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 시대에는 스타만이 살아남는다. 주가 상승의 대재벌도 일단 스타덤에서 물러나기 시작하면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유성(流星)처럼 끝장이다. 연예무대에서 불려지던 스타란 용어는 이젠 정치, 경제, 스포츠 심지어는 교회강단에까지 등장하고 있다.
색소폰을 불며 스타 흉내를 내는 대통령후보라야 인기가 있다. 일류목사가 되려면 로크리듬의 가스펠송을 불려대면서 설교할 줄 알아야 한다. 1등짜리 로또만 당첨돼도 스타가 되는 세상 스타 탄생을 항하여 세상은 몰려오고 뛰어가고 야단이다.
2000년전 이스라엘에 예수라는 목수가 등장했다. 30세의 나이에 물위를 걸어다니고 풍랑을 잔잔케 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소경의 눈을 열고 벙어리가 말을 하게 하고 보리떡 다섯덩어리로 5000명을 배불리 먹게하니 민중의 구세주(救世主)가 된다.
갈릴리의 촌뜨기가 스타, 그것도 슈퍼스타가 된 것이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기를 재촉한다. 스승 예수가 슈퍼스타의 제왕이 되는 날 자기들은 무더기로 스타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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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가 된 어느 봄 날 예수는 추종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입성한다. 개선문(凱旋門)이 열리는 스타탄생의 순간이다. 그런데 예수의 행동이 엉뚱하다. 열필 백마가 끄는 황금마차 대신, 나귀새끼를 타고 가는게 아닌가? 어른 체중에 눌린 나귀 새끼가 비틀거리면 나귀등위의 예수는 기우뚱 거리기 시작한다. 이리 비틀 저리 기우뚱, 그건 묘기 대행진이었다.
제자들은 혀를 찼다. 선생님이 애들 장난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서 제자들의 눈에는 광대-그렇다 광대예수로 보였다. 그들은 창피했다. 제왕으로 가는 길이 광대놀음이라니! 인산인해(人山人海)의 군중들도 예수의 기행에 조소와 야유를 보낸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어린애들은 그게 아니었다. 옷을 벗어 예수의 길을 카페트로 만들었다. 종려가지를 꺾어들고 호산나를 외쳐댔다. 어른들의 눈에 비친 광대 예수의 모습이 어린이들의 눈에는 만왕(萬王)의 왕 예수로 보인 것이다. 그 옛날 솔로몬이 노새타고 임금된 것처럼 우리임금 예수도 나귀를 타셨구나! 그래서 그들은 종려가지로 호산나! 예수만세. 왕중왕 만세를 외쳐댄 것이다.
어른들은 제자들까지 예수를 떠나간다. 누가 광대를 따르겠는가? 예수는 홀로 십자가로 나아갔다. 그리고 죽어가면서 부르짖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광대예수의 고독한 외침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는 스타 풍년의 세상을 살고 있다. TV화면에는 스타로 가득하다. 교회강단에도 스타 목사가 인기 독점이다. 그런데 이상한다. 아무리 스타들의 연기, 스타들의 설교를 들어도 우리 마음은 공허하니 말이다.
사실 우리처럼 스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는 광대가 필요하다.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죄인들의 아픔을 미친듯이 몸으로 연기해 주는 미치광이 배우- 광대가 그립다.
3월24일은 고난주일. 3월 31일은 금년도 부활절이었다.
“우리들도 고난주간을 지켜야지요? 무슨 이벤트를 만들까? 고기안먹기? 우리 식탁은 원래가 푸른 초원이니 장동으로 지킨셈이고, 금식(禁食)을 할까? 고나절 때마다 하다보니 연중행사가 되어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있다.
“고난주간에는 부부싸움 안하기. 욕설나 농담 안하기. 이미자노래(아내)나 조영남노래(남편)안 듣기를 합시다”
“그거 아주 쉽고 편한 이벤트이군요”
한주간 내내 부부싸움도 안하고 농담도 중단했다. 음악도 오라토리오나 칸타타만 들었다. 10년수도처럼 여간 고역(苦役)이 아니었다.
부활절 출석하는 미국교회에 나가서 할렐루야!를 합창했다. 자녀들을 불러 삶은 달걀이 있는 부활절 만찬(晩餐)도 나눴다.
그런데도 허전하다. 뭐가 잘못됐나? 끝나버린 고나주간을 생각해본다. 고나주간의 예수를 생각해보는것이다. 그 예수는 광대 예수였지?
만왕의 왕 예수께서 왜 고독한 광대의 길을 가셨을까? 우리시대의 마지막 광대- 예수가 그립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51:03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