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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람인것을 슬퍼하노라”

백년전(百年前) 오늘 신문<23>
글쓴이 : 륜광 날짜 : 2024-04-15 (월) 19:18:13

백년전(百年前) 오늘 신문<23>

일제를 경악케 한 김상옥지사의 거사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나라 잃은 국민은 매일 서러운 일을 겪는다. 그건 종교계도 마찬가지다. 지금으로부터 백년전인 192445일 동아일보에 오직 조선 사람이 된 것을 슬퍼할 뿐이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사연인즉 천도교 기념일을 맞아 준비한 행사를 종로 경찰서의 금지로 못하게 된 것이다. 동아는 경찰 만능의 조선에서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미워하랴. 오직 조선 사람이 된 것을 슬퍼할 뿐이다. 세계 사람이 다 가지는 신교(神敎)의 자유까지 조선 사람은 유린을 당한다...경무국 시달이면 사람을 함부로 때리고 칼질하고 욕하고 해도 관계치 않을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무슨 말을 하랴! 조선인이 된 것을 슬퍼할 뿐이다라고 한탄했다.



의열단원 김상옥 지사

 


48일엔 독립운동가 김상옥 지사 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죽으러 왜 왔더냐’)이 실렸다. 김상옥 지사가 누구인가. 경성 출신인 그이는 철물소를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다 3.1운동이후 의열단원이 되어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및 일본 고관을 암살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등 본격적인 무장투쟁에 나섰다. 일제의 추격으로 1920년 상하이에 망명한 그는 1923년 총독 사이토 마코토 암살을 위해 비밀리에 경성에 들어왔으나 일제가 경계를 강화하자 112일 일제 탄압의 상징인 종로경찰서 폭탄을 투척(投擲) 해 경성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117일 은신처가 발각되자 단신으로 두정의 권총을 들고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종로경찰서 유도 사범이며 형사부장 다무라와 이마세, 우메다 경부를 사살하고 다른 일본 경찰 여러 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도주했다. 이후 닷새를 은거했으나 일본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 기마대와 무장 경관들이 물밀 듯 쳐들어왔다. 김상옥 지사는 수천명의 경찰을 상대로 권총 2자루로 무려 3시간 반 동안이나 총격전을 벌이다가 총알마저 떨어지자 벽에 기댄 채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마지막 1발을 스스로의 머리에 쏘아 자결해 순국(殉國)하였다. 지사가 숨진 현장은 대학로 36-4번지 일대, 향년 34세였다.

 

동아일보 기자는 그해 한식(46)을 맞아 김상옥 지사가 묻혀있는 이문안 공동묘지를 찾아 르뽀 기사를 올렸다.

 

이곳에는 단신으로 수천 경관과 엿새 동안을 싸워 일시 경성 천지를 진동하던 일대의 모험아(冒險兒) 김상옥이가 말없이 누워있는 곳이다. 두어 걸음 더 지나가니 묘표(墓標)도 없는 무덤 하나가 있다. 김상옥의 부인은 이 산소가 그 산소이야요. 소생 남매가 있어서 남에게 고공(雇工)살이를 하여 그것들을 가르치느라고 산소에 올 사이도 없고 묘표도 세우지 못하여 부끄럽습니다.’ 옆에 섰던 김상옥의 모친은 맏아들은 병으로 죽고, 둘째가 상옥인데 너무 작아서 그랬는지 못나서 그랬는지 그 일로만 상성(常性)을 하다가 그만 그 지경이 되었습니다. 죽던 해에도 몇 해 만에 집이라고 와서 제 집에를 들어 앉지도 못하고 거리로만 다니다가 죽었습니다. 밥 한 그릇 국 한 그긋을 못해 먹이고 그렇게 죽은 생각을 하면.....눈물이 쏟아지며 털썩 앉더니 목을 놓아 울며, ‘에그! 왜 왔더냐! 죽으려 왜 왔더냐! 거기 있으면 생이별이나 할 것을.....왜 와서 영이별이 되었느냐!’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사설을 하며 운다. 자식을 비명에 잃은 그 모친이 몇 번이나 여기 와서 - 왔더냐!”를 불렀으랴. 가슴에 맺힌 한을 풀지 못한 김상옥의 혼령은 지금 어디가서 있을꼬. 몸이 포수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일시는 예수교 신자도 되었었고 주야로 쇠망치를 들어서 번 돈과 단련한 팔뚝으로 독립 운동에 참가하여 수만 원의 돈을 그 일에 바치고 나중에는 계해년(癸亥年; 1923) 122일 새벽에 효제동 한 모퉁이에서 빗발 같은 탄환을 받으며 비창(悲愴)한 최후를 이루었다. ! 가슴에 품은 그 뜻은 어디다 두고 이제 공동묘지 한 모퉁이 누었느뇨.”

