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냐의 '더치맨'이 미소 짓고 있다. 바로 요한 크루이프(63)다. 비틀즈가 데뷔하기전 축구스타로 등장해 공격축구의 대명사로 꼽히며 짧은 패스와 지그재그 대시로 수많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줬지만 월드컵은 한번도 품에 안지 못한 비운의 스타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침내 2010 남아공월드컵을 통해 바야흐로 크루이프의 축구가 찬란한 빛을 발할 전망이다. 그는 지난 40여년간 두 나라 대표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70년대 네덜란드의 선수로, 88년이후엔 스페인 대표팀의 지도자로. 그는 88년 FC바르셀로나의 감독이 된 후 ‘토털 사커’라는 자신의 축구스타일을 스페인리그와 대표팀에 이식시켰다.
월스트릿저널(WSJ)은 8일 D섹션 7면 톱기사로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월드컵 결승이 크루이프 스타일을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목했다. 지난 20년간 유럽에서는 수비축구가 대세였다. 그러나 11일 어느 팀이 우승하건 크루이프로 상징되는 공격축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계기가 될 것이다.
80년대 네덜란드의 축구스타 루드 굴리트는 “우리는 이제 공격축구의 승리를 보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실 스페인이야말로 크루이프 스타일의 공격축구의 맥을 잇는 팀이다.
준결승에서 스페인에 패퇴한 독일의 조야킴 뢰브 감독은 “스페인 선수들은 게임을 지배했다. 패스하나하나에서 (크루이프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정작 네덜란드의 오렌지 군단의 그들의 ‘전설’에 대해 덜 충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볼 점유에 집중하면서 빠른 패스를 하는 팀이다. 자유분방함보다는 좀더 짜임새있는 조직력으로 매섭게 몰아붙이는 크루이프의 규범과는 거리가 있다.
네덜란드가 결승에 오른 것은 78년 아르헨티나대회이후 처음이다. 지난 30여년간 네덜란드는 축구의 자연스러운 질서에 조응하는 축구를 펼쳐왔다. 크루이프로 말해지는 그들 방식대로 게임을 한 순수주의 축구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축구예술이 월드컵에서 번번히 좌절되는 쓰라린 경험을 했지만 늘 찬사를 받았다. 그들의 축구가 우월함에도 성공을 위해 스타일을 희생한 팀들에 무너진 것이다.
네덜란드의 베르트 반 마윅 감독은 크루이프를 ‘최고의 축구선수’로 호칭하며 “우리가 아름다운 축구로 승리한다면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2년전 대표팀 감독이 됐을 때 추한 경기를 극복해야만 한다고 말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은 빈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팀의 성공에 크루이프 스타일이 가미된 것을 인정치 않는다 해도 크루이프의 진짜 축구를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 그는 “우리 축구가 네덜란드 스타일로 비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미드필드의 중요성에 기반을 둔 축구를 한다. 우리는 축구를 쉽게 만드는 훌륭한 선수들과 좋은 지휘체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주요 미드필더 트리오인 사비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 모두가 바르셀로나 소속이며 바르셀로나는 70년대 네덜란드 축구의 맥을 잇는 팀이다. 그들의 특별한 자각, 사고의 속도, 간결한 패싱은 스페인 축구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바르셀로나 감독은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를 지휘하던 시절 주장으로 활약한 펩 과디올라로 그의 선수 6명이 독일과의 준결승에 출장했다.
거리가 500마일 떨어진 네덜란드와 스페인은 반세대 동안 유럽 최고의 팀들로 자리했고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 만난건 이번이 처음이다. 1920년이후 두 팀간의 대결은 4승1무4패로 균형을 이루고 있고 가장 최근 대결은 2002년 네덜란드가 1-0으로 승리했다.
네덜란드는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6전 전승을 기록했다. 1958년이후 조별 3경기 시스템이 도입된 이래 예선서 3전전승을 거둔 세팀이 결승에 올라왔을 때 모두 우승한 전력이 네덜란드의 처녀 우승꿈을 부풀리고 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 사랑
크루이프는 8일 스페인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스페인의 우승을 점쳤다. 모국 네덜란드의 우승 못지않게 스페인, 특히 카탈루냐 지방의 대명사 바르셀로나에서 선수생활 후반기와 감독으로서 성공인생을 거둔 것이 특별한 애정이 그에게 있을 것이다.
아들 이름도 카탈루냐어인 요르디라고 지을만큼 그의 바로셀로나 사랑은 지극하다. 요르디역시 후에 네덜란드 국가대표를 지냈다.
크루이프는 1974년 독일대회와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잇따라 결승에 올랐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쳐 무관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스페인 프리메라라리가 4연패를 달성하며 성공적인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아다시피 스페인의 양대 축구 라이벌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다. 마드리드는 에스파냐와 카탈루냐가 현재의 스페인으로 합쳐지기 전 에스파냐의 대표적인 도시로 바르셀로나와는 오랜 앙숙이기도 하다.
사실 카탈루냐는 통합전 아라곤 왕국이라는 독립국이었고 에스파냐와 문화와 언어도 조금씩 상이하다. 프랑코 총통의 철권통치 때 핍박을 많이 받아 지금도 독립을 꿈꾸고 축구를 통해 격렬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