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사진필진 l Kor-Eng    
 
미국필진
·권이주의 美대륙을 달린다 (156)
·김동석의 워싱턴워치 (79)
·김수복의 자력갱생 북녘경제 (21)
·김중산의 LA별곡 (71)
·김창옥의 빌라레비 훨훨 (17)
·김태환의 한국현대사비화 (80)
·김현철의 세상보기 (135)
·노정훈의 세상속으로 (31)
·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09)
·로빈의 스포테인먼트 (119)
·세등스님의 세상과 등불 (5)
·신필영의 삶의 뜨락에서 (35)
·오인동의 통일 고리-Gori (50)
·장호준의 Awesome Club (152)
·피터 김의 동해탈환 이야기 (52)
·한동춘의 퍽 환한 세상 (15)
·한종우의 시사아메리카 (13)
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총 게시물 109건, 최근 0 건 안내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인간의 회향학적 원리(29)

인식의 본질
글쓴이 : 현승효 날짜 : 2024-01-02 (화) 19:05:04

인식의 본질

 

 

인식은 성질의 측면에서 현존재의 지속적인 요소들을 고정한다. 분량의 측면에서 전체적인 것을 일정한 유한량으로 한정한다. 개념은 언제나 구분에 의거한다. 관계의 측면에서 열려있고 운동하는 것을 제약 속에 묶어둔다. 양상의 측면에서 대상을 언제나 현존재 상태로 고정한다. 여기서 유이자 무는 공허하며 알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식은 언제나 현실성 속에 있고 제약과 부자유를 내포한다.

 

칸트의 범주는 그 전체가 하나의 제약으로 한정되어 있는 틀, 판단의 틀이다. 선험적 형식이란 인식을 위해 필요한 제약이다. 시공간은 유한한 양적 개념이며 운동 과정에 있는 것을 미분으로 정지 상태에서 포착한다. 인식의 본질적 속성은 운동 과정에 대한 한정제약으로서의 포착, 즉 정태이다. 사유의 양태는 운동과 정지다. 사유는 단순 형태

에서는 과정이며 그것의 파악은 결과로서 정지인 것이다.

 

회향이 완성될 때 인간은 이미 현존재가 아니라 실체로서 존재한다. 그것은 유일하고 무한하며 그 자신 속에서 이해된 것이며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이때에만 인간은 자기 및 모든 것의 원인인 실체가 된다. 어떤 대상에 관한 인식은 성질과 관련해 운동의 측면에서 불일치에 머문다. 즉 인식은 정지를 전제하므로 운동하는 실물과 불일치한다. 관계와 관련해서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불일치한다. 양상과 관련해서는 존재의 측면에서 유이자무라는 점과 불일치한다.

 

분량과 관련해서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서 불일치한다. 대상에 관한 우리의 인식은 주관과 객관의 구분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또한 이 주관과 객관을 떠난 양자의 근저에 있는 일자 또는 포괄자에서만 완벽하게 대상의 정체를 아는 것이지만 물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대상에 관한 한, 주관은 객관과 나뉠 수밖에 없고 대상 그 자체의 운동과 우리 인간은 무관하고 별개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할 때 우리는 포괄자를 알 수 있고 참다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물에 대해서는 주관과 객관이 엄밀히 구별되지만 인간 자신에 관한 한 본질적으로 주객의 분리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성과 개방성으로 진리 자체, 대상 자체, 현존재 자체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자신에 대한 인식의 경우뿐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한 그 운동은 우리 자신이 생산하는 것이며, 우리의 운동이 소멸하는 곳, 즉 개방성전체성무한성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자리하는 곳이다. 따라서 진정한 실재의 파악은 오직 인간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진정한 실재는 관계를 벗어난 개방성전체성무한성이며 공()이자 멸()의 상태다.

 

상황 속의 대상을 인식하기 위한 선험적 조건인 시간은 유한한 양적 개념이다. 인간과 관련된 시간은 결코 무한한 것일 수 없다. 이 점을 근거로 유신론과 무신론을 이해할 수 있다. 유신론은 절대자를 세계 현상의 일시적 결과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실현 할 뿐 시간 속에서 자신을 완성해간다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유신론은 초시간적 존재를 근거로, 시간을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한한 양적 개념을 통해서만 알 수 있고 또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인간에게 시간을 벗어난 존재는 없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도 시간 속에서 생성되는 상대적 절대자를 상정하는 것이다.

 

이는 니체 자신이 인간이기를 원하는 한 불가피하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세계현상의 경과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신은 시간 속에서 생성되어 간다. 사실상 절대자는 인간의 자기반영일 수밖 에 없다. 이것을 시간에 대한 과대평가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현존재로서의 나, 상황 하에서의 나인 자아에 모든 것을 거는 한, 시간 속에서가 아니면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역설은 현존재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아를 알 때 극복된다. 시간은 상황 이전의 나인 진아가 상황에 떨어짐으로써 제기된 인식 조건이다. 진아 자체는 조건으로서의 시간과는 무관하다. 진아에게 시간은 오직 상황 하에서 자아를 범아로 완성하고 실현하기 위한, 즉 회향을 위한 수단일 따름이다. 자아에게 모든 것인 시간이 진아에게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진아란 초시간적 존재다. 절대자인 신은 현존재로서의 자아의 반영이 아니라 진아의 모사(模寫)인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제호 : 뉴스로 l발행인 : 延義順 l편집인 : 閔丙玉 l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 l창간일 : 2010.06.05. l미국 : 6 Brookside Trail Monroe NY 11950  한국 :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 전화 : 031)918-1942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