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정희가 뉴욕타임스 아트섹션 톱을 장식(裝飾)했다. 뉴욕타임스는 11일 아트섹션 톱으로 윤정희가 출연한 영화 ‘시’를 집중소개하는 등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시’는 이창동 감독의 5번째 영화로 11일부터 맨해튼에서 개봉한다. 홀로 남겨진 손자와 함께 힘겹게 생활하지만 소녀와 같은 순수함을 간직한 ‘미자(윤정희)’가 어린 시절부터 꿈꾼 시 쓰기에 도전하던 중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 이야기다.
뉴욕타임스는 영화의 줄거리를 상세히 소개하면서 “이 미묘하고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영화에서 복잡한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하는 윤정희의 연기는 관객들을 흡인(吸引)한다. 이창동 감독의 아무런 장식이 없는 비주얼한 영상스타일은 전작 ‘밀양’에서보다 더 많은 관객의 주의를 끌어들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영화속에 등장하는 낡은 방과 보통의 거리풍경은 서서히 전개되는 내러티브 방식보다 좀더 사실적인 서술이 되고 있다. 평범한 세상의 따분한 풍경들이 여학생의 죽음에 관계된 모든 이들의 충격과 확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타임스는 극중 미자가 문학교실에서 시를 가르치는 강사와의 대화를 통해 시는 작가의 치열한 자기탐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제시한다. “시인의 상상력은 어떻게 오는건가요?” “그건 오는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제가 어디를 가야하죠?” “그건 당신이 서있는 그곳에 있지요.”
신문은 “사실 시는 어디에나 있다. 미자가 파트타임으로 돌보는 불구 노인(김희라)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인생을 통해 지내온 모든 것이 바로 시”라는 것이다.
타임스는 “미자가 묻지 않은 질문은 그것이 왜 예술이냐는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상상의 교감(交感)을 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 질문에 아름답게 답하고 있다”는 찬사로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다.
뉴욕=민병옥특파원 bomin@newsroh.com
<꼬리뉴스>
시인할머니의 절망으로부터의 탈출,,‘시’ 줄거리
양미자는 고등학생 외손자 종욱과 같이 살고 있는 60대 중반의 여성이다. 나라의 보조금을 받아 생활할만큼 경제적으로 쪼들린 그녀는 중풍이 걸린 강 노인의 수발을 들어주는 것이 수입의 전부이다.
미자는 근처 문화센터에서 시창작 교실 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강사인 시인 김용탁은 시를 쓰는 것은 사물을 제대로 보는 것이라면서, 수강자들에게 마지막 수업 날까지 시를 한 편씩 써오라고 한다. 부산에 있는 딸은 전화로 미자에게 ‘꽃을 좋아하고, 엉뚱한 소리를 잘 하기 때문에’ 미자가 시인 같다고 말한다. 미자는 작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적어두기 시작한다.
어느 날, 미자는 손자 종욱이 친구 5명과 함께 같은 학교 여학생 성폭행에 가담했으며, 그 여중생이 강에 투신자살한 것을 알게 된다. 친구 다섯 명의 아버지들은 이 사건이 자신들과 선생 몇 명밖에 모르는 일이므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피해자의 홀어머니와 합의하고 이 사실을 묻자고 회의를 하지만, 500만원씩을 부담해야 한다는 말에 미자는 딴청을 피운다.
미자는 피해자 희진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외손자 종욱을 다그치지만, 종욱은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고 무시한다. 급기야 스스로 몸도 씻지 못하는 강 노인이 미자에게 성관계를 요구하자, 화가 난 미자는 일을 그만둔다.
미자는 큰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학부모들이 미자에게 희진 엄마와 합의를 보라고 떠맡겨지지만, 정작 만나선 그런 얘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농사에 관한 잡담만 하다가, 나중에 그것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두려워한다.
미자는 기범의 아버지에게 합의금 500만원을 빌려보려고 하지만 거절당한다. 절망한 미자는 비를 맞은 채 강 노인의 집으로 가서 관계를 가진다.
학부모들은 합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모인다. 돈을 아직 준비하지 못한 미자는 희진 엄마의 얼굴과 다시 마주치자 자리에서 바로 나가서, 강 노인의 집에 들어가 그들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500만원을 달라고 부탁한다. 500만원을 기범 아버지에게 건네면서, 미자는 신고를 하지 않으면 가해자 학생들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는다.
미자는 종욱에게 비싼 음식을 사주고, 다음 날에 엄마가 오니까 용모를 단정히 해야 한다며 몸을 씻게 하고 손발톱을 깎아준다. 그날 밤 둘이 밖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 경찰이 찾아와 종욱을 데려가고, 대신 시 낭송회에서 안면이 있는 다른 경찰이 미자의 배드민턴 상대가 되어 준다.
다음 날, 시 강좌 마지막 시간에 미자는 꽃다발과 시 한 편을 남겨놓고 사라진다. 시의 제목은 자살한 희진의 세례명을 딴 ‘아녜스의 노래’이고, 처음엔 미자의 목소리로, 그 뒤로는 희진의 목소리로 낭송이 된다. 희진이 강에 몸을 던지기 전 강물을 내려다보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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