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섬 통신을 읽어보면 목사님내외분의 은퇴생활이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목사님이 사시는 돌섬이 천당아래 999당 쯤 되는 것 같아요.”
세인트루이스에 사는 여류 최시인의 메일이다.
“그래요. 999당이 맞아요. 마누라와 싸우는 1%만 없다면 내가 매일 1000당이 되는 건데. 부부싸움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게 없다는 성경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천국에 혼인제도가 있다면 천국에서도 부부싸움을 할 테니까요.”
2011년의 첫날. 나는 거실 벽에다 큼지막하게 새해목표를 써 붙여놓았다.
“2011년은 부부싸움 안하는 해”
극장 간판그림을 보고 흥분하던 소녀시절처럼 아내가 좋아했다.
“벤허 구경하러 필동에 있는 대한 극장에 온 기분이네요. ‘1962년은 벤허의 해’ 라고 참 대단했었지요.”
그런데 겨우 한달을 채우고 2011년 간판이 사라져 버렸다. 정답게 해변을 걷고 돌아오다가 대판 부부싸움을 벌렸기 때문이다.
우리부부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만난 격(犬猿之間)이다. 성격 취미 식성 모두가 남남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건 내가 싫어하고 내가 좋아하는 건 아내가 싫어한다. 매사 충돌하기 때문에 항상 싸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TV앞에서도 밥상 앞에서도 일촉즉발(一觸卽發)이 자주 일어난다. 아내는 드라마중독자인데 난 스포츠광팬이다. 아내는 싱겁게 먹는 육식체질인데 난 짜게 먹는 채식주의자다.
고기만 먹고사는 사자처럼 아내는 적극적이고 전투적이다. 난 풀만 뜯어 먹고사는 얼룩말처럼 겁이 많아 싸움을 못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여태껏 한 번도 싸워 본적이 없다. 결혼 첫날밤부터 날마다 밤마다 부부싸움을 해봤지만 한번도 이겨 본적이 없다. 40년 동안 그렇게 싸우고도 이혼도장을 안 찍은 건 기적이다. 그런데 돌섬통신을 읽은 독자들은 우리 부부를 부러워한다.
“아침에는 조각 밭에 나가서 김을 매고 오후에는 바다에 나가 꽃게를 잡는 목사님 부부의 이야기가 여간 아름다워 보이는 게 아닙니다. 꼭 초등학교시절 학예회에서 꼬마들이 연기했던 부부연극을 보는 것 같아요.”
돌섬에 놀러 와서 우리 부부와 꽃게를 잡아본 친구들은 더 감탄이다.
“목사님부부의 꽃게 낚시는 한편의 예술입니다. 사모님이 던진 낚시 줄에 꽃게가 팔랑거리며 매달려 올라오면 어느새 목사님이 매미채를 들고 달려와 있더라구요. 매미채를 슬그머니 물밑에 넣어서 날 세게 꽃게를 채 올리는데 사모님과 목사님의 빈틈없는 순간동작이 얼마나 멋있어 보이는지! 저렇게 호흡이 척척 맞아 돌아가는 명콤비 부부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습니다. 모든 걸 열어놓고 사는 두분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고 즐거워 보입니다. 우리부부는 생전 부부싸움 한번 해 본적이 없습니다. 집안은 언제나 조용하지요. 그런데 웬지 무덤처럼 무겁고 답답해요. 시영아파트에서 살면서도 활기 넘치는 목사님의 부부생활이 부러워요. 비결이 무엇인가요?”
“부부싸움덕분이지요. 우리는 40년 부부싸움을 통하여 문제되는 것들을 훌훌 털어 버리는 요령을 터득했습니다. 부부싸움으로 미운정을 얻는 거지요. ‘완전한 사랑=고운정+미운정’ 같아요. 고운정 만으로만 살려면 부부간에도 실수할까봐 조심조심 눈치를 봐가면서 살아야 해요. 인간은 누구나 단점도 있어요. 쓰러지고 넘어지고 미끄러지기도 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지요. 우리는 시끄럽기는 하지만 열려있고 자유스럽게 삽니다. 꼭 어린 시절에 장난하던 부부놀이처럼 사랑도 하고 싸움도 하면서 산답니다.”
새해 신년표어로 “2011년은 부부싸움 안하는 해”를 내걸었을 때 아내도 흔쾌히 동의했다. “좋아요. 40년간 지겹도록 부부싸움을 즐겨왔으니 금년만은 좀 쉬어 보자구요.”
우리부부는 서로 이해하면서 서로 양보하면서 서로 참아가면서 평화를 유지했다. 매일 싸울 일이 생겨났다. 그래도 싸우지 않고 꾹 참았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렇게 한 달을 견뎌냈다. 집안이 조용했다. 바가지 긁는 소리도 그릇 깨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하게 평화가 싸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평화는 어딘가 이상했다. 답답했다. 무거웠다. 무덤처럼 조용하고 답답한 평화! 억지로 만드는 평화였기 때문이다. 답답해서 질식 할 것 같았다. 조금만 건드려도 고무풍선처럼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내가 먼저 두손을 들었다.
“와! 이대로 견디다가는 질식해서 죽겠어요. 억지로 참고 견디다 보니 불평 원망이 차곡차곡 스트레스로 쌓여 암에 걸릴 것 같아요. 우리는 평화체질이 아닌가 봐요. 억지로 참는 평화보다 신나게 싸우는 게 훨씬 자유스럽고 편해요.”
평생 부부싸움 안하는 부부가 없는게 아니다. 천보교회 시절의 신집사 부부는 착하기로 소문난 잉꼬부부였다. 그런데 2세들이 모자라 보였다. 사나운 김권사와 사는 최장로는 여왕폐하의 시종무관처럼 아내를 떠받들었다. 최장로는 아직 더 살 나이에 암으로 죽었다. 현모양처나 착한 남편은 악처나 폭군남편보다 암 사망률이 높다고 한다.
내 주위를 봐도 맞는 말 같다. 맞벌이하는 남녀평등시절에 현모양처(賢母良妻) 만나기는 로또에 당첨되기보다 더 어렵다. 그런데 악처를 현모양처로 만드는 비결이 있다. 40년 부부싸움 끝에 내가 터득한 노하우.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해라. 아내의 비위를 맞춰줘라. 그러면 당신의 아내는 현모양처가 될 것이다”
요즘 우리는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다. 아내가 현모양처가 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