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에도 잊힐리 없던 젖먹이 아들과 아내를 60년 넘게 그리워하던 양심수 박희성 선생이 서울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27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고인은 지난 2021년 2월 18일 광화문에서 아들 동철을 위해 애달픈 ‘1인시위’를 펼쳐 이목을 끈 주인공이다. 16개월 때 헤어진 아들 동철의 환갑일에 맞춰 북녘 아들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의 피켓을 든 그이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당시 한 시민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것이 혈육의 정인 천륜(天倫)을 끊는 것이다. 전쟁포로도 전쟁이 끝나면 제 나라로 돌려보내는데 수십년의 형기를 마친 노인을 왜 돌려보내지 않나? 인륜과 인권을 소중히 여긴다면 절대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라며 안타까워 했다.
고인은 1962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7년 간 복역한 뒤 1988년 12월 장기수 양원진·강담 선생 등과 함께 광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추가로 20년 보호관찰 처분까지 받은 그이는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전전해야 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에 따른 후속조치로 비전향장기수 63명이 북으로 돌아갔지만 선생은 ‘강제전향자’로 분류돼 송환 명단에서 빠졌다. 2008년부터 주위의 도움으로 만남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 선생은 2차송환 대상 33명에 포함돼 고향에 갈 날을 그렸으나 남북관계 악화 등으로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고인을 포함, 2차 송환을 기다리던 이들은 고령으로 하나 둘 유명(幽明)을 달리 해 현재 생존자는 낙성대에 거주하는 양원진(96), 김영식(92), 양희철(91) 부산의 박수분(95), 대전의 이광근(80) 선생 등 5인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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