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지구촌을 뒤덮은지 10개월이 지났다. 메르스와 사스, 에볼라, 신종플루 등 21세기 들어 각종 괴질(怪疾)들이 출몰했지만 코로나19만큼 인류를 혼돈으로 몰아넣은 역병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찍이 어떤 질병이 모든 인간들로 하여금 마스크를 쓰게 만들었단 말인가. 우리는 이제껏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고통과 좌절만을 안긴 것은 아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던 인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있다.
향후 세상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나라와 굴복하는 나라로 나눠질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나라와 위기에 스러지는 나라로 구분될 것이다. 제국이 몰락하고 동맹이 분열하는 합종연횡(合從連橫)의 새로운 판이 짜여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남과 북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코로나19 발발이후 남과 북은 외형은 달랐지만 본질은 유사한 행보를 걸어왔다. 한때 걷잡을 수 없이 많은 확진자로 세계 최악의 위험국에 분류됐던 남측은 대량의 진단과 추적시스템으로 코로나 불길을 성공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 중국처럼 도시를 전면 봉쇄하지 않고 시스템으로 촘촘히 조여드는 ‘열린 봉쇄(Open Blockade)’ 였다.
한편 북측은 중국 우한에서 처음 보고된 코로나19가 수도 베이징에 퍼지기 시작한 1월 24일 전격적으로 육해공의 모든 국경을 차단하는 초강수를 던졌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기 6일전에 국가비상조치를 발빠르게 취한 것이다. 심지어 밀무역의 루트까지 차단하는 그야말로 ‘완벽 봉쇄’(Perfect Blockade)’ 였다.
남측은 2월의 신천지사태와 5월의 이태원클럽, 8월의 광화문집회와 같은 빗장풀기로 한때 위기에 처했지만 우수한 진단키트와 과학적인 치료시스템, 국민적인 동참에 힘입어 ‘K 방역’의 롤모델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또한 북측은 봉쇄 초기 해외 유입자를 포함, 일체의 감기 징후를 보이는 수천명의 의심자들을 40일간 격리하고 평양의 외교단지도 일정 기간 봉쇄하는 등 극강(極强)의 관리로 현재까지 공식 확진자가 단 한명도 발생하지 않은 ‘코로나 청정국가’임을 자부하고 있다.
남과 북의 대처방식은 달리 보였지만 관리와 통제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고, 원칙적으로 ‘봉쇄’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었다.
각자도생에서 공존공영으로
여기까지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다른 많은 나라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다. 코로나19는 백신개발과 임상실험을 통해 안전성이 확보되고 충분한 치료제가 공급된 연후에야 진정될 것이다. 이는 앞으로 적어도 1년 이상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 전반에 걸쳐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지만 남과 북은 어찌됐든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촌 전체가 진정국면에 접어들기까지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는걸까.
코로나사태이후 일각에서 남북간 방역 노하우 공유와 의료장비 지원 등 교류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북미간 하노이회담이 결렬된 이후 남북간 창구마저 사실상 단절된 상황에서 코로나19 위기가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좋은 구실로 떠오르고 있었다.
문고리는 먼저 북측이 잡았다. 지난 3월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낸 것이다. 청와대는 하루만에 “김 위원장이 친서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코로나19를) 반드시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 남녘 동포의 소중한 건강이 지켜지기를 빌겠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이와 함께 청와대는 김 위원장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 대해 진솔한 소회와 입장도 밝혔다고 언급했다. 한반도 정세에 대한 ‘소회와 입장’이 무엇인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김위원장은 필경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한미워킹그룹의 족쇄속에 남측이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을 민족 공조의 입장에서 타개할 것을 주문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어 4.15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壓勝)을 거두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과감하게 대북정책의 드라이브를 펼칠 환경이 조성되었기에 기대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악재가 쏟아졌다.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사건이 그것이다. 북측은 한미워킹그룹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것은 고사하고 일개 탈북단체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남측에 큰 실망을 했을 법 하다. 입에 담기조차 저급한 내용으로 ‘최고 존엄’을 매도하는 전단과 코로나균을 묻혀 풍선을 띄우겠다는 망동까지 나오면서 북의 인내는 한계치를 넘어서고 말았다.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한 북측은 모든 통신선을 단절했다. 그동안 문대통령을 비난하는 성명이나 담화가 대외매체를 통해서만 발표되던 관행(慣行)도 깨졌다. 노골적인 규탄집회가 잇따르고 급기야 남북협력의 상징인 남북연락사무소 건물 폭파라는 충격적인 결과까지 이어졌다.
