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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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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38)

“그리운 님, 제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있나요?”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1-09-15 (수) 07:27:22

그리운 님, 제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있나요?”

 

217일 화, 1976

계속해서 비가 내린다. 진눈깨비가 내리다간 금새 눈으로 변하기도 한다.

늘이 보름이란다. 그래서인지 밤이 되어 구름장이 열리고 달이 고개를 내민

. 멍석만한 달이 동그랗게 떠오른다. 마치 새벽녁의 떠오르는 밝기의 해같

. 구름이 누르스레하다. 아마 달빛에 물들어 그러리라. 논 밑에 남은 찬

물과 잔설위에 달은 긴 빛줄기를 띄우고 있다.

나는 화랑담배를 피워 물고 장엄한 자연의 모습에 빠져든다. 정말 멋진 달

이다. 이제 며칠만 있다가 노야에게 달려 가리라. 군생활도 그리 짜증도 나

지 않는다. 아마 모든 게 타성이 되고 못이 박혀서 그럴 게다.

 

밤엔 촛불을 밝히고 독서를 한다. 천천히 읽고 또 읽고 한다. 무릇 위대한 책

을 대할 땐 완독이 최선의 방책이다. 그것도 전체의 통관을 항시 잊지 않으면

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돌아 보면서 정독 숙독하면 그렇게 어려운 사

상은 없다.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내가 제대를 하고나서 무엇을 할까 오래오래 생각하다. 언론인, 의사, 교수, 무엇을 하더라도 무명소졸로 물거품처럼 까지지 않을 것

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유와 독서와 인간심부의 탐구가 주는 것 이상의 즐거움은 없을 것 같다

나는 교수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작게나마 인간이성의 진보를 후세에 남겨주어야 할 것 같다.

그것만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사교적이 되

지 못한다. 그리고 쇼맨쉽도 별로 없다. 나는 내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나는

나 자신에 침몰할 때에만 기타의 모든 것이 발휘될 그런 사람에 불과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강인하면서도 정말 석학이라 할 수 있는 학자가 되고 싶다. 을 바탕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민중을 선도하고 싶다. 내가 좀 더 일찌기 칸트의 글을 읽었더라면 그렇게 과격하고 급하지 않았으리라. 그는 집을 지을 때 (자신의 철학을 정립할 때) 그 집이 다 지어지기 전까지는 살 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현 시점을 일단 긍정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20, 미숙하나 나에겐 아직 젊음과 청춘과 정열과 투지가 넘쳐 흐르는 팔과 다리 그리고 두뇌가 있다. 3년을 나는 벌어야 한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 시간을 인생의 밑거름으로 해야 한다. 잠이 모자라 팔에 힘

이 없다.


218일 수, 1976

계속 비, 날씨 흐림. 지원정찰을 따라 나왔다. 비가 가랑비 되어 뿌린다. 여주 근교의 싸리산. 사람이 한평생 자기 하고픈 일만 한다면 그건 행복한

일이다. 나에게 이 세계는 열려져 있다. 나의 투지와 노력으로 어느 것이

나 뚫겠다. 그리고 노얄 더욱 사랑하면서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 그것은 진

정 행복한 일이다.

나는 정찰을 나왔다. 소대장의 배려로 민가에서 그냥 머물렀다. 그래서 이

렇게 일기를 쓰고 있다. 책을 가지고 나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제나

나와 붙어서 한몸이 되어 움직이는 책인데.

오늘은 내가 징집영장을 전해 받던 날이다. 작년 이날 218, 나에게 모

든 것이 크게 변하던 날이다. 그리고 나는 221일 날 노야와 이별을 했다. 많은 고통과 배움과 삶을 느끼게 해준 한해. 세월은 빠르다. 어쩌면 노야와 이별을 한 이날 노야를 만나게 되겠지. 곧 달려 갈테다.

정작 오늘 휴가를 가려고 했는데 보좌관이 잊어 버렸을까? 잊었다면 전화를

하고. 안달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나는 담담해져 버렸다. 지금 내가 쉬고

있는 곳은 작은 주막이다. 옆에 자그마한 이발소가 붙어있는 그런 곳이다.