 

아카이빙 전문매체 근대뉴스(http://www.19c.co.kr/) 가 제공하는 해당 기사들과 번역문을 소개한다.

 

오직 조선 사람이 된 것을 슬퍼할 뿐이다 (1924.04.05.) 동아일보



 

오늘 행하는 천도교 천일 기념에는 그 종교의 주지(主旨)를 삐라로 비행기 위에서 배포하려 하였더니, 종로 경찰서의 금지로 못하게 되었다 한다. 경찰 만능의 조선에서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미워하랴. 오직 조선 사람이 된 것을 슬퍼할 뿐이다. 세계 사람이 다 가지는 신교(神敎)의 자유까지 조선 사람은 유린을 당한다. 이것이 조선 경찰의 독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조선 천지에서 절대 세력을 가진 경무국의 시달이라 한다. 경무국 시달이면 강연도 못하고 종교의 주지 선전도 못하고 수족(手足)도 놀리지 못한다. 이와 반대로 경무국 시달이면 사람을 함부로 때리고 칼질하고 욕하고 해도 관계치 않을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무슨 말을 하랴! 조선인이 무슨 말을 하랴! 조선인이 된 것을 슬퍼할 뿐이다.

 

남자를 기쁘게 하려고 남의 자식을 데려가 (1924.04.05.) 동아일보

나의 첩 노릇하는 계집의 옅은 꾀



 

지난 325일에 시내 봉익동 48번지 이경래(李景來)씨의 장녀 병순(炳順·8)과 병유(炳裕·3) 남매가 어떠한 여자에게 유인되어 간 곳을 모른다 함은 기보(旣報)한 바이어니와, 그간 관할 종로 경찰서 사법계에서는 각 방면으로 조사를 하던 중 의외에 병순이만 집으로 돌아오고 병유는 여전히 간 곳을 몰라 병순의 말을 유일의 단서로 활동을 개시하여, 과연 충청남도 공주군 공주면 본정 188번지 공주여관에 형사가 출장하여 그 여관에 유숙 중이던 황도성(黃道成)의 첩 김어년(金於年·26)이라는 여자를 체포한 후 엄중한 심문을 하여 마침내 감춰 두었던 병유를 찾아 가지고 그제 3일에 경성에 돌아와, 김어년은 즉시 종로 경찰서에 유치되고 병유는 오래 그리던 어버이의 품으로 돌아갔는데, 본시 김어년은 황도성의 첩으로 수년 동안 떠나 있다가 그 남편을 찾아가는 길에 3~4세 된 아이를 데리고 가서 떠나 있을 동안 아들을 낳아서 이만큼 컸다고 속인 후 남편의 사랑과 신임을 받고자 하는 옅은 마음에 병유와 병순 남매를 꾀어다가 병유를 먼저 감춘 후, 병순이 더러는 이미 병유를 먼저 집으로 돌려 보냈으니 쫓아가라고 이른 후 병유만 데리고 그 남편을 찾아가서 시침을 떼고 자기가 낳은 아들같이 데리고 있는 것을 잡아온 것이라더라.

 

죽으러 왜 왔더냐 (1924.04.08.) 동아일보

묘전(墓前)에 통곡하는 김상옥의 모친

한식(寒食)의 애수(哀愁)를 따라서



 

6일 오후에는 먼지 이는 동대문 밖을 걸어 떡전거리; 휘경동에 가서 북쪽으로 꺾여 구불구불한 길을 얼마간 지나가면 이문안 공동묘지가 나선다. 산길을 한참 올라가면 이곳에는 단신으로 수천 경관과 엿새 동안을 싸워 일시 경성 천지를 진동하던 일대의 모험아(冒險兒) 김상옥이가 말없이 누워있는 곳이다.

