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야는 나의 생명
10월 24일 금,1975년
바쁘게 환자 치료를 하고 빠져 나왔다. 노야가 쉬고 있는 방엔 노야의 정결
한 솜씨와 가득히 노야의 향기가 스며있을 뿐 노얀 어딜 가고 없다. 나는
어느 때나 같이 나 혼자 있을 때면 이 수첩을 편다. 그리고 나의 하루 역사
를 기록한다. 가만히 노래가 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감는다. 편안함과 평화
가 내 가슴에 충일한다. 눈을 감고 태고의 정적으로 빠져든다. 이 만족이 주는 포만감!
오묘하고 헤아릴 길 없는 인간성의 비밀. 한 부분에 있어서 한 행위의 動力
이 되는 원리에 있어 그것은 파악될 수 없다. 인간은 그 전체성에 있어 파악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운 일이고 아니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을 생각한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신비와 비밀을 간직한 채 내 가슴에 녹아든다.
10월 27일 화,1975년
어제 노얀 갔다. 이 먼 곳을 오직 못난 情人을 만나고 싶은 一念에서 나의
노얀 머나 먼 길을 단숨에 달려온 거다. 그 밤의 아늑하고 향기로운 지새움
속에서 나는 노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눈, 살이 오른 볼 그것은 아름다움이란 것일 거다. 노야는 황토길을 아쉽고 울고싶은 심정으로 묶여진 쫄병을 두고 한없이 마음이 뒤로만 쳐지는 길을 갔다.
종일 착 쳐지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 수 없이 기가 죽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저녁엔 빳다를 맞았다. 군대라서 그러려니 생각한다. 면회를 가서
보고를 하지 않고 들어오지 않았다고 6차례나 맞았으나 모두 눈치때문에 그
러는거지 나를 어려워 한다. 아프지도 않고 아무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서 고마웠다.
노야가 왔다 가면 난 며칠은 정신이 산란하다. 아마 내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죄의식일까? 아니면 자책감일까? 가여운 노야 내 사랑. 편한 여행이 되길 어
제 밤새껏 기도했다. 노야가 간 지도 하루가 지났다. 지금 노야는 작은 방에
서 휴식을 취하며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나를 생각하고 있겠지. 나는 너무도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며칠만 있으면 지대로 가게되고 거기서 새로운 생
활을 접하게 되겠지. 노야 건강해다오. 어머님 건강하세요.
10월 28일 수, 1975년
낙엽이 쌓인 길목에 서서
타는 분노
너는 네 몸을 불사르는 정열의 화신
가슴에 휘몰아치는 타는 분노는
너에게 불같은 반항을 가르치는가 보다
푸른 잎 어린 손이 하늘을 만질 때
네 가슴은 창공을 애무한다
싸늘한 죽음을 앞에 둔 너는
네 몸을 불태워 불이 되었다
그것은 영원을 향한 환호의 소리
소리없는 빛으로 너는 터져라
피 묻은 손을 떨쳐버린 너는 앙상한 뼈마디
역사를 거부하는 몸짓으로 하늘을
찌르고 섰다
언 땅을 디디고 선
너의 의지는 내일에 꿈을 찾는 抗子의 지혜
붉은 손을 가진 너
내일에 사는 붉은 손을 가진 너
아! 이제 너는 너가 되었다
내 가슴속 소리없는 빛으로 너는 터져라
(즉흥시를 지어 봄)
오늘 연대급 구보가 있다고 하여 앰블란스를 타고 오랫만에 외출. 타는 것
같은 단풍을 보고 시를 즉석에서 읊어보다. 노야 마음에 들어요? 언제나 처
럼 낙오자가 2명 생겼다. 헛소릴 하고 고함을 지르고 몸을 부들부들 떤다.
이런 날엔 내가 제일 애를 먹는다. 요즈음은 세면할 시간도 없다. 치료실에
서 그대로 물을 찍어 버리고 만다. 날씨가 몹씨 차서 움직이기가 싫고 자꾸 게을러진다.
검열기간이라 사역은 없어서 시간이 많이 나나 노야가 다녀간 후론 책도 일
도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이 구름 속에 떠있는 것 같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 몹씨 황량하다. 이렇게 계절이 바뀌고 또 푸른 잎이 돋아나겠지. 오
늘 노야와 朴東鉉에게 편질 쓴다. 그 친군 나의 지성을 글로 서로 얘길 할만
한 사람이라 좋은 글들이 오고 가겠지. 군인들은 뭐든지 먹을게 있으면 입으
로 가져간다.
이제 며칠이 있으면 내가 3년을 마음 놓고 머무를 지대로 가겠지. 기다려진
다. 그리고 안정된 자리에서 나의 학문을 더 할테다. 밤엔 진미에게서 편
지가 왔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 현실이 원망스럽다는 내용이
다. 우리의 현실이란 그런거다. 이제 나는 시를 계속 쓸거다.
