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속으로〉 10월 19일

AI 생성 이미지
역사는 승리의 환호(歡呼)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남겨진 상처, 국가의 이름 아래 희생(犧牲)된 사람들, 해방은 찾아왔지만, 청산은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했던 세력을 심판하고 새로운 나라의 정의를 세우려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조직적인 방해 속에 무력화됐습니다. 식민지의 잔재를 걷어내야 할 자리에 과거의 기득권이 되살아났고, 역사를 바로 세우려던 시도는 끝내 좌절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나치 협력자들을 처벌하며 국가와 사회의 도덕적 재건을 모색했던 것과 달리, 한국은 친일 청산의 중대한 기회를 놓쳤습니다. 10월 19일, 우리는 묻습니다. 해방된 나라가 과거의 잘못을 심판하지 못하면, 역사의 정의는 누구의 편에 서게 되는가.
[역사속의 주요 장면]
1781년 — 요크타운의 항복, 미국 독립전쟁의 결정적 전환점
미국 버지니아주 요크타운에서 영국군 찰스 콘월리스 장군의 군대가 미·프랑스 연합군에 항복했습니다. 이 승리는 미국 독립전쟁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꾸었고,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는 길로 이어졌습니다. 독립은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자유를 향한 열망에 국제적 연대와 희생이 더해져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1948년 — 여수·순천 10·19사건, 분단의 비극이 번지다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하며 봉기했습니다. 사건은 여수와 순천을 비롯한 전남 동부 지역으로 확산됐고, 진압 과정과 이후의 혼란 속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습니다. 좌우의 대립과 분단의 긴장, 국가권력의 폭력이 한데 얽힌 비극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사건의 진실과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은 쉽지 않았지만, 오늘날 여순사건은 기억과 화해, 국가의 책임을 묻는 역사로 다시 조명되고 있습니다.
1948년 —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친일 청산의 첫걸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친일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첫 조사위원회를 열어 특별재판소 구성 등을 논의했습니다. 식민지 지배에 협력한 세력을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의 정의를 세우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1949년 경찰의 특위 사무실 습격과 특별조사위원 체포 등 일련의 탄압으로 특위 활동을 사실상 무력화 했습니다. 식민지 시기의 인적·사회적 기득권은 상당 부분 살아남았습니다. 한국의 친일 청산 실패가 오늘날의 모든 역사 왜곡을 직접 낳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책임을 충분히 묻지 못한 현실은 식민지배를 미화하거나 피해자의 고통을 부정하는 주장에 맞설 사회적·도덕적 기반을 약화시킨 중요한 역사적 요인으로 남았습니다.
1987년 —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검은 월요일’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약 22.6% 폭락했습니다. ‘검은 월요일(Black Monday)’로 불린 이 사건은 세계 금융시장으로 충격(衝擊)이 번지면서 현대 경제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드러냈습니다. 시장의 불안은 국경을 가리지 않았고, 투자자의 공포는 순식간에 세계 경제의 위기로 번질 수 있었습니다. 번영의 속도만큼이나 위험을 관리하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오늘의 탄생인물]
최현배 (崔鉉培, 1894~1970)
한글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평생을 바친 국어학자이자 교육자입니다. 주시경의 뜻을 이어 우리말 문법을 체계화하고,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언어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힘썼습니다. 대표 저서 《우리말본》은 한국어 문법 연구의 중요한 토대가 됐습니다. 해방 후에도 한글 전용과 한글 교육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우리말을 지키는 일은 민족의 정신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최현배의 삶은 말과 글이 한 민족의 기억이자 미래를 여는 힘임을 일깨워 줍니다.
존 르 카레 (John le Carré, 1931~2020)
영국의 소설가로, 냉전 시대 첩보소설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대표작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첩보전의 긴장뿐 아니라 이념과 충성, 배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내면을 그렸습니다. 그는 선과 악을 단순하게 나누기보다 국가의 이해관계 속에서 개인의 양심이 어떻게 시험받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했습니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그의 작품이 읽히는 이유는 권력의 세계가 바뀌어도 인간의 도덕적 갈등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 (Subrahmanyan Chandrasekhar, 1910~1995)
인도 태생의 천체물리학자로, 별의 진화와 죽음을 설명하는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별이 최후에 어떤 상태에 이르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찬드라세카르 한계’를 제시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백색왜성(白色矮星)과 중성자별, 블랙홀에 관한 현대 천체물리학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우주의 거대한 질서를 탐구한 그의 생애는 인간의 지성이 얼마나 먼 곳까지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198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피터 맥스 (Peter Max, 1937~2025)
독일 태생의 미국 시각예술가로, 강렬한 색채와 환상적인 이미지로 1960년대 이후 대중문화와 팝아트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포스터와 앨범 디자인,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예술을 미술관의 벽 너머 대중의 일상으로 끌어냈습니다. 그의 작품은 색과 형태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대의 감정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표현하는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의 타계인물]
조너선 스위프트 (Jonathan Swift, 1667~1745)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이자 풍자문학가로,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인간 사회의 허영과 권력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환상적인 여행담처럼 읽히는 작품 속에는 정치적 탐욕과 전쟁의 어리석음, 인간의 오만에 대한 냉철한 성찰(省察)이 담겨 있습니다. 웃음은 때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이 됩니다. 스위프트는 풍자를 통해 권력과 사회가 감추려는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Edna St. Vincent Millay, 1892~1950)
미국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개인의 자유와 사랑, 삶의 덧없음을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1923년 여성 시인으로는 세 번째로 퓰리처 시상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삶과 작품으로 주목받았으며, 여성의 독립적인 목소리를 문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의 시는 짧은 생의 아름다움과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함께 노래합니다.
루이 알튀세르 (Louis Althusser, 1918~1990)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 이데올로기와 국가, 사회구조가 개인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특히 학교와 가족, 종교와 같은 제도가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재생산하는 방식에 관한 논의는 현대 사회과학과 정치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는 생각과 행동이 사회구조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질문하게 합니다. 다만 그의 생애는 중대한 개인적 비극과도 얽혀 있어, 사상적 영향과 개인의 책임을 함께 살펴보게 하는 인물입니다.
[오늘의 한마디]
역사는 지나간 일을 묻어 두는 기술이 아니라, 잘못을 직시하고 되풀이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프랑스가 나치 부역(附逆)의 책임을 묻고 전후 사회의 재건을 모색했듯, 대한민국에도 해방의 기쁨을 정의로 완성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권력의 벽에 가로막혔고, 친일 청산은 미완의 과제로 남았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묻지 않은 사회에서 그 잘못을 되풀이하거나 부정하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쉬운 것은 분명합니다. 친일 청산은 과거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과 국가의 존엄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희생자의 이름을 되찾고, 가해와 협력의 책임을 밝히며, 왜곡에 맞서 진실을 지키는 것. 그것이 해방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적 책무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