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전문필진 l 사진필진 l 열린기자 l Kor-Eng    
 
꼬리뉴스
·꼬리뉴스 (7639)
·뉴스로 창(窓) (273)
실시간 댓글
꼬리뉴스
육하원칙(六何原則)?역(逆)피라미드 형식의 스트레이트 뉴스? 정형화, 제도화된 뉴스만 뉴스가 아니다. 뉴스뒤의 뉴스, 뉴스속의 뉴스를 읽자. 뉴스로에선 "꼬리뉴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선에서 취재한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뒷 이야기, 기감 없는 에피소드, 촌철살인의 한마디까지, 뉴스로 독자들은 정규뉴스 바로 뒤에 물리는 꼬리뉴스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틀에 박힌 뉴스는 거부합니다. 오직 뉴스로만이 가능한 꼬리뉴스에서 뉴스의 새로운 멋과 맛을 느끼십시오.

총 게시물 7,639건, 최근 1 건 안내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한-러 커플 순애보’ 김원일 모스크바한인회장-나탈리야 김 교수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1-11-27 (일) 08:04:41

국제화시대 다문화가정은 이제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아릿다운 엘리트 처녀과 한국인 노총각이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 5년만에 아이를 넷이나 낳고 알콩달콩 산다면 절로 눈길이 가진다.

화제의 커플은 김원일 모스크바한인회장(45)과 김 나탈리야 니콜라예브나 씨(32). 김원일 회장은 모스크바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사업가이자 ‘모스크바 뉴스’와 ‘모스크바 프레스’ 등 두 개의 한인미디어를 경영하는 언론인이기도 하다. 김 회장이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와의 인터뷰에서 이국만리에서 반려(伴侶)를 맞은 특별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가 열세살 아래의 나탈리야 씨를 처음 만난 것은 명문 모스크바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기 시작한 2001년이었다. 국민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외국계신용카드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부친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사업을 물려받았다. IMF이후 새로운 사업과 인생방향을 모색하던중 당시 모스크바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동생 김은희 교수(41)의 권유로 모스크바에 오게 됐다.

 

98년 2월 동업제안을 받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코로스톤 호텔의 한개층을 임대해 호텔사업(코로스톤 플라자)을 시작했다. 그러나 러시아어를 몰라 어려움이 많던 차에 공부를 하기로 결심, 2년동안 호텔경영을 접고 모스크바대학에서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2003년에 <현대 한국과 러시아의 경제협력>이란 주제로 학위를 받은 그는 내친김에 학업과 사업을 병행, 6년만인 2009년에 <20세기중반-21세기초 한반도 정치군사적 위기상황에서의 조정자로서의 러시아의 역할>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인 직원을 두고 한국식으로 운영한 코로스톤 플라자호텔이 번창하면서 2003년부터는 인근 스푸트닉호텔의 한층을 더 인수해서 스푸트닉 플라자(www.rusplaza.ru)를 운영하고 있다. 모스크바에 출장간 한국인들은 적어도 한번은 김 회장의 호텔에 투숙한 경험이 있을만큼 플라자 호텔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가 천생배필(天生配匹)의 인연을 만난 모스크바 대학의 기숙사는 대부분의 서구대학이 그러하듯 남학생방 여학생방이 뒤섞여 있었다.

처음 기숙사 생활을 시작할 때 아름다운 러시아 여학생들이 복도를 잠옷차림이나 가운만 걸친채 거침없이 복도를 누벼 조금은 문화충격을 받았어요. 한 기숙사에서 러시아친구들은 물론 세계각지에서 온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된 것은 저의 인적 자산이 되었지요. 그중 한명이 지금 제 아내랍니다.”

  

싱그러운 이미지의 나탈리야 씨를 그가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여학생들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접한 덕분이었다. 러시아 여학생중 방 청소를 매일같이 쓸고 닦고 하는 것은 열명중 한명꼴인데 나탈리야 씨가 바로 그랬단다. 그는 “아내는 매일 방을 깨끗이 치우는 타입이라서 이 여자와 살면 최소한 집안은 깨끗하게 유지하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결혼 결심은 쉽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구애(求愛)를 한 것은 나탈리야 씨였다. 김 회장의 사려깊고 친절함에 반한 나탈리야 씨가 먼저 청혼을 했지만 생각지 않았던 국제결혼에 답변을 미루고 고민을 할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나탈리야 씨는 결혼을 안해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겁을 주었단다.