하나의 사물에 대한 표현이란 즉흥적으로 찰라적으로 지나가는 순간을 포착
하는거다. 어떨 땐 지나놓고 보면 나도 놀랄 표현들이 많이 쌓여진다.
10월 29일 목, 1975년
요즈음은 새벽에 기상하면 깜깜하다. 그렇게 떨면서 동녁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집채만한 아니 산더미같은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하늘에 떠 있다. 여
명을 기다리는 저 음침한 도사림들 그 구름을 쳐다보고 있으면 서서히 날이 밝는다. 졸리운 눈으로 상의를 완전히 벗고 구보에 나선다. 싸늘한 공기가
가슴을 때린다. 따스한 햇살이 그리운 계절이다.
하늘엔 종일 구름이 누비고 있다. 짜증스런 바람이 소매 깃을 파고든다. 오슬오슬 춥다. 들은 질펀히 나체로 누웠다. 그들은 불붙는 산하를 내려다 보고 있다. 그러나 거기엔 뜨거운 열기는 없다. 사양에 기댄 노인들의 情事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아직은 몸을 쌀 두터운 외피는 필요하지 않다. 그저 낙엽을 태우는 열기로 만족이다. 나는 지금 허리를 웅크리고 구덩이에 몸을 낮추고 앉아 구름 아래 누운 산들을 애수의 정감을 금치 못하며 바라보고 앉았다.
11월3일 화,1975년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이렇다 할 쓸 만한 것도 없고 그냥 그렇게
시간만 보냈기 때문이다. 기상하면 날이 깜깜하고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오
전이 지나고 날이 저물고 하는 그런 날이었다.
군대란 할 일이 없으면 잔소리가 많이 늘고 비상이 걸리고 똥줄이 타도록 왔다갔다 무거운 짐을 옮기고 다시 원 위치 시키고 그리고 밥먹고 하는 것이 전부다. 찜빠 먹고 꾸중 듣고 욕 얻어먹고 마치 머리에 무엇을 올려 놓은 것
같은 침침한 기분으로 종일을 보낸다.
눈칠 보며 보는 책도 짜증스럽고 머리에 들어가지 않고 어려워 신경질이 부
득부득 난다. 이젠 책을 들여다 보면 무언 놈의 글이 그렇게 어려운지 정신
을 차릴 수 없다. 그들의 높은 정신적 경지를 올려다 보면 눈이 아득해지고 가슴이 울렁울렁거릴 뿐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는다. 내 사랑 노야가 다녀가
고 나서 오늘까지 이 단체 생활에서 얻는 즐거움이란 찾을 수가 없으니 안
타까운 일이다. 고참이란 놈들은 잔소리 잔소리 쫄병들을 때리고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쓸 꺼리가 없으니 마음만 착잡하다. 빨리 지대로 나가야 할텐데.

현승효가 그린 노야, 10.1.1970
오늘 이렇게 글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노야의 글을 받은 때문이다. 돈도 3000원 동봉했다. 인사계에게 2500원 갚다. 순지 씨를 만나고 오랫만에 회
포를 풀었다는 내용. 노야 나도 가슴이 뛴다. 우리의 그 옛날 아름다웠던
시절, 회색빛 하늘아래 맑은 pavement길을 또박또박 발소리를 들으며 그 옛
날 흘러간 추억을 되삭이고 싶다.
이제 그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지내는거다. 노야가 있는 이 하늘 노야의 목소리가 노래처럼 반향되는 저 구름, 너를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뛴다. 아,
노야! 너를 멀리서 그리워하고 생각하고 애닳게 소리쳐 부르는 나의 영혼,
그러나 널 보면 난 마치 널 항상 곁에 두고 보아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안타깝고 애닳은 일이다.
항상 네가 내 곁을 떠난 후에야 나는 너를 느끼고 허공에서 방황한다. 눈을 감으면 그때 서울을 정처없이 거닐던 기억들, 노을 지던 하늘, 낙엽 떨어지
던 거리, 어떨 때는 하얀 눈이 우리의 사랑을 축복하며 내리던 날들. 우린
그때 손을 잡고 하늘에 쏟아지던 눈을 입으로 받아 먹곤 했었지.
마치 두 마리 사슴처럼 우린 뛰고 깔깔 웃고 포옹하며 흐르는 시간을 잡을려
고 안간 힘을 썼었지. 아름답고 그리운 그 흘러간 계절의 시간들. 이른 아침 경복궁에서 만나던 기억, 우리의 정다운 발걸음이 디디지 않은 거리가 없던 시간들. 너를 찾으러 자주 가던 다방, 강의실 그리고 학원 도서관으로 미친
듯이 찾아 다니던 안타까운 시간들. 춥고 배고플 땐 넌 항상 나의 고향 엄마
의 품이었었다.
