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목사에게 가장 추한모습은 설교구걸입니다. 나는 대개 설교를 사양합니다. 완전은퇴를 고집하기 때문이지요. 욕심쟁이목사님은 영어로 설명하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은퇴를 영어로 Retire 라나? 타이어(Tire)를 다시(Re) 갈아 끼우는 게 은퇴랍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 열심히 짐(Gym)에 나가고 골프를 쳐서 건강한 타이어로 갈아 끼운 다음 선교사로 나가고 신학교 강사자리를 노립니다. 나이 80에 젊은 여자와 재혼하는 노익장목사님도 봤습니다.
은퇴(Retire)가 타이어를 갈아 끼운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타이어를 갈아 끼운 자동차에 옛날 교인들을 태우고 이 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리면서 설교구걸을 다니면 안 되지요. 할머니가 된 부인을 태우고 다니면서 여생을 즐겨야 합니다. 나는 은퇴 3년 동안 딱 두번 설교를 했습니다. 특별대우를 제시하여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설교사례를 안합니다. 그래도 안 와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응했습니다. 뉴저지 남쪽의 교회가 인상적입니다. 5가족 10명이 모이는 가정교회인데 수준이 일류교회였습니다. 100% 대졸에다가 100% 집사였으니까요. 이날 설교반응이 대성공이었답니다. 제목이 특이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런 설교를 하면 안 됩니다” 이었으니까요.
10명 관객 앞에서 1회로 끝내는 게 아까웠습니다. 뮤지컬 ‘캣츠’는 맨해튼 브로드웨이에서만 15년간 공연했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물경 5천만 관객을 울렸다지요. 억울해서 칼럼형식으로 독자들 앞에 내보내봅니다.
“이런 설교는 하면 안 됩니다”(요4:24)
1. 축도설교하면 안 됩니다.
축도는 예배 끝의 마지막순서입니다. 신학교 설교학시간에 배운 오리지널 축도는 이랬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은총이 이 회중위에 임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하노라)”
이게 세월 따라 유행 따라 제멋대로 진화해버렸습니다.
“지금은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독생자 예수를 우리위에 내어주신 하나님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지금도 살아 계서서 위로하시고 함께하시고 감동감화하시는 성령님의 한량없으신 위로하심이...‘로 발전하더니
“여기오신 총회장님... 아무개목사님”하면서 일일이 이름을 거론하는가 하면, 끝내는 세계로 우주로 번져나갑니다. 겨우 수십명 회중에게 축도하는데 “미국 오바마 대통령, 대한민국 이명박 대통령”은 기본이요 “북한 김정은 에게 주님의 은총이 임 하옵기를...”거론하면서 축도합니다. 이대로 놔뒀다가는 “춘향이와 이도령”이 끌려나올 판입니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건 축도가 설교를 침범하여 축도설교를 만들어 버렸다는 겁니다. 설교구절이 끝날 적마다 ”이러이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동의를 받아내기 위하여 ”아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건 신학적으로나 성경적으로 페널티감입니다. 강단 퇴출대상이지요. 이를 보다 못한 통합측 장로교단이 총회에서 ”축도설교금지”를 가결했습니다. 그래도 장자교단답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싫어하여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답니다. 축도설교가 한국교회강단을 망치고 있습니다.
2. 기복설교하면 안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아버지 되십니다. 자녀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 할 일이 없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무엇이던지 할 수 있습니다.”
복 받지 못함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교합니다. 믿음 얻기 위해 돈 시간 몸을 바치게 합니다. 헌금 많이 하고 기도 많이 하고 전도 많이 하면 축복 받는 걸로 믿게 합니다. 교인들이 그대로 하니 교회는 저절로 불길처럼 부흥되게 마련입니다. 교회는 대형교회로 부흥되고 목사님은 재벌 부럽지 않게 부자가 됩니다. 그러나 교인들의 삶은 여전하지요. 그게 원래 사이비 이단들이 즐겨 쓰는 기복설교입니다. 기복신앙은 국가에서 사이비로 처벌했습니다. 세종대왕시절 유명한 화가 안견이 상소를 올렸습니다.
“폐하, 지금 전국에는 교언영색 감언이설로 백성들을 현혹하는 사이비종교인들로 들끓고 있습니다. 저들을 엄벌하여 문화국가를 건설하소서”
세종은 안견의 건의를 받아드려 기복신앙을 剔抉(척결)하고 르네상스시대를 이뤄놓았습니다. 지금 한국의 대형교회는 기복설교일색입니다. 세종이 살아있다면 모두 감옥행 감들이지요.
그러면 어떤 설교를 해야합니까?
1. 신령을 설교해야 합니다(요4:24). 기독교는 조직 선전 훈련에 너무 치우쳐 신령에 약합니다. 영화를 보면 목사보다는 신부가, 신부보다는 스님의 영력이 강합니다. 드라큐라 오멘 같은 심령과학 영화에서 귀신을 때려잡는 종교인은 목사가 아닙니다. 신부 아니면 스님이지요. 고기를 먹고 성생활을 하는 목사가 채식만 하고 금욕생활을 하는 중들의 영력을 당해 낼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들은 영력대신 배우 뺨치는 연기력으로 엔터테인먼트예배를 인도하지요. 동정녀탄생 부활 천국 성령 천사...무조건 믿으라고 솥뚜껑으로 자라 잡는 식이 아니라 눈으로 볼수 있게 설교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목사가 영력을 받아야 하겠지요. 최면술 심리학이 아닌...
2. 진리를 설교해야합니다(요4:24)
과학 철학이 진리입니다. 독재와 부정부패에 항거하는 게 진리입니다. 긍휼이 여기는 구제와 봉사가 진리입니다. 시대정신 역사의식이 진리입니다. 행동하는 신앙이 진리입니다. 진리를 설교해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진리가 없는 신령설교는 무당의 푸닥거리입니다. 신령이 없는 진리설교는 3류 코미디가 될 뿐이고요.
결론은 설교가 너무 많습니다. 티브이를 틀면 설교홍수예요. 설교공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