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누구신데 저에게 인사를 하십니까?”
전경(戰警)은 깜짝 놀라며 당황해했다. 전경이 놀라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놀랐다.
“아니,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인사하는데 왜 놀라십니까? 난 말이 안 통하는 흑인들이나 스페니시에게도 인사를 합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국, 그것도 수도 서울 한복판 광화문 경찰청정문에서 근무하는 동포에게 인사하는데 놀라다니......,”
“아! 미국에서 오셨군요. 한국에서는 아는 사이끼리만 인사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면 사기꾼인가 경계하지요.”
한국 방문 중에 있었던 해프닝이다. 고향의 어린 시절 난 인사를 싫어하는 무례소년(無禮少年)이었다. 어른을 만나면 인사하기 싫어 얼른 도망쳐 숨었다. 인사를 굴욕이나 아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먼저 인사하기 전에는 절대로 머리를 굽히기 싫었다.
그런데 형은 정 반대였다. 어른을 보면 멀리 쫒아가서 꾸벅! 인사를 했다. 어찌나 인사성이 밝은지 사람들은 형을 ‘깨 신랑’이라 불렀다. 대신 인사를 싫어하는 내 별명은 ‘사납쟁이’이다.
이런 내가 인사꾼(?)이 된 건 돌섬에서 살고부터다. 2010년 목회를 은퇴하고 노인아파트를 찾아 케네디공항 뒤 Far Rockaway로 왔다. 바다경치가 아름다운 별천지(別天地)였다. 한국인이 별로 없었다. 90%가 흑인들과 스페니시들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상주하다시피 하는 우범지대(虞犯地帶)예요. 그래서 한인들이 왔다가 몇 달 못 견디고 무서워 가버리지요”
젊은 서민들도 함께 사는 시티하우징이라 아주 지저분했다. 엘리베이터 안이 하도 더러워 비상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는데 마약을 피고 있던 젊은이와 마주쳤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향해 다가와서 “20달라만 내놔라” 협박 했다. 아파트에 와서 내가 받은 첫 인사였다. 없다고 했더니 2달라만 달라는 것이다. 순간 겁도 나고 무서웠다.
(이곳에서 살려면 저들과 친해야 하는데 영어도 신통치 못하니 어쩌나......,)
묘안(妙案)을 궁리하다가 우리 부부는 돌파구를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인사작전이다.
“인사작전으로 나갑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도 있지 않소. 영어를 못해도 인사하는데 문제없지. 굿모닝. 하우아유. 하이. 탱큐 베리마치. 아이엠 화인 엔드유. 그리고 보너스로 갓 브레스유 만 할 줄 알면 되는 거니까”
다음날 아침 첨 만나는 흑인청년에게 활짝 웃는 얼굴로 우렁차게 “굳 모닝”을 외쳤다. 나는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목소리만은 흑인 농구선수보다도 훨씬 크다.
“어?”
쩌렁쩌렁한 내목소리에 흑인이 놀란 게 분명했다.
“왜 모르는 나에게 인사하느냐?”
“이웃사촌이기에 인사한다. 한국에서는 이웃을 사촌이라고 부른다. 친척처럼 가깝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지붕아래 한 아파트에서 사는 같은 식구들이다”
오디션을 받는 연기지망생처럼 첨에는 힘들었다. 억지로 영어를 하자니 혀가 뻣뻣했다. “굿모닝”을 “굶었니?”로 ‘댕큐 베리머치’를 ‘댕기면서 빌어먹지’로 발음하면서 장난질하던 중학교 영어시간이 생각나서 속으로 웃었다.
자꾸만 하다 보니 입술에 치즈를 안 발라도 발음이 부드러워졌다. 반응도 부드러워졌다. 내가 인사를 하면 손을 내밀었다. 지금은 그들이 먼저 굿모닝 하면서 달려온다. 남자들은 손을 잡고 흔들어 대고 여자들은 헉(Hug)을 하거나 볼을 비벼댈 정도다.
신기하다. 인사하면 가까워진다. 인사하고 손을 잡으면 따스하게 전기가 통한다. 전기가 통하면 가슴에 불이 켜지고 뜨거워지면서 하나가 된다. 남녀관계만 그런 게 아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어디나 통하는 게 인사다.
병들고 가난한 흑인들을 보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생겨난다. 인사하고 두 번 잡아준다. 어린아기의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보면 흑인이라도 귀엽다. 위층에 사는 흑인 남자 중학생은 노루처럼 우수(憂愁)에 잠겨있는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죤, 오늘은 무슨 괴로운 일이 있었니?”
“아버지가 며칠 전에 직장에서 쫓겨났어요. 아버지가 불쌍해서 죽겠어요? 한국인들은 부자라는데 우리 아버지 일할 데가 없나요?”
같은 층에 사는 애디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중년의 스페니시다. 권총을 갖고 있을 정도로 과격한데 지금은 우리부부의 친절한 경호부대(?)가 됐다.
돌섬아파트에 살면서 나는 길거리로 바닷가로 인사작전지역을 넓혀간다. 어느 때는 숲과 바다, 어느 때는 새와 구름에게도 인사한다.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10년 만에 한국 가는 길이니 이참에 한국에까지 나의 인사영토를 넓혀야지!)
광화문에 있는 “경희궁의 아침” 아파트에 묶고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정문이 바로 길 건너였다. 두 명의 전투경찰이 보초를 서면서 출입자에게 거수경례(擧手敬禮)하는 게 보였다. 그러데 그들은 인사하기만 하지 받는 게 없다. 얼마나 재미없을까? 해서 내가 찾아가서 인사를 한 것이다. 로봇처럼 기계인사만 하던 전투경찰은 나의 인사를 받고 아주 고마워했다.
“경찰청 정문 근무 2년 동안 인사하기만 했지 인사 받아보기는 처음입니다. 그것도 미국에서 오신 분에게서 말입니다. 고맙고 영광스럽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살려면 그 어려운 영어를 잘해야지요?”
“아닙니다.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영문법 영어가 어렵지, 미국영어는 아주 쉽습니다. 굿모닝, 탱큐 베리머치 하는 인사영어만 할 줄 알면 미국에서는 다 통하니까요” “하하하, 선생님의 영어인사 가르침이 탱큐 베리마치입니다.”
전경은 아주 유창한 영어발음으로 탱큐인사를 했다.
옛말에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먼저 인사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보니 일신상의 안전은 저절로 해결이 되었다. 굿 ~라이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