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35)
12월 4일 목, 1975년
날씨가 많이 따뜻해져서 지내기에 좋다. 하는 일이란 별로 없다. 그저 시간
만 어영부영 보내야 되는 그런 일이다. 누구나 맡은 일만 딱딱하는 그런 생
활이면 얼마나 좋을까. 김중명 선생님, 노야 어머님께 편질 내다. 오늘은 군
대에 와서 처음으로 옷을 다려 입어 보았다. 정비실에서 다리미질을 해본다.
이 떨어진 군복. 고참놈이 옷을 다려 입으라 한다. 옷에 신경을 쓰는 놈들이
무척 많다. 좋은 일이고 바람직한 일이나 쓸데없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나 많
이 지불된다.
태어나 살아 온 환경은 형님들에게서 배운 것이어서 옷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었고 그저 옷은 크기만 하면 되었다. 몸만 편하면 아무래도 좋다.
선비가 道에 뜻을 두며 어찌 옷과 먹는 것에 신경을 쓰랴마는 나는 속몸과 먹는
데는 신경을 써야 한다. 나의 정결하고 건강한 몸, 그것은 외피로 변화를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7명밖에 안 되어 모두 나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책을 볼 수 있는 여가를 피맺힌 투쟁으로 쟁취한다. 이제 싸르트르도 거의
다 읽어 간다. 다음은 칸트를 앍으리라.
어제는 상열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휴가를 다녀 오겠다 한다. 최보좌관이 며
칠만 기다리면 나도 보내 주겠단다. 기도해 볼 일이다.
12월 5일 금, 1975년
몇명 안되는 인원이 서야 하는 불침번이기 때문에 요즈음은 낮에 몹씨 졸린다. 그리고 불침번 시간도 길기 때문에 편질 많이 쓴다. 왔다갔다 하며 덧없이 지나가는 하루 일과, 날씨가 추우니까 내무반 안에 있어야 하고 잔일을 해야 하니 겨울은 여름만 못한 것이 이곳 지대생활인 듯하다.
그러나 나에겐 더 많은 기회가 열려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며칠만 있
으면 노야가 방학을 하고 또 년말이 되고 한해가 가겠지. 격동의 한해였고
많은 사건과 아픔과 환희와 고통을 준 한해였다. 이제 저무는 한해를 곰곰이 돌아보며 반성과 나의 성장과 여러가지를 결산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이 한해를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나를 오늘의 나로 엄청나게 변화시켜
버린 금년 1975년, 하나의 빛나는 소득이 있다면 인간을 파악했다는 거다.
나는 이제 어떤 부류의 인간도 겁내지 않는다. 그를 나와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며 간주할 수 있는 자신이 생겼다. 나에겐 금싸라기 보다도 값있고 노야에겐 어른이 되게 하고 우리의 사랑에는 영원과 참됨과 시간 공간을 초월하게 해준 금년 1975년.
그 한해의 결산을 나는 노야와 더불어 할 수 있게 되었다. 즐겁고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 일년은 내가 학교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때보다 더욱 값지고 풍요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준 한해였다. 이 한해
를 보내면서 나는 넘치는 회오와 상념의 흐름을 단절시킬 수가 있을까?
나를 괴롭게 하고 또 나를 슬프게 하고 기쁨에 몸을 떨게 하던 날들. 나에게 처음으로 한계에 부딪치게 한 이 한해. 나는 내 인생행로 중에서 1974-1975
을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 이제 그 지난 시간들을 유추하자.
12월 6일 토, 1975년
똑같은 일의 반복. 오늘 實存이란 사상 자체의 운명과 가치를 결단하는 자
유라는 정의에 직면하다. 군대란 희한한 곳이라 시간을 소모하는 데는 더 없
이 좋은 곳이다. 똑같은 일을 아무 의미도 없이 계속시킨다. 장비를 닦고 원
위치 시키고 닦고 원위치 시키고, 엿 먹어라 이놈들아!
사르트르의 글을 읽어보면 문학이란 제제의 정신적 산물과 마찬가지로 주어
진 시대, 환경, 상황에 침잠하고 충실하며 그것을 매개함으로써 오히려 그 여
건과 상황을 초월하여 절대적 보편으로 비약하는 하나의 양태이다.
즉, 구체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에로의 비약 내지는 전진일진대 그것은 하
나의 탐구의 양식을 취하게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논리의 형식 중에 구체적
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의 경로라는 것은 일반적인 것에서의 구체적 정황으로의 서술양식을 형성한다.
그러나 문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그것은 작자의 머리속에서 미리 계획되
고 의도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작품의 경로란 것은 필연적으로 변증법적
서술의 양식적 서술적 형식으로 탐구의 양식이 변형 전도된다.
