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우리 며느리가 임신을 했는데 하필 금년에 출산하게 됩니다. 금년이 임진년 용띠해인데 용중에도 60년만에 찾아온다는 흑룡이니 어쩌면 좋지요?”
목사님만 허락하면 유산이라도 시켜 용띠 해를 피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용이 어때서요? 용은 옛 부터 부귀영화를 상징했지요. 임금님의 얼굴을 용안(龍顔) 임금님의 옷을 용포(龍袍)라고 하지요. 혹시 용의 해에 태어난 손주가 남자이면 대통령, 여자이면 영부인이 되어 용상(龍床)에 앉게 될런지 누가 압니까?”
▲ KBS-TV 뉴스 캡처
한국사회의 용 인식은 찬찬반반이다. 불교에서는 사악을 물리치고 부처를 보호하는 수호천사로 대우가 극진하다. 절에 가보면 용 그림 천지다. 벽화는 물론 주발이나 작은 찻잔에도 용이 새겨져 있다. 기독교는 용을 옛뱀 마귀 사탄으로 친다.
머리에 뿔이 달려있고 몸통은 비늘로 덮여있는 용은 네 다리와 발톱이 사납다.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하늘을 날라 다니면서 불을 뿜어댄다. 성경에는 19번이나 용이 등장한다. 계시록에 나오는 용은 적토마 위에서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관운장보다도 무시무시한 천하무적의 마귀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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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정말 존재하는가? 영적으로 존재하는 상상의 동물인가? ‘쥬라기공원’처럼 날라다니던 용의 시대가 있었을까? 1400년경인 중세기까지 용이 존재했었다고 주장하는 고고학자들이 있다. 발견된 용의 미라를 대영제국박물관이 조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긴 인류초기에는 사룡 비룡 공룡이 하늘을 날라 다니던 용들의 전성시대였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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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날라 다니는 파충류로 불을 뿜어대면서 호랑이나 산돼지를 잡아먹었다. 그래서 용호상박(龍虎相搏)이란 말이 생겼다. 용이 하늘을 날면서 불을 뿜어대는 장관을 보고 인간들이 신으로 섬겼던 모양이다. 심형래의 영화 ‘용가리’를 생각하면 된다. 계시록을 만독(萬讀) 했다는 부흥사에게 물어봤다.
“목사님은 용의 전쟁인 아마겟돈전쟁을 자주 설교하는데 용을 본적이 있습니까?"
“못 봤지요”
“그럼 용을 실존하는 존재로 보십니까?”
“암요. 성경에 나와 있으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40년 목회하는 동안 별의별 영적체험을 다해봤다. 불도 보고 귀신도 봤다. 그러나 용은 본적이 없다. 그래서 여간해서 계시록 설교를 안 한다. 용을 본적도 없으면서 ‘쥬라기공원’처럼 신나게 계시록 설교를 해대는 여의도파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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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봤다는 여인을 만나러 뉴저지를 찾아가 본적이 있다. 그녀의 거실에 들어서자 창호지에 먹물로 그린 용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용의 잔등을 타고 달라 다니는 미녀의 그림이었다.
“마고가 그린 그림이군. 마고가 용의 잔등을 타고 날라 다닌 모양이지?”
“목사님이 관심을 가져주시니 말씀 드리지요. 믿거나 말거나, 저는 두 번 용을 만나 용의 등을 타고 날라 다녔어요. 제 앞에 용이 나타나더니 자꾸만 타라는 거예요. 용의 잔등을 올라타자 제가 원하는 곳으로 아니면 신세계로 날라 다니면서 신비의 세계를 보여 주는 거예요. 한번은 이 집에서, 또 한번은 경주 관광호텔에서였어요”
서울 M호텔의 상속녀인 서미령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친척에게 재산을 몽땅 빼앗겨 버린다. 해결하러 한국에 간 오빠가 의문사로 죽자 뒤 따라 들어간 어머니는 화병으로 돌아가신다. 여동생과 미령이는 충격으로 결혼생활이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나버렸다. 5년동안 거의 식음을 전폐한 채 폐인이 되어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날 하얀 할미천사가 미령이 앞으로 날라 오는 것이었다.
“나는 할미신 마고신령이다. 너를 만나기 위해 만년을 걸려 이제사 찾아왔다”
그때부터는 그녀는 마고가 되어 인류평화주의자로 다도(茶道)와 명상(冥想)운동을 펼치고 있다. 용을 타고 날라 다닌 여인. 마고는 내가 만나본 유일한 용의 목격자다.
▲ 영화 D-War의 한 장면
용은 존재하는 실존인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신화인가? 영적인 존재인가?
동물의 띠로 인간의 운세를 헤아리는 12간지는 2세기경 중국에서 생겨났다. 12간지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순서는 이렇다.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모두가 인간들이 만나는 짐승들이다. 거기에 딱 용이 하나 들어가 있다. 간지가 생겨날 때인 2세기경에는 용은 인간이 볼 수 있는 실존 생물이었다는 말이 된다. 14세기경까지 용은 파충류로 살아있었다고 주장하는 고고학자들도 있으니까. 이런저런 계산을 하고 있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당신이 아무리 용을 만나보려고 계시록을 뒤지고 창세기를 읽어보고 용을 써 봐도 소용없어요. 당신은 뱀띠이기에 용이 되기에는 틀렸다구요.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들었어도 뱀이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얘기는 전설의 고향에도 없어요”
“그런 소리 말아요. 내 고향 글갱이 옆 동네 이름이 용골(龍谷)이요 그 너머에 용머리(龍頭)가 있구. 용골이나 용머리에 가면 지금도 용을 볼 수 있을걸!”
“호호호호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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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壬辰年)이 됐어도 용을 만나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구정이 가까워 오니 고향생각 절로 난다. 내 다음에 고향가는 길에 용골과 용머리를 찾으리라. 용골의 대인 황종천 형은 2년전에 가셨지만 미망인 민경분 시인은 지금 후로리다에 살고 있다.
아스토리아에 사는 지원자 권사는 용머리출신이지만 고향조카처럼 반가운 사람이다. 우리 앞집에 살던 6촌 이계국 형님의 처조카이기 때문이다. 종천형과 계국형이 그립다. 그분들이 잠들어 있는 무덤을 찾아가서 한 마디하고 싶다.
“황종천 형님, 당신은 용골이 낸 용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