“사실 집에서 반대를 했어요. 동생도 러시아 유학을 통해 국제결혼의 어려움을 알고 있어서 반대가 심했구요. 그래서 아내가 노력했지요. 아내와 본격적으로 사귀면서 ‘나는 한국말을 구사하고 한국음식을 준비해서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을 아내로 맞고 싶다’고 했더니 열심히 한국말과 음식을 공부하더라구요. 반대하던 어머니가 모스크바에 와서 며느리감을 보는데 외국아가씨가 떠듬떠듬 한국말로 당신아들을 사랑합니다. 결혼하고 싶어요, 하면서 불쌍한(?) 표정을 지으니 마음이 돌아서시더군요. 아내에게 만일 어머니가 계속 반대하시면 결혼은 못하니 어머니께 잘 보여야 한다고 협박(?)을 해 두었거든요.”

 

사랑을 얻기 위해 시작한 한국어였지만 그것이 나탈리야 씨의 인생행로에 중대한 분수령(分水嶺)이 되었다. 명문 모스크바 대학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나탈리야 씨는 한국어를 배운 김에 김 회장의 조언에 따라 박사과정을 한국사로 전공을 바꿨다. 러시아 외무성산하 외교아카데미에서 <1945-1948년 남한 사회지형과 정치투쟁>을 주제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2009년에 받았다.

제가 보기에 아내가 공부에 자질이 있었고, 소련이 무너진 후 젊은 사람들이 학계에 남지 않으려는 경향이 많이 있었어요. 당시에 학자들에 대한 대우가 아주 좋지 못했는데 모스크바대학의 정교수 월급이 불과 2~3백 달러 하던 시절이었거든요. 게다가 한국학은 그리 인기있는 학문이 아니어서 젊은 한국학 학자가 귀한 때였지요. 그래서 아내에게 한국학을 공부하도록 조언했습니다.”

한국과 러시아가 불가분, 관계가 가까워질 수 밖에 없고 러시아에 좋은 한국학자가 많이 필요한 때가 오리라는 김 회장의 믿음은 적중했다. 현재 나탈리야 씨는 러시아 외무성산하 동방학연구소 한국과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그리고 러시아국립경제대학교 동양학부에서 한국과 부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모국어인 러시아어와 한국어는 물론,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5개국어를 구사하며 학계의 젊은 한국전문가로 손꼽히고 있다.

러시아국립경제대학은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대학보다도 더 수준 높은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립경제대학은 지난 9월 서울대와 교류협력서를 체결한 가운데 서울대 교수들이 온라인 화상강의를 진행 하고 있다.

 

한국어는 부국어(父國語) 러시아어는 모국어(母國語)

김 회장은 요즘 보기 드문 간 큰(?) 남자이다. 결혼에 앞서 나탈리야씨에게 몇가지 다짐을 해두었기때문이다. ‘아이는 5명을 낳아줄 것’, ‘태어날 아이들은 어쩔 수 없는 태생적 이중국적 상태이지만 한국유치원과 한국학교를 보낼 것’, ‘식사는 한국식으로 준비할 것’, ‘한국어머니에게는 적어도 일주일에 두번 이상 전화드릴 것’, ‘시댁식구를 항상 존중하고 시어머니말씀은 절대 복종할 것’ 등이다.

그는 “아이를 다섯명 낳아달라고 한 것은 혼혈아로 자랄 아이들이 외로움을 갖지 않도록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이심전심이었는지 아내가 결혼 5년만에 네명을 낳더라구요”하고 웃었다.

 

위로 딸 셋과 아들 하나인 아이들은 모두 한국이름으로 불린다. 러시아 호적에도 한국이름으로 올려 놓았다. 이름은 김회장이 직접 지었다. 다중적 의미를 부여한 아이들의 이름은 성명학자를 방불케할만큼 공 들인 표시가 난다.

   

첫째가 김 연(8세), 연꽃 연(蓮)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라는 의미다. 둘째 서이(7세)는 서울의 ‘서’와 아내의 고향 이젭스크의 ‘이’를 조합한 이름이다. 또한 김회장의 인생관인 ‘천천히 가는것이 이롭다’는 뜻에서 천천히 서(徐) 이로울 이(利)라는 한자이름도 두었다.

 

세째 래아(6세)는 미래의 아가씨라는 뜻이다. “일곱달만에 제왕절개로 태어나서 죽을 뻔하다가 살아 돌아온 아이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공상과학영화 ‘스타워즈’의 공주 레아를 우리식으로 이른 것이구요. 딸을 연달아 세명을 낳으니 셋째딸이 혹시 이름을 잘 지어주지 않으면 오해를 살까봐 일부러 공주이름에 우리의 미래라는 뜻을 주었답니다.”

