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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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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30년만에 쓰는 편지(上)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0-06-02 (화) 11:17:14


1970년, 서울에서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그 해 7월 9일, 세종로 대성학원에서 미아리까지 따라온 당신이
내 등을 툭 친 그날부터 저는 마음에 일체의 의심이 없이
오직 당신을 사랑하는 식지 않는 열정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낄낄 웃으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해주어 가슴을 뛰게하고,
무료하게 있는 것을 못 견뎌하여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
거짓말도 하도 재미있게 하여 팍 웃게 만드는 사람
데이트할 때 아무렇게나 옷을 걸치고 나와 화가 나다가도
우주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신비해 신비해! 할 때 당신의
깊은 눈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아름다와서 마음이 흔들리고
조금이라도 가련한 사람을 보면 진정으로 마음 아파하여 나까지도
가슴이 찌리리 저려오고, 밤을 새며 책을 읽고 와서는 자상하게
다 이야기 해주어 가슴에 좌악 퍼지는 충족감으로 미소가 피어나고
좀 부끄러운 짓을 했다 싶을 때에는 벌개지던 당신의 얼굴
 
당신의 모습을 어찌 다 그려낼 수 있겠습니까? 

 

 

 

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jpg

 

 


  
진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대학은 당신을 박정희유신조폭
으로부터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74년 12월 5일 ‘구속학생
석방’하라는 철야농성을 하였다고 15명을 정학시키고 당신
은 제명을 시켰습니다. 

 

 


아, 무기정학만 시켰더라도....
1974년 12월 13일, 휘젓고 다니던 경북대 의대 동인동 교정
에서 쫓겨난 당신은 1975년 2월 21일 사병으로 논산훈련장
으로 실려 갔습니다. 

 
“2월 24일부터 처음 일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시작되는 고난
과 노야와 헤어져 있는 시간을 노야에게 그대로 전하리란 생각
에서 쓰기 시작했다. 한날 한시도 노야를 잊은 적이 없었다.
(1975년 5월 22일).

 
75년 6월 21일 우리는 헤어져 꼭 4개월만에 만나게
되었지요. 23일 돌아가야 할 시간이 오자 부모님도 계시는
자리라서 울지도 못하고 억지로 참고 있는 저를 당신은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보다가 놀랍게도 종이를
묶어서 만든 작은 수첩에 깨알같은 글씨로 빽빽이 채운 일기를
제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아, 그 속에서 언제 이런 것을! 위대한 나의 님, 당신은
거기에다 온갖 소리를 다 해놓아 저의 가슴을 갈가리 찢
어 놓았는데 오늘 제가 30년만에 당신에게 써보는 편지는
글재주가 메주라 당신의 가슴을 반에 반이라도 찢어 놓을 지
모르겠군요.

 
데모질하다 군에 끌려가면 학대가 심하다 해서 걱정과
불안으로 노심초사를 하였는데 당신은 너무 잘 해내었고
휴가도 꽤나 자주 나오더니 어느 새 제대할 때가 다 되었다
했습니다. 제대 전 마지막 휴가라면서 왔다가 떠나는 날
아침에 당신은 제 손을 잡고 "노야, 복학이 안 되면 우리
넓은 세상에 나가서 살자, 응?" 하고 돌아갔지요 

 
새 부대로 갔다하고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걱정말라는
편지가 오더니 느닷없이 당신이 구보하다 죽었다 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주던 일기 수첩이 11개나 되는데 군데군데
“노야에게 낙오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 그 괴로운 구보를
노야의 이름만 부르며 죽을 힘으로 해내어 너무 기뻤다” 하여서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더니 기어코 그놈의 구보가 천하의 당신을
쓰러뜨려 버렸습니다. 

