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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장의 교육칼럼
뉴욕대학교 스턴 상과대학 졸업. 웨스트고 카운슬링오피스, 더킹스칼리지 어드미션디렉터 역임. 토탈에듀케이션 공동대표. 뉴저지칼리지 어드미션연합회 정회원. 교육의 참 목표는 학생들로 하여금 최선을 발휘하도록 돕는데 있다. 조화된 가정생활, 학교생활, 사회생활의 미래를 위해 경험과 지식들을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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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美대학가기

글쓴이 : 스테파니 장 날짜 : 2010-06-05 (토) 05:43:30



안녕하세요? 저는 스테파니 장입니다. 앞으로 교육칼럼을 통해 저의 개인적인 오랜 미국생활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값진 교훈들과 알아두면 유익한 정보들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신나고, 때로는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통해 여러분의 삶에 조금이나마 윤택함을 얹어 드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좋은 얘기를 듣는 마음 준비만 하시면 됩니다.


벌써 제가 뉴욕 땅을 밟은 지도 강산이 세 번 이나 바뀔 만큼 헤아리기조차 버거운 세월들이 흘렀습니다. 딸 셋 중의 제일 맏언니로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1년 마친 저는 낯설고 사람도 설고 게다가 언어까지 완전히 딴판인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과 함께였고 영어 교육학과에 일년 다녔다는 살 떨리는 자부심(?) 하나로 똘똘 뭉쳐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80년 2월 25일의 일이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좌충우돌 미국생활을 꾸려 왔습니다. 대학을 일년 꼬박 마치고 왔는데도 의과대학에 진학하겠다고 엘머스트에 있는 뉴타운 고교에 들어 갔습니다. ESL 프로그램에 배치되어 두 달 가량 다니고 있을 때 하루는 학교 사무실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가 보니 한국 고등학교에서 고교 일, 이학년 성적표만 보내 달라고 신신당부 한 것을 친절하게도 영문 번역까지 첨부된 고교 졸업 증명서를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뉴욕시 재정이 어려워 저 같이 이미 고교 졸업장이 있으면 공립 고등학교 재학이 안 된다는 말에 하는 수 없이 뉴타운 고교와 작별한 후 퀸즈 칼리지에서 ESL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Good Morning!”을 힘차게 외치는 것으로 시작된 ESL 과정에는 그나마 20살의 제가 제일 어린 학생이었고 모두들 삼, 사십 대의 중국인과 스패니쉬 학생들이 정말 백인 선생님의 배꼽을 쥐게 하며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8시에 시작하여 12시 전에 공부가 모두 끝나면 열심히 버스를 타고 자마이카에 있는 야채가게에서 밤까지 계산대를 두들겼습니다. 아, 미국 이민생활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하면서 참으로 열심히 다녔습니다.


퀸즈 칼리지에서 한 학기를 다니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Good Morning!”을 면하기가 너무나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 학생들이 모두 성실하게 공부하는 데도 도대체 발전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러다간 대학진학이 10년 걸려도 어려울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밀려 왔습니다.


안 되겠다 차라리 집중적으로 영어를 공부해 보자. 그리고 소개를 받아 찾아간 곳이 NYU American Language Institute 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4 과목을 골고루 배우는 프로그램이 제 1단계부터 8단계로 나뉘어 실시되고 있었습니다. 비용도 퀸즈 칼리지의 한 과목당 $95.00에서 한 학기 $2,000의 고액이었습니다. (지금은 $6,000이 넘습니다.)


이제는 돈벌이도 못하게 되었고 풀타임으로 공부에만 전념해야 할 일이 무척 부담이 되었지만 두 학기로 끝낸다는 신념 하나로 등록을 마쳤습니다. 꼭 두 학기 만에 정말 칼리지 레벨 영어를 듣게 되었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과정 4와 과정 6을 건너 뛰면서 –사실은 돈을 벌기 위해 학교들은 건너 뛰기를 잘 안 해줍니다- 열심히 올라간 칼리지 레벨은 오후 늦게 파타임 밖에 없어 다시 파타임 근무를 맨하탄의 한 여행사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학에 입학원서를 준비하였고 제출했습니다.


아, 차라리 한국에서 고등학교만 졸업 했다고 할 것을! 우리 세대 많은 다른 대학생들처럼 시들시들한 점수로 병풍을 두른 제 대학 성적표 때문에 아무 곳도 입학허가를 제게 내 주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일단 원서만 내면 대개 들어갈 수 있는 SUNY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수업시간에 매달렸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 정보들을 찾아 헤매며 2년 동안 14과목을 수강하며 11개 과목에서 A+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원하는 곳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부심과 흐뭇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NYU Stern School of Business 앞으로 입학원서를 작성하여 보냈습니다. 그것도 겁 없이 친구들이 제일 어려운 전공이라고 말리는 마케팅과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복수 전공으로 신청서를 냈습니다.


이젠 돈이나 준비해야 되겠구나 하며 여유를 부리던 중 입학 허가서가 날아왔고 정말 쌍 코피의 시간이 함께 찾아온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좋은 대학이 무엇인가는 바로 그 곳에서 판가름이 났습니다. 새벽 한시에 닫는 도서관이 자리를 얻기 힘들었고 더구나 영어가 아직도 서툰 저에게 광고 전략이나 선전문구를 만드는 일은 정말 대책이 없는 과제물 등이었습니다. 게다가 비싸고 비싼 사립대학 수업료는 제게 매주 30시간 이상의 파타임을 뛰지 않으면 도저히 메울 수 없는 밑 빠진 독 같았습니다.


