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찾아간 고국 길에 누님을 찾았습니다. 누님은 우리 7남매의 맏이입니다. 매형은 5년 전에 돌아가시고 누님 홀로 계십니다. 누님과 함께 자겠다고 했더니 젖은 목소리로 고마워하셨습니다.
“서울 막내 계완이가 내려와 누나와 함께 자고 가서 행복했어. 이번에는 미국에서 온 둘째인 동생목사가 같이 자주네”
누님은 나보다 여섯 살이 더 많은 76세입니다. 그날 밤 우리남매는 한숨도 못 잤습니다.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웠기 때문입니다. 뒷동산에 올라 진달래 꺾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했습니다.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날, 내가 일등하는 비법을 가르쳐줬지. ‘얘야, 선생님이 이거 아는 사람, 물으면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나요 나요’ 하고 외치는 거야, 알았지? 6학년인 내가 변소 간다는 핑계를 대고 몰래 빠져나와 자주 1학년교실을 훔쳐봤어. 선생님이 질문하기가 무섭게 둘째가 손을 번쩍 들고 외치더라고. 엉덩이를 들썩 거리면서 말이야. 얼마나 신통했던지 나도 모르게 손벽을 치면서 응원하다가 그만 발각 되어 망신당한 적도 있었다구”
“암요. 나도 누나 지령 따라 무조건 손을 들다보니 모르는 것도 손을 드는 바람에 망신을 당했다구요. 그러나 그 덕분에 6년 반장을 했는데 그게 다 누나 덕이지”
“호호호호 하하하하”
남서풍처럼 훈훈한 남매자랑 부모님자랑을 하던 누나는 갑자기 북북서(北北西)로 진로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칭찬꺼리가 없게 되자 식구들을 흉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돈을 밝히는지 몰라. 그리고 큰 아들만 위한다고. 왜 그리 말이 많은지? 전화했다하면 몇 시간씩 그것도 고장 난 테이프처럼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는 거야. 그래서 자식들이 엄마에게 전화걸기를 꺼려 한다구”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어머니의 사정은 더 딱합니다.
“98세 된 어머니가 자신을 위하여 돈 쓸 일이 있겠어요? 30명 넘는 손주들에게 줄 비자금 마련이 필요했던 거지요. 손주들에게 돈 주는 게 어머니의 유일한 낙일테니까요. 큰 아들한테 잘하는 것만 해도 그래요. 늙고 힘없는 어머니께서 얹혀사는 형님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걸 보면 저도 가슴이 아파요. 늙으면 누구나 치매증세가 있어서 한 말을 또 하게 된다구요. 난 겨우 70인데도 그런 걸요”
누님은 울었습니다. 나도 울었습니다.
누님만이 그런 게 아닙니다. 오랜만에 만난 남매들은 내 앞에서 동기간 흉을 봤습니다. 10년 만에 만난 나에게 평소 꽁하게 뭉쳐뒀던 서운했던 걸 털어놨습니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도 맞장구를 쳐줬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욕을 했으면 미워질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서운했던 앙금이 사라져 버리고 홀가분해 집니다. 그리고 상대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겁니다.
‘아하! 그래서 사람들이 대나무 밭에 들어가서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흉보는구나”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희로애락의 감정을 꽁하게 뭉쳐두는 얌전한 강아지(?)는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대신 감정이 생기기가 무섭게 미주알 고주알 쏟아내는 참새족들은 암 발병률이 적다는 것입니다.
뉴욕에 사는 K가 있습니다. 두뇌회전이 빠르고 말이 많은 중년남자입니다. 간을 빼줄 정도로 친절하여 만나자마자 10년지기가 됩니다. 그런데 몇 달 못가서 원수가 됩니다. 직장에 들어가도 얼마 못 견디고 나옵니다. 자랑하다가 불평하다가 대판 싸우고 나옵니다. 그는 자신의 자랑을 실력으로, 불평을 정의감으로 착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화중에 그의 얘기가 나오면 너도나도 그의 흉을 봅니다. 입으로 한말은 반드시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K가 나에게 따졌습니다.
“이목사님이 제 흉을 봤다면서요?”
“자네 흉 안보는 사람 누가 있는가? 대화중에 자네 얘기 나오면 신문기사 평하듯 자연스럽게 한마디씩 하게 마련이지. 임금이 독재하던 시절에도 ‘보이지 않는데서는 임금 욕도 한다’ 고 하지 않던가?”
박정희 유신독재시절에는 긴급조치로 백성들의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신문방송이나 개인적으로 개헌(改憲)의 개(改)자만 나와도 긴급조치 3호로 잡아들여 감옥에 처넣었습니다. 국민의 눈과 입과 귀를 막아버린 독재자는 미녀들과 충견들을 거느리고 안가에서 황음(荒淫)을 즐겼습니다.
“이제는 누구하나 날 욕하는 사람 없으니 아! 내세상은 태평하구나!”
그런데 그 순간 총성이 울렸습니다. 말없이 자기를 따르던 정보부장의 총구에서 총알이 튀어나왔습니다. 그건 억압을 깨뜨리고 터져 나온 국민들의 함성이었습니다.
민주사회는 열린사회입니다. 찬반가부(贊反可否)를 말할수 있어야 사회도 개인도 건강해집니다. 후르시초프가 유엔을 방문했을 때라고 합니다. 미국대표와 소련대표가 자유논쟁을 벌렸습니다. 소련 대표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우리 공산주의 사회에도 자유가 있답니다. 우리는 크레믈린 궁정 앞에서 큰소리로 ‘후르시초프 수상만세!’를 외칠 자유가 있으니까요”
미국대표도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우리에게는 이런 자유가 있답니다. 우리는 백악관 앞에서 큰소리로 ‘미국대통령 케네디 개새끼!’하고 욕해도 되는 자유가 있습니다”
흉 없는 사람 없습니다. 흉을 안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나처럼 남의 흉을 많이 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남을 욕하는 글을 많이 쓰니까요. 그러다보니 나처럼 욕을 많이 얻어먹고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도 기죽지 않습니다. 욕을 얻어먹을 적마다 나는 대통령이라도 된 듯 어깨를 으쓱한답니다. 세상에 제일 많이 욕을 얻어먹는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