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속으로>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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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기뻐서 기억해야 할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할 날도 있습니다. 1910년 8월 29일은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 빼앗긴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날입니다. 일본은 이미 외교권을 빼앗고 군사·행정권을 장악한 뒤 대한제국을 병탄하는 수순을 밟았고, 8월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사이에 이른바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됐습니다. 그리고 8월 29일 조약이 공포되면서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轉落)했습니다. 그러나 8월 29일은 나라를 잃은 날인 동시에 독립을 향한 저항이 시작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역사 속의 주요 장면>
1910년 — 경술국치,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기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을 공포했습니다. 조약은 대한제국 황제가 통치권을 일본 천황에게 넘긴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당시 일본의 강압 속에서 체결된 것이었습니다. 이날부터 한반도는 35년에 걸친 일제 식민지 지배에 들어갔습니다. 나라를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곳곳에서 통곡이 이어졌습니다. 금산군수 홍범식은 이날 비통한 심정으로 목숨을 끊었고, 이후 의병투쟁과 해외 망명,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저항의 물결이 더욱 거세졌습니다.
1942년 — 국치일에 로스앤젤레스 시청에 태극기가 펄럭이다
1942년 8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청에 태극기가 게양됐습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국치일을 맞아 한국인의 자주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추진한 행사였습니다. 한인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청까지 행진했고, 오후 3시 태극기가 시청 깃대에 올랐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지 32년 만에 외국의 관청에서 태극기가 공식적으로 게양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국치일을 단순한 치욕의 날이 아니라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리는 날로 바꿔놓은 해외동포들의 항일운동이었습니다.
1831년 — 패러데이, 전자기 유도를 발견하다
1831년 8월 29일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현상을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변화하는 자기장이 전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발견은 훗날 발전기와 변압기 등 현대 전기기술의 토대가 됐습니다. 한 나라의 운명이 격변하던 날, 다른 한편에서는 인류의 미래를 바꿀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1949년 — 소련, 첫 원자폭탄 실험
1949년 8월 29일 소련이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에서 첫 원자폭탄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미국에 이어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냉전시대의 핵무기 경쟁이 본격화됐습니다. 이날은 훗날 유엔이 ‘핵실험 반대의 날’을 정한 역사적 배경이기도 합니다.
2005년 — 허리케인 카트리나, 미국 남부를 강타하다
2005년 8월 29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루이지애나주와 미시시피주 일대를 강타했습니다. 뉴올리언스의 제방이 무너지면서 도시 대부분이 물에 잠겼고, 수많은 인명 피해와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자연재해의 위력뿐 아니라 재난 대응과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문제까지 드러낸 비극이었습니다.
<오늘의 탄생 인물>
김구(金九, 1876~1949)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중심 지도자입니다.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한인애국단을 이끌어 이봉창·윤봉길 의거를 지원하고 광복군 창설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해방 후에는 남북 분단을 막고 통일된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했습니다. 그가 1948년 남긴 <삼천만동포에 읍고(泣告)함>은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진정한 애국의 부르짖음입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한용운(韓龍雲, 1879~1944)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입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으며, 옥중에서도 조선의 독립이 정당함을 주장했습니다. 『님의 침묵』을 비롯한 작품을 통해 문학으로도 식민지 시대의 저항정신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습니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 1920~1955)
1920년 8월 29일 태어난 미국의 재즈 색소폰 연주자이자 작곡가입니다. ‘버드(Bird)’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디지 길레스피 등과 함께 비밥(Bebop)의 탄생을 이끌어 현대 재즈의 방향을 바꾼 혁신적인 음악가로 평가받습니다.
<오늘의 타계 인물>
홍범식(洪範植, 1871~1910)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관료이자 애국지사입니다. 당시 금산군수였던 그는 나라를 빼앗긴 현실에 굴복할 수 없다며 유서를 남기고 순절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망국의 치욕 앞에서 목숨으로 항거한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으며, 아들 홍명희는 훗날 소설 『임꺽정』을 남겼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먼(Ingrid Bergman, 1915~1982)
1982년 8월 29일 세상을 떠난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배우입니다. 『카사블랑카』와 『가스등』, 『가을 소나타』 등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쳤으며 세 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공교롭게 그녀는 자신의 67번째 생일에 타계했습니다.
에이먼 데 벌레라(Éamon de Valera, 1882~1975)
1975년 8월 29일 세상을 떠난 아일랜드의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핵심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총리와 대통령을 지내며 독립국가 아일랜드의 정치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오늘의 한마디>
“치욕(恥辱)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다시는 주권과 자유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8월 29일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픈 날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국치일을 단순히 ‘나라를 빼앗긴 날’로만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를 잃은 그날 홍범식은 목숨으로 항거했고, 수많은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은 총을 들고 산과 들로 나섰습니다. 김구와 한용운은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리고 32년 뒤인 1942년 8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해외동포들이 국치일에 태극기를 높이 올렸습니다. 빼앗긴 나라의 국기를 다른 나라의 한복판에서 다시 펄럭이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8월 29일은 치욕과 동시에 저항의 날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패배가 아니라, 패배 속에서도 독립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의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주권이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국치일을 오늘 다시 되새기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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