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을 자르는데 방정맞게도 흥부생각을 했다. 이 수박이 흥부의 복 바가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르자마자 금은보화가 와르르 쏟아져 나온 흥부의 복 바가지. 그게 보통 박인가?
박씨를 얻기 위해 제비새끼 다리가 부러지는 아픔이 있어야 했다. 다리 부러진 제비새끼를 치료하여 말짱하게 고쳐내야 하는 흥부의 눈물겨운 정성이 갸륵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박씨 하나를 심었더니 이게 흥부네집 지붕을 타고 올라가서 세개가 열렸다. 수박이나 박이나 족보로 따지면 같은 호박씨과(湖泊果)이다.
돌섬수박도 흥부의 박처럼 사연이 깊다. 손바닥만한 에덴농장에 수박을 심었다. 지난해에는 실패했기에 금년은 일찍 서둘렀다. 날씨가 더워 3월에 수박모종을 심었다. 밤새 추위가 찾아와 새벽녘에 나가보니 하얗게 얼어 죽었다. 4월에 다시 심었다. 이번에는 시름시름 앓더니 노랗게 타 죽었다.
밑을 파보니, 아 글쎄? 깻묵이 뜨겁게 발효(醱酵)를 하면서 군불을 지피고 있지 않은가? 아내가 거름에 좋다고 깻묵 두 포대를 사 온게 탈이었다. 썩힌 후에 거름으로 줘야 하는데 생 깻묵으로 줘버렸으니 열에 타 죽어버린 것이다. 깻묵을 통에 넣고 물을 부었더니 한달 후에 새까맣게 썩어 고급비료가 됐다.
삼세번이라 하지 않던가? 삼수하는 입시생처럼 5월에 세 번째 심었다. 넝쿨로 퍼지면서 잘 자랐다. 그런데 뉴욕에 5월 장마가 들이닥치자 시름시름 죽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도마도 고추 수박은 장마에 약하다. 가물다고 물을 자주주면 열매가 썩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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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그루마다 세뼘 높이의 산을 만들고 그 위에 옮겨 심었다. 무등산 수박밭이 돼 버린 것이다. 그랬더니 장마비가 와도 아래로 흘러가버렸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여섯 그루에서 일곱덩이가 열렸다. 옆에 심은 고추 토마토 가지사이로 수박덩이가 매달린 넝쿨을 끌고 다니면서 잘도 커갔다.
6월이 지나고 7월을 보낸 후 8월이 되자 수박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따야하는데 익었는지 알 수가 없다. 수박 겉 핧기라더니? 만져보고 맡아보고 핥아봐도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는 유일한 판별법은 두들겨보는 것이다. 부흥회를 하면서 많이 써먹은 수법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속이 빨갛게 잘 익은 수박처럼 성숙한 신앙에 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99세에 성숙했습니다. 욥은 재산과 자녀들을 몽땅 잃은 후에 성숙했습니다. 성숙한 믿음을 어떻게 아나요? 펄펄 뛰면서 방언예언 한다고 성숙했다고 알 수 없어요. 성숙한 신앙은 수박과 같아요. 때려보면 압니다. 덜 익은 수박은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때리면 ‘툭툭’거리면서 북소리가 납니다. 잘 익은 수박은 아무리 세게 때려도 “푱푱”거리면서 피아노-그것도 아름다운 피아니씨모 소리가 나지요. 그런 놈은 짜개 보면 꿀물이 흐르는 빨간 수박살이 가득 차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두드려보십니다. 병으로 실패로 고난의 방망이로 두드려보십니다. 그때 ’퉁퉁‘거리면서 북치는 불평소리가 나면 덜 익은 신앙입니다. 맑은 피아니시모로 ’아멘아멘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소리가 나면 잘 익은 성숙한 신앙이지요.”
20일 전이었다. 자칭수박감별사 문전도사가 와서 두드려보더니 성숙 판정을 내려주고 갔다. 그녀는 피아니스트라서 나 보다 더 정확하겠지? 일주일 후에 그녀가 두드린 놈을 따서 단칼에 쫙 갈라 봤더니? 맙소사! 붉은색과 흰색이 반반이었다. 덜 익은 것이다. 그래도 서걱서걱하고 시원한게 먹을 만했다. 사람들은 가게에서 사온 잘익은 수박을 제쳐놓고 그놈만 먹어댔다. 이놈이 제대로 익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7개의 수박이 익어가는 데 난 수박속을 알수가 없어 걱정이었다. 지나서 따면 곯아버리기 때문이다. 이때 임목사부부가 돌섬을 찾아왔다.
“이목사님 제가 수박동네에서 목회를 해봐서 잘 압니다. 푸른 줄 사이에 흰 부분이 허옇게 퍼져있으면 잘 익은 거지요. 그보다 더 확실한건 땅에 닿아있는 수박의 아랫부분이 노란색깔이면 아주 잘 익은 겁니다. 제가 밭에 한번 볼까요?”
그는 우선 수박의 크기에 놀랐다. 7개중에 4개가 큰데 그중 1개는 정월 대보름달보다도 더 컸다.
“와! 무등산수박보다 큰 돌섬대박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크게 키우셨나요? 잘 익었어요. 일주일후쯤 따시면 기가 막히게 달 것입니다.”
이목사가 설명했다. 수박농부들은 수박모종으로 수박씨가 아닌 박씨를 뿌린단다. 두 뼘쯤 박이 자라면 줄기를 싹둑 잘라내고 수박줄기를 잘라다 접목한다. 힘이 세고 생명력이 강한 박씨 뿌리를 이어받아 자란 수박 넝쿨은 사방으로 뻗어나가면서 태산만한 수박을 달고 다닌다. 성주수박 무등산수박은 모두가 박나무를 접목한 대박들이다. 그런데 우리수박은 접목도 안 했는데 대박이다.
6일후 나는 문제의 그 돌섬대박을 따서 가슴에 안았다. 한 아름이다. 내 생전에 이렇게 큰 수박을 들어보기는 처음이다. 우여곡절 3수 끝에 수확한 수박이 이렇게 커줬다니! 난 박을 앉고 들어오면서 마누라를 찾은 흥부처럼 흥분했다.
“여보! 드디어 수박을 따왔어. 이놈이 보통 수박 같지 않아. 흥부의 복 바가지처럼 가르자마자 금은보화가 좌르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 내가 칼로 자를 테니 당신은 꽉 붙들고 있어요.”
아내가 가보(家寶)처럼 아끼는 독일제 부엌큰칼을 들고 나왔다. 나는 속으로 흥부가를 노래하면서 칼을 들이댔다.
“톱질하세 톱질하세/ 슬근슬근 톱질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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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살짝 찌르기만 했는데 쩍! 소리가나면서 수박문이 활짝 열렸다. 와! 수박 안은 잘 익은 수박살로 가득했다. 참깨묵을 먹고 자라서 꿀처럼 달았다. 어찌나 크고 맛있던지 이웃에 사는 세집을 불러 수박잔치를 했다. 그 옛날 통돼지 잡아 동네잔치를 벌렸던 고향시절처럼. 난 좋기만 한데 아내는 서운한 눈치였다.
“당신은 흥부네 박처럼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오는 복 바가지라도 되는 듯 떠들었는데 결국 수박이네요.”
“그게 어때서? 잘익은 돌섬수박 먹고 흥부처럼 착하게 살면 그게 인생대박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