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된 동해 병기 법안(SB2)과 하원의 법안 (HB11)은 내용이 100% 똑같았다. 이제는 상하원이 형식적으로 법안을 교차 심의한 후 주지사 사무실로 넘기는 일만 남았다. 동해 법안을 상정했던 데이브 마스덴 상원의원, 리처드 블랙 상원의원, 팀 휴고 하원의원도 모두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면 된다고 필자에게 전해왔다.
하지만 그 사이에 상원에서 벌어진 구조 변화가 문제를 야기시켰다. 지난 1월 13일 상원 교육위 상임위원회에서 동해 병기 법안 심의가 이뤄졌을 때에는 공화당이 다수당이었고, 다수당인 공화당의 스티브 마틴 의원이 교육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2013년 11월 5일 치러진 선거에서 부지사와 법무장관에 두 명의 민주당 상원의원이 당선돼 상원 의원 자리 2석이 공석이 됐다. 동해 법안 심의 당시에는 보궐 선거가 마무리되지 않아 공화당이 다수당이었다. 하지만 그후 보궐 선거에서 두 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당선되면서 상원에서 민주당이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위원장도 공화당의 스티브 마틴 의원에서 민주당의 루이스 루커스 의원으로 대체됐다.
어쩐 일인지 형식적인 절차만 남았다던 동해 법안에 대한 교차 심의(交叉 審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팀 휴고 의원은 자기가 상정해서 압도적인 표차로 하원을 통과한 HB11이 상원 교차심의를 거쳐 주지사의 서명을 받고 법으로 제정되기를 바라는 사적인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았다. 데이브 마스덴 상원의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법안인 SB2가 하원 교차심의를 거쳐 주지사 서명을 받고 법으로 발효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 전문가가 아닌 필자와 한인들은 그저 ‘때가 되면 일을 진행하겠지’하는 다소 안일한 마음으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일본 정부와 일본측 로비스트들이 이 틈새를 활용해 교묘하게 함정을 파놓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보궐 선거를 통해 상원은 민주당이 장악하게 되었고 민주당 지도부는 새로운 교육위원장에 흑인 여성인 루이스 루커스 상원의원을 임명했다. 하원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된 팀 휴고의 HB11을 상원 교육위에서 교차 심의 해야 하는데 바로 이 루커스 의원이 갑자기 동해 법안을 교차 심의에 부칠 생각이 없다고 선포했다. 동해 법안을 심의조차 하지 않고 휴지통에 집어 넣은, 다시 말해 한순간에 폐기(廢棄)시켜 버린 것이다. 루커스 의원은 흑인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법안은 없는데 한인들의 역사를 바로 잡는 법안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지극히 비논리적인 이유와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제 두 개의 동해 병기 법안 중 하나가 완전히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유일한 희망은 상원에서 통과된 SB2 가 하원에서 교차 심의를 거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왜냐하면 공화당이 완벽하게 장악한 하원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킨 동해 법안을 민주당이 주도하는 상원에서, 민주당의 루커스 교육위원장이 심의조차 하지 않고 불분명한 이유로 폐기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버지니아 주 의회가 동해 병기 법안을 놓고 치열하고 민감한 양당 대결 구조로 돌입하게 된 것이다. 버지니아 주 의회의 전례를 살펴보면 이런 경우 100% 두개의 법안이 다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필자와 한인들은 그야말로 황당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다 된 법안 통과가 하루 아침에 또다시 위기 상황에 처했으니 말이다. 일본 정부와 로비스트들이 바로 이 틈새를 노려 전략적으로 움직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 이제 한인들은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기어이 한인들의 염원인 동해 병기 법안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단 말인가? 앞이 캄캄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필자와 버지니아주 한인들이 아니었다.
주 의회 하원 공화당 지도부의 동해 병기 법안 교차 심의 결정(2014년 2 월 19 일)
하원 공화당 의원들의 반발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심각했다. 하원 서열 3 위인 팀 휴고 의원이 발의를 했고 하원 의장과 공화당 당대표를 포함한 20 명의 의원들이 공동 상정을 했으며 하원에서 압도적인 표차인 82대 16으로 통과시킨 동해 법안이 아닌가. 이 법안이 상원에 넘어가 일개 교육위원장의 개인적인 결정으로 심의조차 하지 않고 폐기시켰으니 하원 공화당 의원들의 반발이 극심한 것은 당연했다. 하원 공화 의원들은 상원에 보복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상원이 하원을 무시했으니 상원에서 통과되어 하원으로 넘어온 데이브 마스덴 민주당 의원의 SB2 동해 병기 법안도 교차 심의 절차를 취소하고 페기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이 싱황을 어떻게 극복한단 말인가? 어쩔 줄 몰라 망설이던 필자는 오랜 고민 끝에 리치먼드로 내려가 팀 휴고 의원을 포함한 하원 공화당 지도부를 만나기로 미팅 약속을 정했다. 하지만, 공화당 지도부는 그 미팅에 올수가 없었다. 2~3천개의 상정된 모든 법안/결의안을 처리하는 과정이었으며 버지니아 주의회 폐회일이 10일 후로 다가 왔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팀 휴고 의원이 공화당 지도부를 대표해서 미팅에 참석 했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제발 한인들의 염원인 동해 병기 법안을 놓고 당파 싸움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 애절한 버지니아 한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이번 일은 민주당 의원들이 일본측 로비스트의 계략에 넘어가 저지른 일이니 공화당 의원들도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 주십시오. 동해 병기는 한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버지니아주 모든 주민들의 이슈이기 때문에 꼭 통과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Tim Hugo 의원 홈페이지
그러자, 팀 휴고 의원은 “한인들만의 이슈가 아니라 버지니아 시민들의 이슈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하고 물었다. 필자는 차분하게 설명해 나갔다. “버지니아주를 경제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해외 투자도 여저저기서 끌어와야 하고 해외로 수출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공립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왜곡된 바다 이름만 가르치고 있으니 그 아이들이 이 다음에 커서 해외로 투자 유치나 수출을 위해 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만약 한국에 나갔을 때 그 아이들이 ‘동해’ 바다를 ‘일본해’로 부른다면 한국에서의 모든 사업은 물거품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런 것은 결국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동해 법안을 통과시켜 우리 아이들이 ‘동해’와 ‘일본해’를 동시에 배운다면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 가서는 ‘동해’를, 일본에 가서는 ‘일본해’를 인정 해주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버지니아 주민들에게 쓸데 없는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해 병기 법안은 한인들만의 이슈가 아닌 버지니아 주민 모두의 교육적인 이슈라는 것입니다. 제발 공화당 지도부가 의원들을 설득해 상원에서 넘어온 동해 법안을 교차 심의하고, 그 법안을 주지사에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한인들에게 이렇게 치사하고 비열한 일을 저질렀는데도 공화당 의원들은 동해 법안을 끝까지 지켜준다면 앞으로 공화당은 한인들의 표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용히 듣고 있던 팀 휴고 의원은 굳은 결심을 한듯 “알았습니다. 비록 내가 상정한 법안이 상원에서 폐기되는 바람에 개인적으로 자존심이 상했지만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민주당 의원들과 같은 소인배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공화당 지도부와 좀더 논의를 해보고 한인들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돌아가서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회의실 밖으로 나오는 필자를 아쉬운듯 따라온 팀 휴고 의원은 “현재 공화당 의원들은 모두 나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공화당 지도부는 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설득하면 내 말을 따라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할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시작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 하는 사람이고, 내가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지키는 사람입니다”라며 필자에게 용기를 주었다 (첨부: 62-1 페이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