그곳에서 쉬고 있자니 촌 할아부지가 면도를 하러 왔다. 주인은 술먹으러

가고 혼자서 면도칼을 들고 두리번 거리기에 내가 그 할부지의 밤송이처럼

자란 턱수염을 밀어 주었다. 그는 나에게 술을 사준다고 한다

사양을 해도 막무가내라 대포 한잔을 대접받고 있는데 정찰대가 이곳에 도착했다. 정찰대 소대장도 한잔 얻어 마시고 귀대.

돌아오는 길에 양초를 한 자루 사서 왔다. 오늘 밤엔 이놈을 키고 공불할테

. 내일은 보좌관에게 전화를 내야겠다. 기다려 보자. 그리고 내일은 노야

에게 가야지. 안녕 노야, 잘 자.



219일 목, 1976

오늘 연대로 전화를 했더니 보좌관 마누라가 아파서 3.4일 께 나온단다.

낭패다. 그러던 중 나보고 오늘 연대로 들어가라 한다. 잘된 일이다. 일이 풀리리면 이렇게 풀려야 한다. 가는 길에 보좌관을 만나야지.

일이 더럽게 꼬이느라 그런지 또 가지마라 한다. 노야가 날 무척 기다리겠지.



220일 금, 1976

오늘 이 핑계 저 핑계 대어 대신으로 나갔다. 거기서 보좌관 집에 들렸다.

그는 약속을 안 지킬 사람이 아닌데 웬걸 마누라가 아파 서울로 수술을 하러

갔다 한다. 사가지고 간 깡통만 몇개 동그라니 두고 쪽지를 써놓고 돌아왔다. 아마 3, 4일 경 돌아올거라 한다. 3월 초가 되어야 휴가를 갈 수 있을 것 같

. 기다리는 김에 더 기다리자 하며 돌아왔다.

 

저녁에 고참놈들의 잔소리를 듣다. 뭘 처먹었길래 저토록 잔소리가 많은지

물론 누가 고참이 되어도 마찬가질테지만 말이다. 노야가 보고파 미치겠다.

오늘 편지 받다. 어쩌면 224일께 이곳에 올지도 모른다 한다. 3월이

되면 내가 간다고 지대장에게 부탁해서 전보치다.

이 먼 길을 나의 천사가 온다면 고달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테니 내가 가

야지. 그리고 밤엔 또 촛불을 켜고 책을 읽는다. 조용히 정신이 가라앉고 고상하고 위대한 사색에 접할 땐 세상에 더 바랄 게 없다. 그리고 볼 만큼의

양을 완독하고 난 후엔 희열과 행복감이 나를 감싼다.

노야와 책과 그리고 아담한 방이 있다면 그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할까?

안녕, 노야 좋은 꿈 꾸자.

 


 

***나의 당신께

오늘은 행여나 오시려나 기다리다 편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당신의 편지는 항

상 미덥고 큰 기쁨을 줍니다. 편지에 온다는 말이 없어 좀 섭섭했습니다.

쌀쌀한 날씨가 좀체 풀리지 않아 당신이 오들오들 떨 생각을 하니 초조해 집

니다.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잠시라도 절 생각하시며 위로받으세요. 당신의 형편이 허락하면 24일날 봄방학에 달려갈까 합니다.

 2-3일이라도 휴식을 취하시도록 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당신의 어려운 시기도 좀 더 빨리 지날갈 수 있겠지요.

 

한 순간도 당신 생각이 떠나지 않아요. 못 본지도 벌써 한달이 되었나 봐요.

편하게 해드렸나 홀로 있을 때는 늘 후회가 됩니다. 빨리 볼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안녕.

1976218일 노야.

 

 

***그리운 당신

옆방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다 들립니다. 이 아줌마의 남편은 직업군인인데 장교는 아니라도 쪼달리는 것 같지 않고 반찬 해먹는거 보면

기름진 것 잘 해먹고 국민학교 다니는 아들을 잡도리하는 거 보면 무섭게

때리고 맨날 표정도 엄한데 남편한테 말할 때는 얼마나 나긋나긋 애교가 많

은지 남편에게 퉁명스레 말하는 경상도 마눌들 보다가 참 이상해 보입니다.

 

오늘 하루도 당신은 피와 땀으로 사셨겠지요. 당신의 하루에 비한다면 저의

하루는 얼마나 게으르고 무절제한 것인지요. 사실 저는 당신의 사랑만을 생각

하며 살아 간답니다. 이렇게 고즈넉한 밤 방에 홀로 있으면 쉽사리 당신께

날아갈 수 없음이 못 견디게 서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 마음을 달래 줄 추억

은 너무도 생생하여 저는 또 쉽게 진정하기도 합니다.

