의 모순속에 누리는 기득권처럼 치부했기때문이었다.
도덕적으로 나쁜일을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가정이 민초들의 희생을 담보로 부와 행복을 누리는 것처럼 비교되는 것이 내게는 충격이었다. 아마도 친구는 박정희의 ’개발독재’속에 재벌이 형성되고 빈부의 차이가 벌어지면서 초기 단계의 중산층조차 부당한 떡고물의 부산물이라고 시니컬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친구는 강남에서 내가 봐도 부러운 상류의 삶을 누리며 산다는게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어쨌든 그날 친구의 독설(?)은 살아오면서 문득문득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브루조아라도 공의를 위해 헌신하고 사회적 기여를 위해 사는 사람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이른바 ‘강남좌파’로 불리는 이들도 그렇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부를 향유하면서도 그들만의 리그에 매몰/埋沒되지 않고 진보적 사고로 그늘진 곳에 따뜻한 시선을 돌리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도덕적인가.
강남좌파에 눈흘기는 주된 이유는 아마도 빈자/貧者 등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동정하고 사회 개혁에 동조하면서 현실의 자신은 양극화 된 구조에서 부와 풍요를 누리는 모습이 위선적으로 보이기때문일 것이다.
가령 난민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배우 정우성을 생각해보자. 많은 봉사활동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 홍보대사 등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형을 보이는 그는 난민문제가 우리 사회에 이슈가 되면서 종종 비난을 받는다. 그를 공격하는 이들은 “자기는 호화저택에서 사니까 난민과 부대낄 일도 없이 ‘착한’ 소리만 하는데 그렇지 못한 서민들은 생각해 봤느냐”고 꼬집는다.
일부의 볼멘 심정을 이해 할 수는 있지만 옳은 시각은 아니다. 정우성의 누리는 유명세와 그로 인한 부가 있기에 사회의 모범으로 도드라지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명백히 위선적인 삶이 아니라면 그의 위치와 환경에 따른 작은 문제들은 관대히 넘겨야 하지 않을까.
요즘 핫 이슈는 단연 법무장관에 지명된 조국 후보자이다. 매체마다 조국을 키워드로 한 뉴스들이 넘쳐나고 특히 조국에 적대적인 자한당과 극우 보수매체들은 온갖 의혹을 부추기며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다.
초반엔 동생의 ‘위장이혼설’을 제기하며 후보자와 무관한 가족들의 사생활을 거침없이 유포시켜 ‘장관에 지명된게 조국이냐, 조국 동생이냐’는 힐난이 나오기도 했다. 급기야 자한당 의원 김진태는 조 후보자 선친의 묘비까지 촬영해서 “이혼한 며느리 이름이 왜 비석에 있냐”고 들이대는, 어처구니없는 작태까지 벌였다.
‘위장이혼’ 공격이 아무래도 무리다 싶었는지 딸의 고등학교 논문에 시비를 걸었고 바야흐로 부정입학 의혹을 일파만파로 확산시키고 있다. 조후보자의 미국 유학시절 출생해 이중국적이 부여된 아들의 정상적인 입영연기까지 비리인 양 무리한 공세도 가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은 병역문제와 교육문제다. 그런 점에서 고등학생 딸의 논문 제1저자 등록은 젊은 층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며 국민정서를 건드린게 사실이다.
그러나 위법한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10여년전 입시 제도하의 관행을 오늘로 소환하여 비난할 뿐이다. 그 시절 잘나가는 특목고 학생들의 스펙쌓기가 불공정한 수단이자 사회적 비리로 비약되서는 곤란하다.
필경 자한당도 무리한 공격임을 잘 알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자한당 대표 황교안이 박근혜에 의해 법무장관에 지명됐을 때 담마진 병역미필을 위시해 황제수임료, 등등 문제들이 얼마나 많았나. 하지만 거뜬히 법무장관에 올랐다. '내로남불'은 조국이 아니라 국민들의 반감을 부추겨 낙마시키겠다는 전략을 노골화 한 자한당이다.
안타까운 것은 조국 후보자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진영에서도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후보자가 민정수석 재직 당시 대법관으로 추천했던 신평 변호사가 후보직을 사퇴하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조국을 지지하는 이들에겐 아픈 대목일 것이다.
그러나 조국 후보자의 사퇴는 이 시점에서 적절하지 않다. 조국 개인을 두둔하자는게 아니다. 탈탈 털어서 나온 작은 흠결들이 어떡하든 판을 뒤집으려는 적폐세력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는 일본과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가적 자존심을 뭉개고 대일종속경제 고착을 획책하는 경제전쟁의 와중에 있다.
조국 후보자에 대해 일본은 ‘초강경 반일정치인’이라며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는 터다. 한마디로 조국이 장관이 되는 것을 자한당과 극우일본이 공히 질색팔색하는 것이다. 반일불매운동이 국민들의 열화/熱火같은 참여속에 전세계 한인사회로 확산되고 있는 마당에 적이 두려워하는 장수의 바짓가랑이를 다름아닌 우리가 잡을텐가.
지금은 조국의 임명이 가장 전략적이다. 조국 후보자에게 조언한다. 진솔하고도 진정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청문회가 열리면 이렇게 선언하시라.
“국민 여러분. 저의 불민함으로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제기된 모든 의혹들은 이 자리를 통해 소상히 소명하겠습니다. 도의적 문제들에 대한 비판 또한 달게 수용하겠습니다. 저의 책무는 엄중한 시대 국민의 명령을 높이 받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켜켜이 쌓인 부패와 적폐를 청산하는데 이 한몸을 던지겠습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소곤이의 세상뒷담화’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s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