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바닷가에 나간지 5시간이 넘었다. 보통 2시간이면 돌아오는데 웬일일까? 궁금해서 전화했다. 바닷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아내 목소리.
“여보, 신기하게 생긴 조개가 잡혀서 한 마리 두 마리 잡다보니 늦어졌어요. 생전 첨보는 조개인데 잡을 때마다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에요. 뽈락뽈락 하면서 모래에서 아기오줌발이 솟아오르면 얼른 조개잡이 삼지창으로 파요. 길쭉하게 생긴 이상한 조개가 숨어 있어요. 나를 보고 놀라 얼른 아래로 숨어버리는데 날 세게 오른손을 넣어 잡아당겼어요. 이놈이 어찌나 힘이 세고 빠른지 대개 놓쳐버려요. 한번 놓쳐버린 놈은 땅속 깊숙이 숨어버려 1미터를 파도 안 되더라 구요. 몇 번 실패하자 요령이 생겼어요. 날세게 모래를 퍼내면서 번개처럼 오른손바닥을 그놈 옆구리로 꽉 찔러 넣어 붙잡아요. 이놈이 내려가는 데로 잡은 내손도 내려가면서 한참 실갱이를 하다가 용케 잡아내지요. 어찌나 재미있던지 이놈 한 마리를 잡을 적마다 고사리 캐다가 100년묵은 산삼을 캔 심봤다 가 된 기분이라구요.”

아내는 어둑어둑해서 돌아왔다. 25마리를 잡아왔다. 일반조개 40마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우리부부는 그놈들을 살펴봤다. 모시조개나 백합 같은 일반조개는 동그란데 이놈은 길쭉하다. 그렇다고 맛조개 처럼 일방적으로 긴건 아니다.
이놈들은 하나같이 혀를 내밀고 있었다. 혀가 한 뼘이나 되는걸 보니 몸 전체를 내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길게 내밀고 있는 혀의 모양이 가관(可觀)이다. 우리부부는 깔깔 웃어대면서 이름을 지어봤다.
“내밀고 있는게 꼭 코끼리 코처럼 생겼네. 코끼리 조개인 모양이지?”
“아니야, 수놈 당나귀의 축 늘어진 페니스처럼 생겼어. 당나귀조개일 꺼야”
“하하하하, 솔직히 보면 늙은 외간 남자의 거시기처럼 생겼구먼”
“호호호호 그럼 이놈을 바람둥이 조개라고 불러야겠네”
한바탕 욕을 해준 우리는 이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먹어도 되는 건지 궁금했다. 다음날 알아보기 위해 중국수퍼마켓을 들린 아내가 전화로 외쳤다.
“여보, 중국 수퍼마켓에서 그놈들을 팔고 있어요. 보통조개는 파운드당 4불인데 이놈들은 38불이에요. 와! 아주 고급 조개인게 틀림 없어요”
그날 밤 우리는 바람둥이조개 요리로 잔치를 했다. 그놈들을 넣고 칼국수를 끓였다. 어찌나 달고 연하고 맛이 깨끗한지 첨 먹어보는 칼국수 맛이었다. 호박 버섯을 썰어 넣고 오징어처럼 볶아봤다. 이놈들을 안주삼아 애들이 남기고 간 포도주를 따라 마셨다.
“춘향이 에미 월매에게 찬밥 한덩이 얻어먹고 ‘팔진미 오후청을 이 맛과 바꿀쏘냐’고 감복한 이도령이 내 부럽지 않소”
내가 짐짓 허세(虛勢)를 부리자 아내는 춘향이의 웃음을 흘렸다. 우리는 이놈들을 안주삼아 춘향전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 지상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놀라워한다.
“목사님, 그놈은 미루과이라고 하는 고급조개입니다. 일본인들이 최고의 횟감으로 치는 정력식품이에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처럼 영양식도 마찬가지에요. 두뇌처럼 생긴 호두를 먹으면 두뇌가 좋아지지요. 남자의 성기처럼 생긴 미루과이를 먹으면 정력이 그만이랍니다. 미루과이는 시애틀 해변에서 양식을 합니다. 자연식은 멕시코해변에서 자라는 회귀종이지요. 그런데 뉴욕 돌섬바닷가에서 미루과이가 발견됐다니? 허허허, 목사님이 돌섬에서 크게 회춘할 길조(吉兆)가 틀림 없습니다.”
며칠 전 한국TV에서 미루과이 잡는법이 방영되고 있었다. 멕시코 해변에서 애들이 잡고 있었다. 워낙 빠르게 아래로 숨는 바람에 잡기가 힘들다. 질식용 화학가루로 잡고 있었다. 뽀그르 하고 실 오줌이 솟아오르면 얼른 질식용 가루를 뿌린다. 최루탄 가스를 맞은 젊은이들처럼 미루과이 조개가 재채기를 하면서 밖으로 튀어 올라온다. 그러면 애들이 얼른 두손으로 잡아낸다. 내가 재미있어 하자 아내가 말했다.
“그래도 내가 삼지창으로 모래를 파고 잡는게 더 재미있어요. 모래를 파는 재미, 잡았다 놓쳐버리는 재미가 얼마나 스릴있다구요?”

아내는 오늘도 조개 잡으러 바닷가로 나갔다. 같이 잡자고 하지만 난 성질이 급해서 금방 실증 낸다. 오늘 만큼은 몰래 뒤 따라 가서 응원하기로 했다. 두시간 동안 바닷가를 걷는 운동을 끝내고 나서 아내를 찾아갔다. 엎드려 모래를 파내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누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향의 어린시절, 봄이 오면 동내처녀들은 마을 가운데 있는 보리밭으로 나가 냉이를 캤다. 엎드려 나물 캐는 아가씨들의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치마로 살짝 가렸지만 허리를 타고 내려오다가 동그랗게 퍼진 히프가 얼마나 육감적이었던가? 얼굴도 예뻤다. 반드시 화장을 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봄나물 캐는 보리밭은 미스코리아 선발장소였다. 우리
동네에 세명의 미인이 있었다. 앞집에 사는 원제희누나 서쪽의 박재숙누나 그리고 우리누나 이계화. 재숙누나는 마릴린 몬로처럼 육감적이었다. 몬로처럼 살다가 몬로처럼 일찍 죽었다. 제희누나는 너무 약아서 제꾀에 빠지길 잘하고. 우리 누나 계화권사는 남편을 장로로 만들면서 모든 걸 이겨냈다. 이제는 남편도 떠나가 버린 79세 할머니가 됐지만.
지금 고향에 가 보면 보리밭도 나물캐는 처녀들도 볼 수 없다. 처녀들은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번다. 나물은 시장에서 사다먹는다.
차라리 돌섬에서 조개 잡는 늙은 아내의 모습에서 향수(鄕愁)를 느낀다.
“여보 얼마나 잡았수?”
“오늘은 안 잡히네요”
“그러나 안 잡히는 데도 모래를 파고 있는 당신 모습이 더 아름답소. 조개나 미루과이가 안 잡히면 대신 즐거움 행복 건강을 캐내게 될 테니까”
아내가 누나처럼 웃고 있었다. 69세가 된 아내가 스무살 누나처럼 웃고 있었다. 아내의 얼굴에 봄이 오고 있었다. 돌섬의 봄이.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51:03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