주님이 나에게 준 가장 위대한 은총 노야가 내게 있다는 것. 어떨 때는 겁이
나고 두려울 때도 있다. 노야를 뺏아간다면 그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이다. 마치 상아를 깎아 만든 것 같은 너의 정결한 손, 별보다 더 영롱하고 초롱초롱 빛나는 너의 눈이 나에게 소리없는 얘기를 둘려주던 시간들 나는
그때 턱스부리 밤송이 같은 머슴애였지.
사직공원에서 수유리에서 미아리 붉게 타는 저녁노을에 손을 발갛게 태우
면서 걷던 거리, 세종로 그 다방들 들뜨는 마음으로 듣던 음악들! 가슴이 탄
다. 그날의 기억들을 되씹어도 나는 몇 년을 황홀할 수 있을 것 같다. 노야도 그렇다고 했었지. 노야의 글을 받은 날은 나의 가슴은 다시 불붙고 가슴은
환희에 뛴다. 이제 눈 나리는 시간이 오면 나는 노야의 손을 흘러간 날들보
다 더 힘차게 쥐고 걸으리라. 그날들을 가슴에 하나하나 새기면서 말이다.
짧은 미니치마를 입고 새처럼 동동거리던 노야, 너의 향내는 날이 갈수록 향기로워지고 빛이 더해가는 나의 생명, 우리 그날을 가다려요. 안녕.
****그리운 내님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어제 이맘 때는 당신 곁에 누워 쨀끔쨀끔 울었는데.
항상 이별할 시간이 가까이 오면 절망감이 가슴을 억누르고 합니다.그 괴로
움이 더 큰 희열을 부르리라는 생각에서 당신을 떨치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
다.
사랑하는 나의 님, 괴로운 마음으로 일그러지던 당신의 표정이 생각나 저의 가슴은 너무 아픔니다. 대신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보안대 조규희가 찦차를 타고 가다가 저를 보고 타라 해서 빨리 갈 수 있었습니다. 당신을 알고 있으니 보거든 인사나 한번 하세요.
최준위님 댁을 갔더니 부대로 가시고 안 계셔서 부인에게 전해달라 부탁 드렸습니다.
여주로 가서 고속버스를 타니 서울에 3시 35분에 도착되더군요. 대구로 가는 버스는 5시35분 것만 팔아서 순지를 불러 냈어요. 반가워서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 와 우리는 거의 3년만에 만나 얼싸 안았어요. 순지는 여전히 차분하고 맑은 눈으로 제가 하는 애기를 조용히 귀기울여 주는 좋은 친구였어요.
이맘 때면 낙엽이 흩날리던 회색빛 날의 서울 거리들,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버린 그 시절 얘기를 하며 우리는 그리워하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어요. 서울 생활에서 제가 얻은 건 애인 한 개와 변함없는 좋은 친구 순지입니다.
짧은 시간이라 너무 아쉬웠습니다. 재회를 약속하고 차에 올랐어요. 순지는 우리를 너무 부러워하며 축복해 주었습니다. 장충공원이랑 한남동이랑 가로수가 예쁘게 물들은 거리를 지나오며 당신이 휴가 나오면 당신의 팔을 끼고 저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을 마음껏 걸어 보리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흥분이 되어 기분이 좋아 졌어요. 우리는 그때 걸어 보았던 곳은 다 걸어 보아요.
그런 생각들로 바깥을 내다 보다가 날이 어두워 밖이 안 보일 때 당신이 저를 위해 써 놓으신 일기를 읽기 시작했어요. 제가 대신에 장보러 갔을 때 더 부연해 놓은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날 지극히 사랑하는
내 남자, 얼마나 행복해 하고 있나 상상해 보세요.
금강터미날에서 핫도그 2개와 우유를 사서 꽃밭에 걸터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구경했어요. 저마다 먹을 것을 사들고 낄낄 웃고 떠들다가 떠나 가는 걸 보니 마치 외국에 와 있는 것 같은 해방감과 자유가 넘실거립니다.
이번에는 당신 곁에서 배불리 먹고 푸근하게 있다 와서 그런지 또 순지를 만나 우리가 함께 했던 옛날을 얘기하고 즐거웠던 날들의 생각에 잠길 수 있어 그런지 돌아오는 길이 조금도 서글프지 않았어요. 삼천원 동봉하겠어요. 신천동 당신 방에서 자고 아침에 이리로 왔어요. 당신 부모님께 상세히 보고드렸어요. 안녕.
1975년 10월 27일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