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 서경덕 토정 이지함 병해대사 갓바치 기생 황진이 천하장사 임꺽정이 팔도유람(八道遊覽)을 즐기고 있었다. 평택을 거처 아산길목을 지나고 있는데 마침 어린애들이 길바닥에서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다. 돌멩이로 쌓은 장난감 성(城) 앞에서 목검을 휘두르는 꼬마 대장의 모습이 그럴 듯 했다.
“얘야. 어른들이 지나가시니 장난 그만하고 길을 비켜드려야지?”
그러자 꼬마대장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사람이 성을 비켜가야지, 성이 사람을 비켜가라니! 여봐라, 저런 무엄한 놈들을 당장 목 베거라!”
임꺽정이 떡두꺼비같은 손으로 꼬마대장을 덥석 붙잡아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아무리 철없는 어린애라도 그렇지, 이 녀석아, 이분들이 누구신줄 아느냐?”
그리고 마당발로 장난감 성을 걷어차 버리려고 했다. 그때 화담이 말렸다.
“그냥 두게. 대장님 말씀이 맞아. 사람이 성을 피해가야지 성이 사람을 피해 가는 법은 없거든. 그런데 얘야, 네 이름이 뭐냐?”
“이자 순자 신자 이순신 이예요.”
이번에는 토정이 중얼거렸다.
“이순신! 음, 저 애는 장차 조선을 구할 훌륭한 장수(將帥)가 되겠구나”
이순신은 어릴 때부터 주위의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이순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이순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된 건 순전히 일본 사람들 때문이다. 60년대초 김진규가 주연한 영화 “성웅 이순신”을 보고도 나는 이순신을 좋아하지 안했다. 독재자 박정희의 영웅 만들기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인이 쓴 역사소설 ‘덕천가강(德川家康)’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일본작가도 이순신을 위대하게 묘사하다니! 충격이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에서 이순신과 목숨건 싸움(乾坤一擲)을 벌렸던 일본 수군대장 와키자카는 열렬한 이순신 팬이 됐다. 이순신이 난중일기(亂中日記)를 쓰듯 와키자카도 매일 군중일기(軍中日記)를 썼다. 와키자카의 일기에는 이순신의 함대를 침몰시키려는 전략일지가 가득했다. 그런데 전략일지 사이사이에는 이순신을 흠모(欽慕)하는 글들을 몰래 채워놓곤 했다. 와키자카가 얼마나 이순신을 좋아했으면, 400년이 지난 지금 와키자카의 후손들은 해마다 충무공의 탄신일인 4월이면 현해탄을 건너와 현충사를 참배한다.
놀라운 건 중국과 일본의 이순신 연구다. 이순신을 좋아하는 중국학자5명 일본학자 7명이 8년에 걸쳐 (1990-1998) “아세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32권을 펴냈다.
‘이순신은 누구인가?’(5권) ‘일본 장수가 본 이순신’(2권) ‘명나라 장수가 본 이순신’(1권) ‘임진란 당시의 3국’(10권) ‘이순신과 임진란’(5권) ‘도요토미 대 이순신’(2권) 역사적 내용을 다룬 25권말고 역사적 근거로 가설을 붙혀 7권을 더 펴냈다. 그래서 32권이다.
이순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증언은 신앙고백처럼 경건하다. 명의 제독 진린은 명나라황제 신종에게 이순신의 구명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황제 폐하! 이순신을 살려주소서. 이순신은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명장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조선왕과 대신들은 저를 시기하여 죽일 것입니다....이순신을 명나라로 불러 대장군을 삼으신다면 그는 반드시 청나라를 궤멸(潰滅)하고 명나라를 구할 것입니다.”
일본학자 아리모토는 이순신을 십자가를 진 예수에 비유했다.
“세계의 전쟁영웅들은 피로 만들어졌습니다. 알렉산더 시저 징키스칸 나폴레옹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달랐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피로 혁명을 일으키기보다 바로 십자가를 선택하셔서 그걸 홀로 지고 가셨습니다. 2천년전의 한 청년이 그랬듯이....그래서 그분은 영웅(英雄)이 아니라 성웅(聖雄)입니다.”
전쟁에서 한번 지는 건 병가의 상사(兵家之常事)라고 했다. 천하의 제갈공명도 전쟁천재 알렉산더도 패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다. 23전 23승! 이순신은 전승무패다. 마지막 노량전투에서는 죽어서도 이겼다.
나는 이순신을 좋아하다가 임진왜란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임진전투로 망한건 조선이 아니라 일본과 명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쇠진(衰盡)하자 풍신수길이 죽고 덕천가강이 나라를 빼앗는다. 중국에서는 누루하치가 조선전선 참전으로 힘을 잃은 명(明)을 누르고 청(淸)을 세운다. 조선은 건재하다. 7년 전쟁의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이다.
“뉴욕 후러싱에서 이순신영화 ‘명량’을 상연한데요. 한국에서는 1400만명이 관람했대요. 박근혜대통령도 봤구요. 토요일에 우리식구 모두 가보자구요.”
자녀들과 함께 명량을 관람했다. 한국판 ‘십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애급은 했지만 애급의 기마병이 추격해온다. 앞에는 홍해의 성난파도가 죽음처럼 덮쳐온다. 진퇴양난에선 모세는 믿음과 용기로 지팡이를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바다가 갈라지고 홍해를 건넌다. 대신 뒤따라오던 애급군대는 물에 수장되어 몰살당한다.
이순신이 그랬다. 12척의 배로 300척과 싸워야 했다. 울돌목의 거센 물살은 함선을 집어 삼킬듯이 소용돌이쳤다. 이순신은 두려움에 떠는 장병들과 백성들에게 용기를 심어준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수 있다면 저 울돌목의 소용돌이 물살은 왜군함선을 집어삼키고 우리를 도울것이다. 죽고저 할 때 일기당천의 용기가 생기게 마련이다. 나를 따라 죽으러 나가자!”
이순신은 총알이 빗발치듯 날라오는 대장선의 지휘대에 올라 진두지휘(陣頭指揮)를 한다. 친히 칼을 빼들고 백병전(白兵戰)을 이끈다. 바다가 뒤집히고 천지가 흔들리는 격전 끝에 울돌목(명량)의 소용돌이 물살에 휘말린 왜선들은 그대로 가라앉아 몰살당한다. 명량대첩이 승리로 끝나자 이순신은 장병들의 손을 잡고 운다. 언덕에서 전쟁을 독려하던 백성들도 운다. 관객들도 울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12척의 낡은 배로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대장선에 올라 총탄을 피하지 않고 앞장서서 진두지휘(陣頭指揮)로 침몰해가는 조국을 구해냈다. 지도자가 저런 자세를 보일때 울돌목의 거센물살이 돕고 백성들이 따른다.
그런데 세월호가 침몰해가는 7시간동안 한국대통령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김기춘비서실장 말로는 근무시간이라서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밝히지 못하는걸 보면 말 못할 사연이 숨어 있었나보다. 오죽 화가 난 민심이 세월호특별법을 만들어 진상조사를 하자고 할까?”
되지도 않는 진상조사보다는 대통령이 한번 더 ‘명량’을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대통령도 이순신의 리더십을 배우겠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53:07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