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투쟁

책머리에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목적, 내가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단서는 부단히 우리를 투쟁하게 하고 갈등하게 하는 실체는 무엇이고, 왜 인간은 영원한 만족 속에 안주할 수 없는가, 또 이 고통을 우리는 어떻게 소화해야 하겠는가 하는 물음이다.
나는 작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그 성과를 바탕으로 위대한 사상들, 인류의 찬란한 유산인 자유주의, 합리주의, 변증법, 실존주의, 그리고 허무주의를 검토하려고 한다. 나는 오늘의 시대적 조류인 물질주의, 현실주의, 실증주의, 실용주의를 신봉하지 않 는다는 점을 이 자리에서 밝혀둔다. 내가 정열을 기울여 의도하는 것은 인간회복의 길, 즉 인간 본연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회향 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과 해방을 위한 방법의 모색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인간이 지금의 이 현실에서 그냥 사람답게 생활하는 것은 적당한 물질주의, 적당한 인간주의에 머무는 것이며, 이때 종교도 생활의 미덕이나 지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정착하고 안주할 우리의 집이 아니다. 그것은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곧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우리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일단 긍정해야만 할 것이다. 긍정하는 인간의 행위만이 생명을 가질 수 있다. 이 긍정은 지금의 현실과 타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나는 현실주의에 귀의하지 않는다.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절대적인 것은 자유의 이념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생명마저 바쳐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자유의 이념이야말로 지고의 가치인 인간회복의 원동력이 되고 인간의 존엄을 승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편협한 인간중심주의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또 나는 인간의 존엄과 해방을 추구한 위대한 사상가들이 그릇된 전제로 인해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허무주의도 거부한다. 니체를 포함한 이 사상가들의 허무주의에서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되고, 인간이 절대 주권자가 된다. 인간이 절대 주권자가 되면 필연적으로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는 논리에 빠짐으로써, 오히려 인간이 인간을 단죄하게 되고 인간타살의 정당성까지 확신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인간해방이라는 깃발아래 진군의 나팔을 분 군대였으나 결국 인간말살의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아서 인간의 가슴에 커다 란 회오를 심어줄 뿐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나는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자유의 이념 속에서 인간존엄과 인간해방의 척도를 찾았다.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인간에겐 투쟁과 창조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양면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 자신이 진리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인간이 척도가 되면 논리는 필연적으로 순환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자유가 아닌 다른 척도를 제시해야 한다면 나는
인간보다 오히려 신을 택하겠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비주의를 통해 인간을 속박하기는 해도 인간이라는 척도보다 그 해악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신 중심은 개인적 해악에 그치기 쉬우나 인간 중심은 그 해악이 더 대중적이고 전체적이다.
현실 세계가 불합리하며 인류의 희망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자들이 견지하는 삶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들은 다 같이 자신이 조망하는 완전한 상태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고자 투쟁해야 한다고 본다. 그들의 눈에 세계는 질곡에 빠져 있으며 개조되고 변혁되어야 할 불합리한 것이다. 이 변혁적 태도로 인해 그들은 세계사의 주인공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충족과 완결의 환각 속에서 세계를 관조하는 자에게 세계는 변화의 당위성도 필요성도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진행 중인 세계사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입증하지 못한다.
의식의 깊고 낮음이나 지식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세계에 대한 모든 사람의 관계와 그들이 서 있는 위치는 동일하다. 현실 세계에서 일말의 질곡을 느끼지 않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세계에 대하여 인간이 느끼는 불일치, 자아와 비아의 불일치를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이 일치를 추구하는 존재임을 말해준다. 위대한 선각자들이 인류에게 제시한 참된 인생의 모습도 궁극적으로는 불일치에서의 해방, 즉 일치로의 진전이라는 면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인류의 스승이 위대한 것은, 우리가 망각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내재하는 우리 자신의 원리를 우리의 방황과 몽매상태에서 구출하여 깨우치거나 발전시켜 주는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원리를 요약하면 인간을 불일치로부터 구출하여 완전한 일치상태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이미 세계와 나의 대립이 해소되고 세계는 진정한 충족과 완결 속에서 관조된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심해에 매몰된 아틀란티스처럼 발굴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이 책은 독재와 질곡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려는 투쟁 중 목숨을 바친 세계의 자유시민과 또 독재를 향해 지금도 선전을 포고 하는 나의 자랑스러운 동료들에게 바치는 나의 조그마한 정성이다. 내 영원한 연인 노야에게도 이 책을 바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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