  

막내 세인(4세)은 한국계러시아인이 아닌 ‘세계인’으로 살아가라는 김회장 나름의 염원과 함께 단군신화의 환웅이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가지고 이 세상으로 내려왔다는 의미를 담았다. 김 회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3이란 숫자는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아이와 함께 제 인생과 모스크바에서의 삶이 한번의 완성과 새로운 시작이 준비되기를 하는 바램도 담았다”고 전했다.

 

아이들의 교육은 다행히 모스크바에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한국유치원과 한국초등학교가 있어서 보내고 있다. 덕분에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편이다. 최근엔 여름방학마다 아내와 아이들을 한국에서 체류해 언어와 문화습득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는 국적불명의 한국인이 아닌 세계화된 한국인으로 키우자”는 원칙을 세웠다. “러시아라는 환경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하도록 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가끔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어는 부국어(父國語) 러시아어는 모국어(母國語), 우리 아이들은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러시아인이므로 부모국어 즉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구요.”

 

아이들은 한국음식을 잘 먹는다. 그럴수밖에 없는게 집에선 한국식으로만 먹기 때문이다. 특히 깍두기와 깻잎을 좋아한단다. 위로 세 아이는 젓가락질도 잘 한다. 아내가 한국음식을 특히 잘하게 된 것은 시어머니가 몇 년동안 여름에 모스크바에 와서 한국음식 현지지도(?)를 한 이유가 크다.

 

김 회장은 “아내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도중에 자기 몸매가 유지되는 이유가 한국음식을 먹기때문이라고 해서 한참 웃기도 했다”고 말했다. 자녀를 당초 계획대로 다섯명까지 낳을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아이고, 이제 그만 낳아야죠. 아내가 너무 고생이 많아요”하고 손을 저었다.

어찌하다보니 김회장의 집안엔 모스크바대학 출신 박사가 세 명이나 된다. 김회장은 정치학박사, 아내는 역사학박사, 동생은 문학박사다. 동생 김은희 박사는 모스크바대학에서 솔제니친을 주제로 문학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한국외국어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 중 잘 알려진 책은 <러시아명화 속 문학을 말하다>가 있고 모스크바 뉴스 사이트에 ‘김 은희교수의 러시아 미술이야기’가 연재되고 있다.

김 회장은 “돌이켜 보면 나이를 잊고 함께 공부하며 어울렸던 러시아친구들, 제 아내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이 저와 10년이상 나이 차이가 난 친구들이 십년지기(十年知己)가 되었고 러시아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한 지금은 제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며 1세대 사업가이자 언론인으로 한국과 러시아의 가교역할에 힘쓸 것을 다짐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호텔사업가와 언론인, 한인회장 일인삼사역 거뜬

모스크바에 한국인은 약 5천명 정도로 추산된다. 고려인(재러동포)의 경우 5천명에서 2만명으로 보고 있다. 모스크바의 한인타운역할을 하는 장소는 코로스톤 호텔을 들 수 있다. 이 호텔안에는 각종 한국회사들과 한식당을 비롯한 유흥시설이 위치해 있다.

김원일 회장이 운영하는 호텔(www.rusplaza.ru)도 코로스톤 호텔에 있다. 모스크바 외에 한국인들이 많은 도시는 페테르부르그로 약 1천명 정도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사회와 고려인사회는 많은 고려인들이 한국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등 나름대로 원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에는 한국가전제품(삼성 엘지 대우)이 거의 모든 가정에 비치되어 있고 거리에는 한국자동차가 10대중 한두대가 다니고 상품점에는 한국 쵸코파이와 도시락라면 등 먹거리가 잘 팔리고 있다.

한국관련기업이나 기관에서 일하는 러시아인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무척 좋다. 아직 대중적인 이미지는 미미하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이 요즘은 눈에 띄게 보인다.

예를 들어 모스크바에 있는 대학들의 한국관련 강좌에 수강생이 늘고 있고 모스크바내에 한국어 강좌를 수강할 수 있는 한국문화원이나 각종교회의 한국어센터 그리고 유서깊은 원광학교(원불교 운영)에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 김 회장은 “한국어를 알면 모스크바에 있는 많은 한국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취업이 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회장은 지난 6월 모스크바 한인회 6대 회장에 당선, 한인사회의 새로운 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 2001년 결성된 모스크바 한인회는 10년만에 처음 경선으로 치러져 한인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모스크바한인들을 위해서 기여할 바가 있다고 생각되어 출마하게 되었다”는 그는 한인회의 러시아 법인등록을 추진하는 한편, 교육 문화사업을 중심으로 한인회 사업을 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박상일 수석부회장을 비롯해 하종혁·이은선 부회장, 박상일 하종혁 이은선 강태식 부진현 이진희 국정호 손정락 정지수 심재상 이주섭 오성휘 이재성 이수현 이사 등 한인회 임원진을 구성했고 독자적인 사무실도 오픈했다.

