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50)

----사랑하는 당신에게!
소식 반가이 읽었소. 道는 잘되고 있소. 정 그러하다면 5월 30일 쯤 노력해 보겠소. 그때까지 운동 열심히 해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라겠소.
나는 이제 고비에 들어가고 있소. 내 생각이 우연히 본 Fichte와 너무나 유
사해서 지금 쩔쩔매고 있소. 그래서 요즘은 며칠 조용히 쉬고 있소. 그동안 생
각한 것도 재음미 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하고.
쉬다가 보면 번뜻 떠오르는 것도 기대할 수 있으니 말이요. 조금만 기다려 주
오. 이젠 날씨도 완전히 늦은 봄이 되었으니 대구는 무리해서 다니지 말고 많
이 먹고 푹 자고 많이 자고 해서 살이나 많이 찌고. 공부는 나랑 같이 해도
되니 말이오.
운동은 한번에 절대 많이 하지 말고 틈틈이 끈질기게 열심히 해야 하오. 나는 기대에 부풀어 있소. 나의 작은 새가 변한 모습을 곧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
에 말이오. 그럼 건강하고 잘 있기 바라오. 이선생 영보에게도 안부 전해 주오.
1977년 4월 26일
****사랑하는 내 님
맛없는 점심을 먹고 앉아 밖을 하염없이 내다 보고 있었어요. 학교 앞 과수원 동산에 피어있는 철쭉은 다 져버리고 흔적도 없어요. 대신 잎은 많이 무성해
져서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군요.
파란 하늘, 흰 구름, 멀리 보이는 산, 옹기종기 눈물나는 집들, 우주가 그대로 정지해 버린 듯 숨 막히도록 조용한 일요일 한낮입니다. 일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하곤 전혀 관계없는 전화만 자꾸 와서 귀찮게 합니다.
벨 소리에 짜증을 내다가 내겐 볼 일 없는 거지만 그 사람에게는 볼 일 있는 것이지 고쳐 생각하고 친절하게 답해 줍니다.
그리운 당신은 지금 무얼 하고 있나요. 저처럼 누굴 몹시 그리워 하며 가슴이 찡해 오는 것을 가만히 삭이고 있나요. 당신의 편지 받고 열심히 일하고 먹고 하다가 또 다시 맥이 빠져 버렸어요.
마치 약 기운이 떨어진 아편쟁이처럼 축 쳐져 당신의 편지를 기다리고만 있
어요. 당신을 만나 사랑한지도 7월이 되면 만 7년이 돼요. 어느 하루도 당신
을 그리워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어요.
낮에 만나고 돌아와도 밤은 밤대로 밤에 헤어져 오면 아침엔 또 그리웠어요.
당신은 날 떼어 놓느라 골탕 많이 먹었지요? 그전에는 만나면 잘 해 줄 연구
를 했는데 요새는 만나서 어떻게 강짜 부리고 속을 뒤집어 놓을까 그 연구만
하고 있어요.
괴상한 말만 골라서 해서 당신의 속이 뒤집어 지는 걸 보면 막 통쾌할 것 같
아요. 그래야 당신이 제 곁에 있다는 게 실감 날 것 같고. 꼼짝없이 쩔쩔 매게 하고 싶어요. 당신은 워낙에 고단수고 제 꼭대기에 앉아 있지만…
아무리 오랜 세월을 함께 있어도 당신은 언제나 바람처럼 왔다 간 것 같아요.
당신이 무조건 좋아해 주니까 마치 이 세상 여자들 중에서 가장 매력있는 듯이 뽐내고 다닌 것 같아요. 당신도 그러는 제가 가소로웠겠지요.
송선생 장선생 다 하루 걸러 편지 받는데 나 혼자만 매일 헛방이야. 오늘 집에
가 보고 또 안 와 있으면 당신하곤 끝장이야.
1977년 5월 8일 노야
****그리운 당신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지난 일요일 날 편지 부치고 매일 편지 오는가 숨 죽이고 고대하고 있었어요. 오늘도 안 오면 끝장내야지. 오늘도 오지 않았으면
칵 죽어 버려야지. 돌아오는 길에서 나 혼자 내기를 걸고 별 별 짓을 다 해봐
도 당신은 끝내 아무 소식을 주지 않는군요
어디 멀리 떠나셨나요? 아니면 저의 인내를 시험헤 보시는건가요. 그렇잖으면 저보다 더 열중할 수 있는 게 있어서인가요? 정말 못 견디겠어요. 학교고 뭐
고 다 집어 치우고 달려갈까봐!
지금 나 혼자 무서워 죽겠어요. 도둑놈이 들어와서 내 입을 틀어 막고 무서운 짓을 할 것 같은 공포로 떨고 있어요. 옆 방 사람들은 사흘 전에 이사 나가고
주인 할매는 어디 나가고 텅 빈 집에는 지금 나 혼자 있어요.
30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빨리 좀 와요. 아이들 데리고 단체 영화 보고 오는
길에 이선생네 갔다가 영보 씨 신이 있어 살짝 도망쳐 왔어요. 한 번씩 들리러 왔다가 영보 씨 신이 있으면 살그머니 되돌아 와 버렸어요. 그럴 때는 얼마나 쓸쓸해지고 당신이 더 부쩍 그리워지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지금부터 당신
의 편지 올 때까지 입에 물 한방울 안 댈거예요. 굶어 죽어 버리겠어요. 맘대
로 해요.
1977년 5월 13일 노야.
---사랑하는 노야에게
출장을 다녀오니 애기같은 당신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소. 내 곧 가서 볼기
짝을 갈겨 줄테니 기다리오. 그리고 이 편지에 답을 할 필요는 없소. 내가 곧 갈테니 못 받기가 쉬울거요.
하는 연구는 이제 거의 틀이 잡혔고 이제는 자신이 확실하게 가오. 적어도 지금 나의 지적 수준으로도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오.
긴 애기는 만나서 하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줄이오.
1977년 5월 16일 승효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