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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의 사랑방이야기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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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섬의 첫눈..달공달공 쓸공쓸공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3-11-22 (금) 13:30:11


 

 

돌섬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둘째딸 은범이와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눈 내리는 창밖이 아름다워요. 아빠는 첫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요?”

 

“있구 말고. 첫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지. 그것도 40년 동안이나..”

 

“와! 얘기해 봐요.”

 

은범이는 아빠의 로맨스를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온건 피천득과 김재순이야기였습니다. 로맨스는 둘만의 비밀인데 어떻게 그걸 딸에게 토설(吐說)한단 말입니까? 내가 신성일도 아닌데.

 

10년 차이인 피천득과 김재순은 서울대학교 사제지간 입니다. 두 사람이 어느 날 다방에서 만났습니다. 마침 창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첫눈이라서 그런지 커피맛도 대화도 향기로웠습니다. 김재순이 제안했습니다.

 

“선생님, 앞으로 첫눈이 내리면 먼저 보는 사람이 전화하기에요?”

 

“그거 아름다운 발상이네!”

 

그 후부터 첫눈이 내리면 두남자는 전화를 했습니다. 두 남자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피천득은 영문학교수로 한국최고의 수필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샘터를 발행하던 김재순은 국회의장을 지냈습니다. 그래도 두 남자는 잊지 않고 첫눈을 기다렸습니다. 첫눈이 내리면 문학소녀처럼 전화통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40년 동안 첫눈을 놓친 적이 없는데 6년 전 부터 전화가 뚝 끊겼습니다. 피천득이 6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김재순은 90노인이 됐구요. 얘기를 듣던 은범이가 갑자기 다운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빠, 지금 첫눈이 내리는데 90노인이 된 김재순옹은 누구와 전화를 할까요?”

 

“하늘나라로 올라가 피천득선생님을 만날 생각을 하고 있겠지. 첫눈을 보면 빨리 천국으로 올라오라는 피천득의 멧세지로 생각되어 눈물을 흘리고 있을거야.”

 

피천득의 묘지(墓地)위로 첫눈이 내리고 있을걸 생각하니 우리 부녀는 우울해졌습니다. 그때 아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가하게 커피마시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빨리 밭에 나가서 무를 뽑아 와야 해요. 눈 맞고 얼어버리면 안되니까.”

 

“눈 구경하고 싶었는데 잘 됐네.”

 

우리는 겨울 잠바를 걸쳐 입고 밭으로 뛰어나갔습니다. 하얀 눈속을 뛰어다니는 산토끼처럼 은범이는 즐거워했습니다. 우리 아파트단지에는 450세대가 사는데 50개의 농장이 있습니다. 놀이터(Children Garden) 꽃동산(Flower Garden) 농장(Vegetable Garden)을 만듭니다. 난 세 개를 불하(?)받아 35평짜리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옆 농장의 박씨는 60평입니다. 지난해 샌디태풍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금년은 농장 폐쇄령이 내렸습니다. 바닷물에 오염(汚染)되어 흙에 독(毒)이 생겼답니다.

 

“소금물로 소독되어 흙이 더 깨끗해 졌을겁니다.”

 

 

난 박씨를 설득하여 몰래 농사를 지었습니다. 어느 해 보다 풍년입니다. 수박과 토마토는 그렇게 달고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몰래 훔쳐 먹는 떡이 더 달다고 합니다. 몰래 심은 가지 고추 미나리 상추 도라지 무 배추 호박 오이로 만든 요리가 그렇게 맛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무실 직원이 와보고 감탄합니다.

 

“당신들이 전문가보다 낫소. 소금물에 절여진 흙이 더 건강한 모양이오.”

 

가을이 되자 무 배추만 남았습니다. 고추 토마토는 버리는 끝물이지요.

 

첫눈이 내리자 우리 세식구가 무 배추를 뽑은 겁니다. 김장을 담궈야 합니다. 셋이 달려들어 세통을 담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7시. 난 이놈들을 땅에 묻으러 밭으로 나갔습니다. 어제는 눈이 내리더니 오늘은 아침이 꽁꽁 얼었습니다. 첫 얼음입니다.

 

맙소사!

 

밭에 나가보니 모두 얼어 죽었습니다. 토마토 가지 고추가 얼어 죽어 축 늘어져 있습니다. 어제 무 뽑기를 잘했습니다.

 

김장독을 묻으러 땅을 팝니다. 땅속에는 7개의 김장통들이 동료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초가을부터 묻기 시작했습니다. 배추김치 무김치 동치미 총각김치 미나리김치 그리고 날무와 날배추도 묻어둡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사과도 묻어뒀습니다. 냉장고가 하나뿐이라서 웬만한건 죄다 묻습니다. 사과도 땅속에 묻어두면 몇 달이 가도 금방나무에서 딴 햇사과 맛입니다. 10통이나 묻었습니다. 진시황의 지하무덤보다 더 호화롭습니다.

 

“아빠, 아빠네 밭은 여름 내내 늘 푸른 농장이다가 겨울이 오면 김치공동묘지가 되요. 허허벌판 모두가 죽어버렸는데 김치가 되어 땅속으로 묻혀버리니 말예요. 엄마 아빠의 겨울준비는 꼭 다람쥐 같아요.”

 

“맞아, 엄마 아빠는 다람쥐처럼 추운 겨울을 달공달공하면서 지낼거야”

 

딸에게 다람쥐얘길 해줬습니다. 다람쥐 영감이 가을에 지하동굴을 만들었습니다. 동굴에는 알밤과 도토리를 잔뜩 쌓아놓았습니다. 눈보라 치는 겨울이 되자 다람쥐는 따듯한 지하 동굴로 들어가 겨울을 지냅니다. 다람쥐영감에게는 두명의 부인이 있습니다. 조강지처와 첩입니다. 일찍 시집와서 자녀를 낳고 살림하느라 바싹 늙어버린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눈까지 멀었습니다. 뒤늦게 얻은 첩은 젊고 예쁘고 탱탱합니다.

 

식사시간입니다. 다람쥐영감은 눈먼 조강지처에게 도토리를 한 웅큼 주었습니다. 도토리를 까서 씹어보니 여간 쓰고 떫은게 아닙니다. 씹을수록 씁니다. 그래서 “쓸공쓸공”하면서 먹습니다. 눈먼 다람쥐는 “쓸공쓸공”하면서 겨울을 지냈습니다.

 

예쁜 첩 다람쥐에게는 잘 익은 밤알을 한 웅쿰 주었습니다. 씹을수록 달고 고소합니다. 첩 다람쥐는 겨울 내내 “달공달공”하면서 지냈습니다.

 

“와우! 엄마 아빠는 달공달공 다람쥐부부야요.”

 

“그럼, 눈보라치는 겨울이 오면 김치공동묘지로 달려가 배추김치 깍두기를 꺼내어 올 거야. 밀가루를 반죽하여 만들어 끓여낸 손칼국수에 시뻘겋게 익은 깍두기 배추김치를 얹혀먹으면 얼마나 땀이 나고 시원하다구! 그게 달공달공인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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