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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스님 “日억류 고종황제투구구출작전”

글쓴이 : 정현숙 날짜 : 2013-10-05 (토) 12:18:08

 

“일본 국민의 양심에 묻습니다. 나는 왜 일본에 있는 것입니까? 나는 한때나마 조선의 국왕이었습니다.”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고종황제 투구의 고백

 

일본에 억류된 ‘고종황제투구 구출작전’이 시작된다.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스님)는 4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고종황제 투구와 갑옷 환수를 위한 운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고종황제 투구와 갑옷은 지난 1일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시작된 ‘조선시대의 미술’ 특별전에서 사상 처음 공개됐다. 이 투구와 갑옷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전래된 제왕의 소장품으로 고종황제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것이 일본에 넘어간 것은 ‘도굴왕’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년)가 1910∼1950년대 한반도에서 수집한 문화재 1000여점 중 일부로 1981년 도쿄 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지금까지 수장고에 있었다.

 

그간 혜문스님은 ‘오구라 컬렉션 수기’를 근거로 조선 제왕의 투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특별열람을 신청했으나 번번이 거부당했다. 그러나 지난 3월 고종황제의 손녀이자 의친왕의 법적 상속인인 이해경(황실명 이공) 여사가 “제왕의 투구와 갑옷은 거래될 수 없는 국권의 상징물로 즉각 반납해달라”는 서한을 띄우는 등 압력을 가하자 특별전시 명목으로 대중에 첫 공개를 하게 됐다.

 

전시 첫날 투구를 살펴본 혜문스님은 “양 날개가 달리고 발톱이 5개인 용이 새겨졌고, 이마와 정수리는 백옥으로 장식되는 등 국왕의 상징이 구체적으로 형상화 된 조선 대원수 투구가 맞다”며 고종황제의 유물임을 확인했다.

 

이번 전시엔 왕의 평상시 복장인 관복과 익선관, 왕실에서 사용하던 도장도 공개됐고 명성황후를 시해한 자객이 방에서 들고 나온 풍혈반이라는 작은 상까지 버젓이 소개해 충격을 주었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이 유물들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집된 문화재라는 증거가 없으며 정당하게 입수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이해경 여사가 서한에서 밝힌대로 제왕의 투구 등 왕권의 상징물은 어떠한 경우에도 거래될 수 없는 물건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도굴왕’ 오구라가 빼돌린 희대의 장물을 “기증받았으니 정당한 입수”라는 도쿄국립박물관의 주장은 LA카운티박물관이 소장가로부터 구입한 문정왕후 어보가 도난품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반환키로 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법적 절차를 밟기에 앞서 일본 국민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려 스스로 반환토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4일부터 다음아고라 ‘희망해’에 네티즌 서명 및 모금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차 목표액은 아사히신문 등 일본의 유력매체에 광고를 낼 수 있는 800만원이다. http://hope.daum.net/donation/detailview.daum?donation_id=108337

 

 

혜문스님은 “국내에도 존재하지 않는 조선 국왕의 투구가 일본 국립박물관에 왜 있는 것인가.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된지 어언 70년. 도쿄에 인질처럼 잡혀있는 고종황제의 투구를 이제는 되찾아야 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혜문스님은 “망국의 한을 넘어 새로운 승리의 역사를 쓰기 위해, 정부가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힘을 모아 일본국민들에게 외쳐보자. 조선 국왕의 투구가 왜 일본에 있느냐고? 그리고 언제까지 일본에 있어야 하는지”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현숙기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조선시대 투구의 역사


'오례의'에 의하면 조선시대의 투구는 철로 만들되 테가 있는 첨주와 테가 없이 둥그스름한 원주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꼭대기에는 삼지창에 삭모를 달았는데 중기부터는 투구의 앞면에 용봉문과 당초문 등을 투조하거나 입사 상감하며 뒤에는 귀와 목을 가리는 드림을 달았다.

 

조선시대 정대업 춤을 출 때 무무 공인이 쓰던 장식용 투구는 베를 붙여서 만드는데 겉은 흑색단으로 싸며 모자의 안에는 홍색초, 차양의 안에는 홍색 단을 댄다. 정수리에는 금정자에 홍색 상모를 좌우에는 금운월아를 붙이며 자주 끈을 달았다.

 

육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봉상 장군의 용봉원수문두정 투구는 위는 좁고 아래로 퍼진 형인데 전후좌우에 용봉문이 부조되어 있다. 이마 가리개에는 좌우에서 원수글자를 향하여 비룡이 날아드는 형상이 새겨져있다. 부원수용 투구는 사주 안에 용과 봉이 없고 이마 정중 아랫쪽에 부자와 그 좌우에 운룡이 투조되었다.

 

<자료 참고 한국복식문화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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