 

오픈식에는 모스크바총영사를 비롯한 법무관, 외사관, 교육관, 국제교류재단 모스크바소장, 고려인연합회 부회장, 고려인신문편집장, 러시아쪽에서는 모스크바대학 한국학센터소장, 러시아외무성산하 동방학연구소 한국과과장, 외무성산하극동연구소 연구원 등 명망있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모스크바한인회는 한국문화원(원장 양민종)의 협조아래 내년 3월 문화원내 ‘문화센터’를 오픈할 예정이다. 또한 한인들의 원격교육을 위해 원광디지탈대학교와 협정서를 교환하는 한편 한국방송통신대학과도 협력관계를 논의중이다. 다음달 10일 한국대사관에서 성대한 ‘모스크바한인축제한마당’을 연다는 김 회장은 “모스크바한인회가 이제는 세계 강국중에 하나인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걸맞는 존재감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모스크바에는 현재 3개의 한인신문(겨레일보 우리신문 매일신보)이 있는데 이들 신문들은 한국의 소식을 주로 인터넷에서 취합해서 전하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3월 웹진 모스크바 뉴스(www.moskvanews.co.kr)를, 6월에는 월간지 모스크바 프레스를 잇따라 창간했다. 러시아와 한국의 소통(疏通)의 장을 열어보고 싶다는 의욕 때문이었다.

사실 러시아는 한국에게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무척 중요한 국가다. 정치적으로는 한국을 둘러싼 4대 강국중 하나이며 경제적으로는 한국의 50대 대기업이 모두 진출했고 현대 삼성 엘지전자 오리온 롯데 한국야쿠르트 등 수많은 기업들이 러시아에 현지 공장을 설립해서 상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코트라는 올해 대러시아 수출규모를 200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아직 많은 한국인에게 공산주의와 스킨헤드, 추위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刻印)되어 있다. “여기에는 본국 언론사의 책임도 어느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에는 구소련지역을 포함해도 KBS와 연합뉴스 단 두개의 언론사만이 특파원이 파견되어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느끼는 나부터 뭔가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구체화 된 것이 모스크바 뉴스와 모스크바 프레스의 창간으로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에 대해 편향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고 싶고 러시아인들의 사는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싶습니다.”

김원일 회장은 “러시아는 저도 공부를 했고 아내가 또 대학에 있어서 나름 러시아의 한국학자와 한국관련 정책결정자들과 이런 저런 인연이 닿아 있다”면서 “러시아의 한국관련 정책 등에 대해 깊이 있는 기사들을 준비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욕심도 있고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많은 한국인과 한국기업의 활약상도 적극적으로 취재해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지난 10월 3일~7일 한국기자협회와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 주최로 열린 ‘평창올림픽과 재외동포언론인의 역할’ 심포지엄에 참가했다. 전 세계에서 25명의 언론인이 초청된 이 심포지엄에 나선 6명 주제발표자 가운데 <러시아 소치올림픽 준비와 현황>으로 발표를 했다.

 

“재외 동포언론인으로서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는 그는 미디어를 통해 바람직스러운 한러관계와 모스크바한인사회에서 언론의 본령을 제대로 수행하겠다고 싶다는 속내를 비쳤다.

‘세계화된 한국인’의 훈육관(訓育觀)을 가진 다문화가정의 가장이자, 호텔사업가와 온오프라인 매체 발행인, 한인회장에 이르기까지 일인사역을 마다않는 김원일 회장의 정력적인 활동이 어떤 결실을 낳을지 자못 기대가 모아진다.


한동신 2011-11-27 (일) 12:13:16
너무 멋진 뉴스-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겠습니다.
인터넷세상에 사는 기쁨이란 바로  이런 참 맛이로군요!!!!!!!!!!!
댓글주소
한동신 2011-11-28 (월) 09:44:56
김원일회장님, 다음엔 미국, 특히 뉴욕에서 모스크바에 여행을 갈 때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있는 방법에 대해 써주세요. 단체여행기회도 알려주세요. 저는 허메타지뮤지엄등 두어군데 꼭 가볼 곳이 있습니다.
댓글주소
김원일 2011-12-04 (일) 00:59:00
반갑습니다. 한동신선생님
뉴스로를 통해서 이렇게 선생님과도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군요. 한인회장으로서 또 언론인으로서 저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합니다. 노창현선생님 그리고 한동신선생님의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댓글주소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발행인 : 洪性仁 l편집인 : 盧昌賢 l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2010.08.31.) l창간일 : 2010.06.05. l한국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 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USA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