하여튼 세상은 재미있고 요상한 것.
세월아 구보로 달려라. 이제 또 노야와의 즐거운 날이 눈 앞에 다가왔다.
이렇게 무용하게 시간을 소모하고 버리면서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사람은 나의 천사 노야. 만약 네가 나에게 없었다면 나의 인생의 기쁨은 반감했으리라.
아니 그것은 삭막하고 보잘것 없는 것이었을 거다. 나는 행복한 놈이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밖에서 놈들을 피해 책을 보려면 추워서 애로사항
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나의 이 집념을 나는 계속 연장하고 전진 시키리라.
구체적 보편성이란 일정한 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의 총체를 의미한다. 커다란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밤에 얻어 터져서 그런지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애들하고 생활을 하자니 더러워서 못 살겠다. 가만히 보니 처먹을 게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 신경질도 나고 사르트르도 다 읽어버린 김에 p.x 서 맥주를 열 병 외상으로 사와서 마셔 버렸다. 이제 노얄 볼 날이 당겨 졌다. 포상휴가 안 보내 주려나. 한번 갔으면 좋지 않겠음?

12월 7일 일,1975년
기상하면 캄캄한 밤의 연장이다. 해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어두운 데서 청소를 하고 한참을 있어야 휘뿌연 회색빛 하늘이 벌어진다. 그 회색
빛으로 둘러 싸인 온누리. 언 땅 차거운 바람 속에서 때가 타고 너덕너덕 주
워입은 두터운 옷들. 떨면서 땅을 쓸고 있거나 둔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을 보
면 마치 소설 속에서 보는 북극 하늘아래 유배온 포로들을 보는 것 같은 착
각에 빠진다. 물론 나 자신도 그 속의 일원이다.
그리고 7시가 넘어서 때가 붙은 바께스에 타다 먹는 짬밥. 요즘은 콩나물국
에 보리밥 한그릇. 손이 시려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그릇을 씻고 오전을 보내
고 또 그렇게 점심 저녁을 보내고 하루 해가 진다.
이렇게 지내는 생활이지만 나의 뇌리엔 종일 나의 존재, 인간의 실존, 신의
문제, 나의 사명, 사랑 이런 개념들이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계속한다.
오후엔 환자들이 오고. 오늘도 책을 조금 읽겠다는 욕망으로 일부러 모포를 밖에다 내다 말렸다. 모포를 내다 말릴 때는 감시가 한명 필요하고 언제나 마찬가지로 감시는 나이고, 혼자가 되고 눈칠 안 보며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포를 지키며 책을 본다. 30분을 밖에 나가 앉아 있으면 궁둥이가 얼고 귀 코가 발갛게 얼어 버린다. 그러나 나에겐 그때가 아주 즐겁고 좋다.
노야의 사랑을 생각한다. 그 아가페적 사랑. 반짝이는 눈. 언제나 경이와 흥
분이 나의 가슴에 일게 하는 너. 내 보고 겁이 없다고 한다. 겁 좋아하네. 어린애들을 보고 겁을 낼 내가 아니다. 하지만 궁둥이가 아릴 땐 불끈불끈 성이나서 참기 어렵다.
파스칼의 <팡세>, 칸트의 글들, 단테의 <신곡>, 니이체, 키에르케골의 글이
다음 차례에 내가 읽을 책들이다.
또 노야에게 달려갈 날이 하루 당겨졌다. 그것만도 나에겐 너무도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노상 노야를 부를 땐 노야가 사람이 아니고 나의 먼 아스라한 정신적 동경, 사상의 근원, 빛의 실체와 같은 환상에 자주 빠진다.
12월 9일 월,1975년
7명 중 2명이 휴가를 가서 더욱 바빠지고 몸은 고달파 졌으나 마음은 더옥 편해졌다.
모든 고상한 인격과 위대한 사상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움트는 것.
12월 10일 화, 1975년
가온이 점점 떨어진다. 겨울이 본격적이다 난로를 때기 때문에 하루에 몇번씩 탄을 이겨야 한다. 물을 붓고 흙과 섞는다. 그러나 물을 부으면 금방 얼음이 되어버려 애를 먹는다.
12월 13일 금, 1975년
날씨가 더욱 차거워지고 도저히 사람이 산다 할 수 없을 정도의 혹사를 당한
다. 다섯 놈의 시중을 혼자서 다 들어 주어야 하니 정말 5-6시간을 앉을 틈
도 없다. 짜증스럽고 지겹고 역겨운 일의 연속이다.