 

장난꾸러기, 맨날 날 놀려먹으며 낄낄 웃고 내 단점을 너무나 빠삭하게 잘 알

고 새대가리라 하고 한번씩 내 하는 말이 답답하다며 짜증을 벌컥 내어 내가

화가 나서 입 꼭 다물고 심통을 부리면 맹구같이 온갖 바보천치머저리같은 표

정으로 싹싹싹 빌어 오래오래 괴롭히고 싶은데 웃음이 터져 더 삐지지 못하게

하는 밉새이. 나한테 밉상 짓도 참 많이 했는데 왜 이리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을까요.

 

그리운 님, 제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고 있나요? 그 무엇이 이 행복을 뺏어갈

수 있을까요. 당신이 이 우주에 숨을 쉬고 있는 그것부터가 저의 행복입니다.

지상의 그 어떤 좋다는 것도 이 행복을 압도할 수 없으며 당신이 저를 위해

그 지독한 고통과 맞바꾼 명예를 저는 감사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허울좋은 세상의 그것보다 당신이 피와 살로 깍아 이룬 진정한 명예를 저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건장한 다리와 항상 삶의 정기가 되는

근원을 더듬는 빛나는 눈과 당신의 모두를 사랑합니다. 보고싶어요 미치도록

1976220일 노야.

 

221일 토, 1976

남자들만이 생활하는 특수집단이라 그런지 여자 얘기가 하루종일 가장 주된 이야기이다. 그것도 거의 섹스에 관한 얘기다

우리 지대에 지금 환자가 한명 있는데 그놈은 아주 입심이 좋다. 아주 잘생긴 서울 놈인데 그 부분엔 거의 프로급이다. 놈의 얘길 들을 땐 다문 입이 닫쳐지지 않는다. 요즘 세상은 이런가 하는.

너무도 별세계의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이자식은 하물며 2살 많은 자기 이모

도 슬쩍해 버린 놈이니까. 하하! 괜히 놈의 얘기를 들으면 사타구니가 근질

근질해 진다. 하기야 그런 것마저 없다면 군생활은 지내기에 더욱 무료할 것

이니 일종의 심리최면제 역할도 한다. 그저 나에겐 노야만 있으면 되니까 더

이상 무얼 바라랴.

 

222일 일, 1976

오늘부터 이곳의 생활도 신나는 달밤이다. 왜냐하면 편제가 바뀌어서 아침

8시가 되면 1개 중대당 1명씩 출장을 가서 오후 5시에 돌아오게 된다.

그러면 굳이 수색중대로 갈 이유도 없다. 오늘 하루 중대에서 생활하니 이

건 완전히 내가 바라는대로의 생활이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하루종일

책을 읽었다.

 

이렇게 되면 칸트를 주파하는 것도 월등히 당겨지게 된다. 칸트가 끝나면

다른 책은 거의 3일에 한권 정도 읽을 것 같다. 더 이상 좋은 일이 없다.

물론 오늘 하루의 경험으로 그렇다. 그리고 이곳 생활이 고달프고 또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을 땐 수색중대로 날아 버리면 되니까. 군에서 내가 읽을

거리를 다 독파하는 3년으로 만들고야 말테다. 의지가 승리하는 곳에 길은

열리는 법이니까.

어쨌든 이 군생활이 나에게 지금까지 하나의 결론으로 결정지어 준 것은 독

서가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제 책은 생활에서 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 보다 더 큰 소득은 나의 노얄 정말 귀중한 것으로 체험했다는 것이다. 이제 노얄 살과 피로 사랑하게 되었고 책은 뗄 수 없는

나의 분신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3개가 된 셈이니 여간 부자가 된 게 아니다. 잘하면 노얄

만날 3월까지 칸트를 무지하게 많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반갑고 고맙고

즐거운 일이다. 이제 노얄 만나면 정말 원숙한 여인을 만날 수 있겠지. 노얀 나에게 자기의 변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더욱 장하고 매력있는 나의 천사. 정말 네가 보고싶어 미칠 것 같아 매일 네 꿈을 꾼다. 안녕 노야 잘자.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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