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오후 3시 뉴욕 실로암교회. 이종성목사 시집 <당신의 음성>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회를 보는 저자의 부인 허금행시인이 서평자를 소개했다.
“이제 이계선시인께서 나오셔서 서평(書評)을 해 주시겠습니다.”
박수속에 등단한 나는 볼륨을 한껏 높여 큰 목소리로 떠들었다. 마이크가 없는 친교실인데 식사를 하고 있어서 장내가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렁찬 목소리에 압도당한 청중들은 사이사이 웃어주면서 가끔씩 즐겁다는 표정까지 보내왔다. 서평을 끝내고 내려오자 눈이 커서 아름다운 여인 P시인이 웃었다.
“목사님은 재미있게 글을 쓰시지만 서평도 재미있게 하시는 군요”
나는 몰래 훔쳐 먹다가 들킨 꽃제비소년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엉터리였으니까. 엉터리로 서평을 했으니까 재미있었겠지?”
‘아유 목사님두!“
그녀는 내말을 소크라데스의 변명처럼 차원 높은 고승의 선문답(禪問答)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다. 이날 시집 서평은 여간 엉터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베어마운틴 숲속에 사는 이호재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낙도 선교차 한국으로 떠나는 의사 이종성목사의 시집출판회에 나오라는 것이다. 부를 적마다 미적거리기만 했는데 가까운 후러싱이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축사를 해달라고 이종성시집 <당신의 음성>을 보내왔다. 나는 축사참조용으로 214쪽 ‘교회당 Sale’과 300쪽 ‘당신의 음성’을 읽어보고 행사장으로 갔다.
그런데 순서지를 보니 축사가 아니라 서평이 아닌가? 맙소사! 나는 소설가이지 시인이 아니다. 평생 써본 시가 5편도 안 된다. 시집서평인줄 알았으면 거절했을 것이다. 순서지에 나와 있으니 피할 길이 없다.
1부 예배시간에 시집을 펴놓고 번개준비를 했다. 대충 흝어보고 내용을 짐작하는데 20분이 흘러갔다. 더 이상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고 골치만 아팠다. 고민하는데 계시(啓示)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엉터리로 하자! 그게 내 전매특허가 아닌가? 나는 성큼 앞으로 나가 입을 크게 열고 떠들어 댔다. 서평을 끝내고 내려오는데 트렌턴에서 왔다는 신사가 인사를 했다. 박근혜 미주후원회장이라고 했다.
“목사님의 설교 감명 깊게 잘 들었습니다.”
맙소사! 문학강연이 설교로 들렸으니 내가 엉터리 서평을 했구나! 집에 돌아와서 바둑 복기(復碁)하듯 글자로 옮겨봤다. 내 생애 최초의 시집서평을.
<오늘 이종성목사님을 만나 악수하다가 놀랐습니다. 처음 만나기 때문입니다. 전에 제가 만난 이종성목사님은 알고 보니 다른 분이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종성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서평 한다고 염려할지 모릅니다. 걱정 마세요. 첨 만나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이종성목사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진으로 사람을 압니다. 엑스레이를 찍으면 뼈 속까지 압니다. 그보다도 사람을 더 정확하게 알게 하는게 있습니다. 작품입니다. 시 수필 소설 등 픽션이나 논픽션이나 작품을 읽으면 그 사람의 성품 실력 사상 철학이 환히 보이게 마련입니다. 사진은 겉모양만 보이지만 작품에는 열길 물속보다도 더 깊은 저자의 속마음까지 환히 드려다 보입니다. 이종성목사의 시집 <당신의 마음>을 갖고 있기에 저는 감히 이목사님을 잘 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종성시집 <당신의 마음>은 어떤 책입니까?
모두 4부로 돼 있습니다, 1부 인생의 맛. 2부 계절의 맛. 3부 도시의 맛. 4부 기도.
55편의 시가 들어있는 <1부 인생의 맛>에서는 쓸개를 씹는 듯한 질곡(桎梏)의 냄새가 납니다. 첫시 ‘산부인과 의사’에서 저자는 산부인과병동을 아기웃음이 탄생하는 행복의 시발역으로 보지 않습니다. 때로는 티켓도 없이 시간도 모르며 끝없이 달려가는 열차를 타기위한 대합실로 묘사했습니다. 이종성목사의 인생철학이 그렇습니다. 한곳에 안주하지 않고 구도자처럼 끝없는 도전과 추구의 길을 달려가고 있어요. 저는 오늘 아침 크리스장이 진행하는 스마트폰 라디오에 출연하여 “안철수 등장을 어떻게 볼것인가?”를 토론하고 왔습니다. 의사에서 컴퓨터공학자로 대학교수로 변신 진화하는 안철수를 한국사회는 구국의 메시아로 열광합니다. 이종성은 더하지요. 안철수는 3관왕이지만 이종성은 7관왕이기 때문입니다. 산부인과의사 한의사 목사 시인 화가 사진작가 선교사입니다. 그는 9관왕 10관왕의 길로 더 달려 갈 것입니다. 그게 시정신이요 이종성의 시대정신이기 때문입니다.
▲ 이종성 목사
31편의 시가 수록돼있는 <2부 계절의 맛>에서는 아름다운 봄 향기 냄새가 납니다. 향기로운 멜로디가 들려옵니다. 제 앞서 어느 분이 낭송한 200쪽 ‘봄날’을 봐도 그래요. ‘봄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맑은 물소리입니다. “흐른다. 흐른다. 흘러 흘러간다. 흘러라 흘러다오. 봄날이 흐른다” 봄 물결소리에 추억도 사랑도 생명도 흘려보내면서 행복해하지요. 저자는 자연을 사랑하는 ‘Natural Pietist’ 입니다. 일하는 병원은 후러싱에 있지만 집은 짐승들이 사는 산속에 있습니다. 일을 끝내고는 3시간을 운전하여 베어마운틴 너머 산속으로 들어가서 밤을 즐기는 자연주의자입니다.
‘3부 도시의 냄새’에서는 최루탄가스 보다도 지독한 송장썩는 냄새가 나지요. 수록한 22편이 모두 그렇습니다. 교회마저 도시에 있으면 세속에 오염(汚染) 돼 자본주의 냄새가 납니다. 214쪽 ‘교회당 Sale’을 보실까요?
팔려간 교회당위에 “....새 주인은/ 건물위에/ 새 간판을 달았습니다/ 화려한 네온싸인이/ 반짝반짝 /Night Club...(중략)....지붕위에 집을 짓고 살던/ 새들도/ 놀라 둥지를 떠났습니다....(중략)...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처럼 아름답습니다. 슬프지만. 225쪽 ‘도시의 꿈’은 TS. Eliot가 노래한 ‘황무지’ 처럼 처절합니다.
마지막 <4부 기도>에는 이상하게 ‘맛’을 생략했어요. 사실 제대로 된 경건(敬虔)은 무색무취이지요. 사기꾼 약장수들처럼 혀에 꿀을 비르고 달콤한 목소리로 교언영색(巧言令色) 감언이설(甘言利說)로 교인들을 현혹하러 들지 않습니다. 300쪽 ‘당신의 음성’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종성의 시로 당신의 음성을 읽을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4부 기도>를 읽어보면서 이종성목사님이 왜 조국의 낙도를 찾아가는지 짐작합니다. 단순한 의료선교의 길만은 아닐 겁니다. 당신의 음성을 찾아서 무의촌으로 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적은걸 읽어보니 나도 모르게 문학 평론가로 데뷔한 기분이다. 엉터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