강의를 신청한 과목마다 그룹 프로젝트를 주었고 파타임 직장과 시간이 맞지 않아 외국 친구들은 그룹 프로젝트에 소홀하다는 이유로 항상 제게 타이핑이나 허드렛 일들을 잔뜩 주면서 그래도 서로 점수를 매길 때는 의례히 저의 점수가 최하위였습니다. 하루에 4시간 반 이상 잔 기억이 별로 없던 그 시절이 그래도 가장 강력한 의지 하나로 살았던 시간입니다.


졸업을 하고 외국인들 사이에 있는 것이 질려 버린 저는 한국계 회사에서 10여 년 동안을 있었습니다. 말도 통하고 감정도 통하고 정서도 무지무지 통하는 동료들과 참 재미있는 직장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한국에 나가게 되어 서울 삼성동의 봉은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압구정동에서 그룹으로 학생들 영어지도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한 교사 생활이었지만 곧 제 적성에 너무나 어울리는 일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나누는 것에 대한 기쁨과 흥분이 학생들과 저를 묶어 주었고 잘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그리고 잘 배운다는 것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5년간의 영어 교사 생활을 접고 다시 미국에 돌아와 이제는 학교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 교육청에 이력서를 내고 시험을 치르고 일년간을 기다린 끝에 공립 고등학교 카운셀링 오피스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 공립 고등학교 대부분이 특정하게 칼리지 카운셀러 없이 가이던스 카운셀러들에 의해 칼리지 카운셀링이 이루어 집니다. 제가 일했던 고등학교에서도 칼리지 카운셀러가 없었는데 제가 가면서 12학년 학생들의 폴더를 만드는 것부터 입학 허가 신청서 작성, 개인별 이력서 정리와 추천서, 게다가 에세이 쓰는 것과 성적표를 몇 번에 걸쳐 보내는 것, 진로와 적성 상담까지 모두를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00여명의 교직원 중의 유일한 한인 스태프라 한국어 통역이 필요한 경우마다 발벗고 나서서 학생과 학교를 연결시켜 주어야 했습니다. 한인학생들 및 부모님들의 천 가지 만 가지 케이스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필요에 따라 최선의 해결책 또는 그 실마리라도 찾아 주어야 했습니다.


길을 찾지 못하고 또 너무 미국을 몰라서 방황하는 학생과 부모님들은 언제나 저를 가슴 아프게 했고 또 그 분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참 많이도 생각했던 시절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 CCC 계통의 크리스챤 대학인 킹스 칼리지의 어드미션 디렉터와 인터내셔널스투던트 어드바이저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대학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내에 있으며 한국의 한동 대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었고 매년 한국 대학생 선교단의 학생들이 공식적으로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대학입니다.


100% 학생과 교수진, 그리고 스태프들이 기독교인인 킹스 칼리지에서 일하며 뉴욕, 뉴져지 고등학교의 카운셀링 오피스의 카운셀러들과 함께 일할 기회를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킹스 칼리지에서도 유일한 한인이었던 저는 제가 일하는 동안에 한동대학교와 익스체인지 프로그램을 체결하였고 또한 한국 대학생 선교단의 뉴욕 연수 프로그램 중의 영어 연수를 킹스 칼리지에서 하도록 하였으며 특히 2002년도 청소년 찬양축제를 뉴욕 장로교회에서 킹스 칼리지 주최로 열었습니다. 뉴욕 뉴져지 일원의 교회 청소년들이 모두 함께한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갑자기 몸에 큰 병이 찾아왔습니다. 간이 나빴고 신장도 나빴습니다. 두 달간을 집에서 쉬다가 무지개의 집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는 것 같이 무지개의 집에는 국제 결혼에 실패하고 가엾은 처지에 계신 언니들이 함께 지내며 서로를 감싸주는 아름다운 집입니다.


언니들이 힘들게 이민생활을 꾸민 이야기들, 미국사회 속에서 받은 불공정한 처사들, 여성이기에 더욱 힘들어야 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살아 숨쉬는 공간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밝은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무지개 여성 사회 교육원이 생겨 났습니다.


일반인들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모이면서 또 서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클래스들을 계획하고 운영하고 또 직접 가르치면서 저는 여자로서 우리가 어떤 삶을 이끌어 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런 인생의 모든 경험들을 모아 우리 젊은 한인 학생들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특히 제게는 제일 친숙하고 자신 있는 미국 교육에 관한 가능한 모든 지식과 정보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지만 30년의 미국생활에서 배운 많은 다른 경험과 어려움으로 얻은 대책들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특히 모든 미주 한인들이 미국 생활을 정말 제대로 그리고 멋있게 계획하고 꿈을 실현 시킬 수 있도록 앞으로 계속해서 삶에 유익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미국은 정말 기회가 아직도 많은 나라이며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부터 함께 차근차근 얘기를 나눠보시겠어요?


스테파니 장 totaleducation@hotmail.com


노창현 2012-01-19 (목) 05:26:08
이 글을 근 일년반만에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제 자신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테파니 장 원장님의 노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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