한식(寒食)이 되었다고 넓으나 넓은 공동묘지에는 사람이 뒤덮여 울고불고 야단들이다. 어버이를 부르는 자식의 울음, 남편을 부르는 소복한 과부의 울음, 이 울음 중에 우리 일행은 무슨 연고로 김상옥의 산소를 찾았는가? 김상옥의 부인의 인도로 수많은 무덤을 지나가는데 문득 누에 띄는 것은 원적 조선 경성 XXX, 주소 상해 법조계(法租界) 애인리라고 쓴 목비(木碑)가 보인다. 이것만 보고 언뜻 기자는 이것이 김상옥의 산소로구나 하고 다시 본 즉, 한편에 김순경지묘(金淳慶之墓)라 썼다. 이것도 역시 김상옥과 같이 상해와 조선 간을 왕래하면서 독립 운동에 열중하다가 고초에 못 견디어 죽으면서 나는 죽어도 혼()은 상해에 가서 일할 터이니, 묘목에 주소를 상해(上海)로 써 달라고 하였다 한다. 두어 걸음 더 지나가니 묘표(墓標)도 없는 무덤 하나가 있다. 김상옥의 부인은 이 산소가 그 산소이야요. 소생 남매가 있어서 남에게 고공(雇工)살이를 하여 그것들을 가르치느라고 산소에 올 사이도 없고 묘표도 세우지 못하여 부끄럽습니다.” 옆에 섰던 김상옥의 모친은 삼형제 아들이 이제는 독신이 되었습니다. 맏아들은 병으로 죽고, 둘째가 상옥인데 너무 작아서 그랬는지 못나서 그랬는지 그 일로만 상성(常性)을 하다가 그만 그 지경이 되었습니다. 죽던 해에도 몇 해 만에 집이라고 와서 제 집에를 들어 앉지도 못하고 거리로만 다니다가 죽었습니다. 밥 한 그릇 국 한 그긋을 못해 먹이고 그렇게 죽은 생각을 하면.....”




눈물이 쏟아지며 털썩 앉더니 목을 놓아 울며, “에그! 왜 왔더냐! 죽으려 왜 왔더냐! 거기 있으면 생이별이나 할 것을.....왜 와서 영이별이 되었느냐!”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사설을 하며 운다. 자식을 비명에 잃은 그 모친이 몇 번이나 여기 와서 - 왔더냐!”를 불렀으랴. 가슴에 맺힌 한을 풀지 못한 김상옥의 혼령은 지금 어디가서 있을꼬. 몸이 포수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일시는 예수교 신자도 되었었고 주야로 쇠망치를 들어서 번 돈과 단련한 팔뚝으로 독립 운동에 참가하여 수만 원의 돈을 그 일에 바치고 나중에는 계해년(癸亥年; 1923) 122일 새벽에 효제동 한 모퉁이에서 빗발 같은 탄환을 받으며 비창(悲愴)한 최후를 이루었다. ! 가슴에 품은 그 뜻은 어디다 두고 이제 공동묘지 한 모퉁이 누었느뇨.

 

150만 평 산림(山林)을 일본인에게 무상 양여(讓與) (1924.04.10.) 동아일보

핑계 있을 때마다 한 가지씩이라도


 


국유지 국유림 등을 민간에 대부한다는 명목 아래에서 광대한 토지와 임야가 잠식 이상의 상태로 일본인의 장중(掌中)에 들어가는 현상임은 원래 다시금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에 있던 147만여 평의 국유 임야도 조림(造林)을 목적한다는 표방 아래에서 지난 1924년에 일본인 경영인 미쓰비시(三井)합명회사에 대부하였던 바, 최근에 이르러 이미 사업도 완성하고 성적도 극히 양호하다 하여 소위 임야령 제7조에 의하여 임야 전부를 무상으로 위 회사에 양여하여 위 국유 임야가 완전무결하게 일본인 경영인 일개 회사의 소유가 되고 말았다 한다.

 

인단(仁丹) (1924.04.09.) 조선일보



 

()를 천()히 하는 것은 자기를 천히 함이로다 (서반아 이언(俚諺; 속담))

여행에 인단을 가지면 의사를 가진 것과 같아요!!

()가 좋지 못할 때, 급병(急病)

직구(直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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