많은 이들은 북측이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진보그룹에서도 실망과 분노를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에선 해외 근무자나 출장자가 귀국하면 기본적으로 혈액검사를 한다. 개인의 건강을 체크하는 동시에 일체의 전염병 유입을 막기 위해서다. 과거 사스와 메르스, 에볼라, 신종플루가 퍼졌을 때도 해당 지역의 귀국자는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21일간 격리를 해야 했다.
하물며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19에 대한 경계심이 어느 정도이겠는가. 재일 조선신보 평양특파원 로금순 기자는 지난 봄 평양의 한 호텔에서 의심자로 분류돼 무려 30일간 격리됐다. 지난해 9월부터 6개월째 평양에 체류했음에도 로기자가 격리된 이유는 국가비상조치가 취해질 무렵 입국한 외부 방문자와 같은 호텔에 있었기때문이다. 로기자는 “격리기간동안 하루 3차례 의사가 방문해 발열체크를 했고 37.5 ℃가 넘을 경우 평성의 격리시설로 옮겨진다”고 전했다.
7월엔 20대 탈북자가 개성에 은밀히 재입북한 사건으로 북녘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문제의 탈북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개성시 전체가 한달간 완전 봉쇄됐다. 이후 북측은 국경지대의 무단 월경자는 이유 불문 사살하도록 명령을 하달했다.
최근 서해상 북측 영해에서 표류하다 피격 사망한 남측공무원의 비극 또한 ‘미스테리 행적’과는 별개로 코로나사태에 따른 ‘현장 지침’이 가져온 우발적 사건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북의 코로나 경계심이 얼마나 큰 지 말해주는 사례는 또 있다.
지난 8월 태풍으로 두차례 큰 피해를 입은 후 북측은 외부의 구호물자를 받지 않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코로나19 유입의 우려때문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같은달 13일 제7기 제16차 정치국 회의에서 수해 복구를 지시하면서 코로나19 등 전염병의 위험성이 있는 외부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천명(闡明)한 것이다.
발상의 전환, 역발상의 지혜
의구심(疑懼心)이 생길 것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봉쇄정책을 취하는데 과연 남북이 교류 협력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코로나19는 코로나19로 풀어갈 수 있다. 남과 북에 공히 대반전의 기회는 있다
지난 10월 10일 로동당 창당 75주년 행사때 김일성광장에서 행진한 군인들을 비롯, 수천명의 군중들은 놀랍게도 마스크를 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까지 한명의 확진자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대규모 군중 행사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것은 무모하고 거의 미스테리처럼 보였다.
물론 북녘 주민들은 평소 생활 현장에서 마스크를 꼼꼼이 착용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마스크를 배제한 것은 국가적인 명절에 모인 참가자들의 마스크 착용이 축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참가자들은 일체의 감기징후가 없는 건강한 사람들로 이뤄졌을테고 무엇보다 특별한 행사에선 마스크 착용을 예외로 둘 만큼 방역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이 넘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계속되는 한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십수년에 걸친 모진 경제제재를 자력자강과 자력갱생의 기치로 극복한 북이지만 무역과 관광의 90% 비중을 차지하는 최대 파트너 중국과의 국경을 봉쇄한 것은 엄청난 희생을 감수(甘受)한 것이다.
특히 관광의 경우, 2020년 목표치로 잡은 중국 관광객 100만명이 고스란히 사라지고 말았다. 올들어 1월에 양덕문화온천관광지구를 개장했고 4월 15일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와 10월 10일 백두산삼지연관광지구 완공을 목표한 것도 엄청나게 유입될 중국 관광객을 고려한게 아니던가.
코로나사태의 심각성은 비단 올해 목표만 차질을 빚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족쇄로 작용한다는데 있다. 3대 관광지구의 대역사가 ‘뜨거운 감자’가 되버리는 셈이다. 그래서 더더욱 절체절명(絶體絶命)의 대안이 요구되고 있다.
70년 넘게 분단의 상태로 있어 왔지만 남과 북은 하나의 하늘 아래 하나의 땅을 디딘 하나의 민족이다. 남북이 함께 한다면 교역과 관광은 중국을 대체하고도 남는다.