오늘 찬 물에 기름 때가 묻은 식기를 닦는데 닦아도 닦아도 지지 않으니 졸
병 조봉환이가 터서 갈라진 자기 손을 보고 우는 것을 봤다. 그놈도 대학을 다니다 온 놈이다. 웬지 설움이 울컥 솟아오른 모양이다. 그걸 보고 나는 껄껄 웃고.
나는 노상 웃는다. 왜 그렇게 우서운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식기를 닦
으며 발이 시려 뛰면서 닦았다. 돌아오면 또 심부름. 승효야! 승효야! 이 새
끼야! 이것 가져 와. ~~에 가 봐! 밥 가져와! 씨팔놈들, 그러다 신경질이 나
면 모포를 널어 버린다. 예의 모포감시다. 떨면서 뱃속에 있는 책을 꺼낸다.
그러다 문득 이짓을 해서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애써 머리를 털어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오늘이 벌써 1년이 되었다는 생각에 놀란다.
1974년 12월 13일, 내가 대학에서 쫒겨난 날이고 사병으로 군에 오게 된
직접적 동기가 된 날이다. 나는 이 날을 기념하고 싶다. 나의 실존 나의
삶이 새로운 의의를 획득한 날이다.
저녁에 대구 출신 병사 2명이 (여기서 안 환자들) 술을 사주러 찾아 왔다. 한 명(하사)은 경고 2년 후배다. 그들과 같이 나는 오늘을 기념했다. 노얀
아마 지금 쯤 대구에 있겠지. 노야를 볼 날이 이제 10일 남았다. 이 일기장
도 이것이 마지막 장이다. 가장 좋은 건 내가 이곳을 떠나는 거다. 수색중대
로나 딴 어느 곳으로.
인생이란 깊고도 험하다. 애닯고 뜨겁도다. 가슴을 쳐도 두드려도 풀리지 않
는 이 답답함. 한 권의 양서도 읽을 때 뿐. 이 가슴의 비밀, 음울한 갈등은 해
소가 되지 않음이 어인 일인가.
아! 그리워라 그 빛. 우주 제1의 빛, 카프카가 도달하려다 결국은 좌절하고
마는 그 <城>과 <法律의 門>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련가.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일은 1년 전 당신이 학교에서 제명된 날이라 생각이 많으시리라 여겨집니
다. 지금 당신이 졸병으로 있게 된 것도 그날 때문이지요.
대구 문화방송 테레비전에 징계받은 학생들 얼굴이 죽 나오는데 당신만 제명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정학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제명이란 말인가! 어머님 경미언니와 무너져 내리
는 것 같은 가슴을 안고 차거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밤 깜깜한 골목
길을 더듬어 박희명 학장 집을 찾아 갔습니다. 학장은 자신이 제명시켜 놓
고는 쇼를 하는지 얼굴을 오만상으로 찌프리고는 우리 보고 "제명을 시키
다니 총장이 미쳤어요"하고
경미누나의 친한 친구 아버지기도 한 김영희 총장은 "제명이 뭐꼬, 박학장이
제 정신이가? 꼴도 보기싫어 만나주지도 않았다" 하면서 총장과 학장은 서로
미쳤다 하더군요. 하지만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당신을 희생양으로 잡은 제명
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당신은 징집영장을 받았지요.
2월21일, 의성의 작은 이발소에 같이 가서 당신은 머리를 짧게 깎았습니다. 그 풍성하던 머리카락이 땅바닥에 뚝뚝 떨어질 때 내 가슴은 오그라드는 듯하여 안간힘을 써서 다둑거렸던 분노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72년 10월유신이 선포된 날 당신은 이제 민주주의는 죽었다 하면서 머리를
싹 밀어 버리고 왔길래 "형이 좀 말리지 그러셨어요?"하고 이강철 형에게 그
랬더니 날 보면 말없이 싱글싱글 웃기만 하시던 강철 형은 내 눈을 똑바로 쳐
다 보시며
"우리는 승효를 존경하는데 노양은 챙피합니까?" 정색을 하고 그러셔서
아이고 엄마야 무서워 죽을 번 했던 게 생각났습니다.
당신은 소집장소인 학교운동장에 가득한 농촌 청년들과 섞여서 호루라기
를 표독스럽게 불어대며 일어섯! 앉앗! 하는 군인의 호령소리에 똥개처럼
움직이다가 마침내 죽 열을 지어 논산으로 가는 역으로 향하여 줄지어 갔습니
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보여주려고 연신 뒤를 돌아보는 당신이 아
주 사라져 안 보일 때까지 서 있다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무슨 정신으로 대
구로 돌아 왔는지-----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더 발전시키는 사람이라는 것은
너무 잘 알지만 한번씩 울분이 솟아올라 참는 데 애를 먹습니다.
이런 날은 제가 당신 곁에 있어야 하는데 미치겠군요.
1975년 12월 12일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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