 
10 Km 골인 점에서 쓰러졌다 하더니 제작년에야 전신을
딜딜 감은 붕대를 목까지 풀어보니 청동녹색이더라는 말을 듣고
돌아버릴 것 같았습니다. 당신의 의대학우 신인식님이 당신의 죽음의
진상규명을 위해 헌신적 노력을 하신 것도 몰랐습니다. 작년에
당신의 후배 김병준 김재룡 선생의 재촉으로 작은 형이 진정서를
제출한 군의문사진상위 조사관은 당신이 8Km 지점에서 쓰러졌다
하더군요. 그까짓 낙오 좀 하면 어때서 고만 못 한다 자빠져버리지
왜 죽으면서까지 뛰었습니까 너무 원통합니다

 
1977년 6월 29일 오후 4시, 얼마나 괴로웠길래 얼마나
고통스러웠길래 그 강인하던 내 사랑 당신은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를 못 했을까요? 30일 새벽 1시, 당신이야 명줄을
놓고 가버려서 편한 줄 모르겠지만 저는 아직도 그 생각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초재를 지내고 거창으로 돌아 와 새 책상을 사고 원고지를
사와서 당신이 쓰다만 철학 책 원고를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잘디 잔 글자들이 빽빽이 채운 노트가 8권, 이리
저리 거미줄같이 토를 달아놓아 이기 다 뭐꼬! 이걸 다
어떻게 썼을까 간이 녹는 듯 했습니다. 당신이 살아 있었더
라면 나 죽어도 못해! 했을 터인데 오직 당신 생각만 하며
태어나 처음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푹푹 찌는 방구석에 들어
박혀 쓰기 시작하며 이것 외에는 절대 생각하지
않을려 했습니다.
 

쓰다가 진이 빠져 펜을 놓고 있으면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이
들이닥치고 그러면 저는 당신을 받아들이듯 고스란히 안고
울부짖으며 뒹굴었습니다. 고통에 숨이 턱 막히면서도 이 고통이
썰물처럼 지나가서 잠잠해지면 너무 서운하였습니다.
"나는 고통을 안고 살거야, 잊으라 하기만 해봐라" 하는 고집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습니다.  

 
아침이 밝으면 당신을 맞는 날이 또 하루 당겨졌구나 즐거워
콧노래를 불렀다가 당신이 없으니 끔찍해지고 아침마다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눈이 탁 떠지는 순간은 정말이지 절망감으로
지옥 같았습니다.

 
하루는 겨우 일어나 밖에 나가니 "선생님 삶아서 무쳐서 드세요"
부뚜막에 놓고 간 산나물 한 사발과 쪽지 하나가 너무 살가워
목에서 무엇이 치받쳐 오르고. 푸근한 언니같은 거창대성여상
제자들은 밥은 먹었나 오며가며 들리며 밥도 해놓고 기다리기도
하고 밤이면 우르르 몰려와 같이 자 주기도 하였습니다.

 
신천동 당신의 부모형제들은 저에게 더 애틋한 사랑을 주시나
부모님을 위로한다고 거의 매일 친정에 오는 경미언니의 고
깜찍한 3살배기 수안이 하는 짓에 그리고 잘생긴 사내아기
선욱이의 벙글벙글 웃는 얼굴을 들다보고 즐거워 하실 때는
그 화기애애한 자리가 당신 생각에 갑자기 견딜 수 없어서 뛰쳐
나오곤 했습니다. 당신을 잃은 그 분들의 심정이 어떠시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그 짧은 시간 어린 것들을 보며 웃는 것도
참지 못 하였습니다.

 
어디에도 마음을 붙일 수 없어 휑한 마음 빈 껍데기가 되어
거리를 헤매다 보면 그전에는 길바닥에 빗, 지갑, 파리채, 구두약
이런 것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앉아 있는 꾀죄죄하고
고단해 보여 행복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이 초라한 부부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나 부러워 미칠 것 같았습니다.

 
당신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들과 물건들, 심지어 당신이
휴가와서 신었던 슬리퍼가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것도
창끝이 되어 가슴을 찌르고, 날이 갈수록 당신은 죽고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구나 하는 엄연한 현실감에 너무 비참하여져서
제 몸과 마음이 본능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못할
짓을 많이 하였지요.

 

 

 

(하편 계속)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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