코로나19이후 남측 역시 해외 관광은 사실상 진공(眞空) 상태다. 출국을 포기한 사람들은 국내로 눈을 돌렸고 하늘에서 기내 서비스를 받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별난 항공 상품도 출시됐다. 그러나 좁은 남녘 땅에서 여행상품의 한계는 분명하다. 만일 관광의 수요가 북녘으로 확장될 수만 있다면 남과 북은 서로간에 엄청난 윈-윈이 될 것이다.
과연 코로나19의 두려움 없이 관광은 가능할까. 남북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 등 과거의 북녘 여행에서 난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 시절 북녘 관광은 적잖은 제한과 관리속에 시행된 것이기도 했다.
관광객들은 북녘의 소수 일꾼들만 만났을뿐 주민들과 어울릴 필요가 없었다. 숙소는 독립된 전용 시설을 이용했고 관광코스와 관광객들의 동선 또한 정해져 있어서 이탈의 우려도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코로나시대에 어울리는 관광상품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북의 3대 관광지구를 남측 관광객을 위한 특화된 여행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관광 상품은 모두 5가지다.
1 동해안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금강산 연계 상품(유람선)
2 서해안의 남포항과 양덕온천휴양지, 구월산 연계 상품(유람선)
3 백두산과 삼지연지구, 칠보산 연계 상품(전세기)
4 판문점을 통해 개성과 고려성균관 박연폭포 연계 상품(육로)
5 평양 주요 명승지 관광과 집단 체조 관람 상품(전세기)
지금까지 북녘 여행을 하려면 대부분 중국을 경유해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됐다. 남북간의 직접관광은 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약해준다. 관광상품은 적게는 1박2일부터 많아도 3박4일이면 충분하다.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고 일정을 최소화해 북측도 관리상의 부담이 거의 없다.
코로나 위생방역을 위해 모든 관광객들은 코로나음성 진단이 필수다. 관광시 의료진과 방역요원의 동반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식사도 가능한 도시락을 이용하고 외부 식당 이용시 사전 사후 철저한 위생방역을 기하면 된다.
방역보다 신뢰가 우선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한 남북관광교류는 대북제재와도 무관할뿐더러 신뢰회복과 우의증진을 위해 커다란 순기능(順機能)을 가져올 것이다. 관광에 따른 간접교역의 효과와 함께 한머리땅이 하나의 관광벨트로 연결되면서 파생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부대효과는 돈으로 따지기 어려울 정도다.
북측이 코로나 사태이후 국경을 철통봉쇄하고 외부 구호물자 반입까지 거절한 것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의료 인프라를 고려한 것이지만 남측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 대한 불신도 적지 않게 작용을 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는 중국은 물론, 러시아에서도 두차례 수만톤의 밀가루를 지원받은 것을 보라. 코로나19가 절대적인 거부 사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코로나시대 방역은 중차대하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 더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신뢰다. 믿음이 전제된다면 방역은 부차적인 문제다. 남북주민간 직접 접촉을 최소화하고 완벽한 위생방역 조건에서 얼마든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관광교류를 통해 남측은 풍부한 방역 시스템과 치료 경험, 백신 개발의 노하우를. 북측은 자가면역력을 돕는 최상의 천연약재들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는 한 북측도 언제까지나 국경을 봉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제한적인 남북관광교류를 통해 외부 방역에 대한 자신감과 경험을 충분히 쌓고 안전한 조건에서 빗장을 열도록 하자는 것이다.
남과 북의 관광교류 사업을 통해 우리는 한머리땅 관광 특수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나아가 외국인 관광객도 서서히 문호를 개방해 추가적인 수요를 창출(創出)할 수도 있다.
한민족 관광교류 사업은 북측은 물론, 남측의 관광산업을 부흥시키고 연관 산업을 활성화할뿐 아니라 한민족경제공동체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다.
재론하건대 이 모든 것의 전제는 남북간 신뢰 구축이다. 무엇보다 남측은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의 대원칙을 흔들림없이 준수한다는 의지를 재천명할 필요가 있다. 최근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에서 한반도비핵화가 아닌 북한비핵화를 앞세워 대통령의 종전선언의지를 퇴색시키거나 전략무기 증강, 성주 사드기지 강화 등의 모순된 행동을 하면서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창의적인 해법과 역발상(逆發想)의 지혜로 코로나19 위기를 남북 화해와 교류 협력의 황금 기회로 만들자.
글 로창현 뉴스로/NEWSROH 대표기자
* 이 글은 지난 11월 7일 재외동포언론사 초청 국제화상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주제강연 ‘남북교류의 역발상, 코로나19는 기회다’ 원고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