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百年前) 오늘 신문<44>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은 세종대왕 탄신일이다. 한글을 창제하여 온 백성에 가르침을 준 것처럼 스승을 기리는 뜻에서 1965년 지정하게 되었다. 본래 스승의 날은 1958년 충남 논산의 강경여자고등학교에서 청소년적십자(RCY) 단원들이 세계 적십자의 날(5월 8일)을 맞아 병중에 있거나 퇴직한 스승을 찾아간 것이 시초였다. 그러나 이 날이 어머니날(후에 어버이날)과 겹쳐서 1963년부터 5월 24일을 은사의 날로 지정 사은행사를 했다. 이듬해는 다시 5월 26일로 바꾸고 이름도 스승의 날로 조정했다. 1965년부터 각급 학교와 교직단체가 주관이 되어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하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스승을 극진히 모시는 것은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예절이다. ‘기러기처럼 함부로 앞에 나서지 않고 감히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안행피영(雁行避影)이라는 사자성어도 있지 않은가.
한세기전인 1924년 5월 19일 매일신보에 깜짝 놀랄 소식이 보도되었다. 용산(龍山)중학교의 모 교사가 수학여행을 가던 중 학생들에게 몽둥이로 맞았다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이 선생에게 몽둥이 찜질을 했으니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정신이 남아 있는 당시에 벌집 쑤신 듯 난리가 날 사건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론은 학생들 편이었다. 알고본즉, 술에 취한 교사가 차에 있던 여성을 희롱하다 학생들이 만류하자 이들을 때리다가 응징을 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신문은 “학생들이 그 교사에게 ‘수백 제자를 거느린 선생님이 더구나 제자가 보는 앞에서 이같은 아름답지 못한 짓을 함은 체면에 관계되는 일이니 그렇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교사는 생도가 건방지게 교사의 일에 간섭한다며 2~3명을 때렸고, 분노한 생도들도 갖고 있던 곤봉으로 교사를 때려 평화한 차 속은 격투장으로 변했다”면서 “이따위 선생은 일찍이 교육계로부터 쫓아 냄이 옳다는 소리가 목도(目睹)한 사람의 입으로부터 높아지는 중이더라”고 훈계했다.
5월 20일 동아일보는 9살 여아가 서울 시내 각처에서 반달동안 무려 22번이나 방화를 저지른 사건을 보도해 충격을 주었다. 문제의 여아는 집도 부모도 없어 떠돌다 서울에 올라와 한 음식점 주인에게 입양되었으나 성냥불로 불붙이는 재미가 들려 하루에도 몇 번씩 남의 집 처마밑에 불을 붙인 것이다. 여아를 붙잡은 서대문 경찰서장은 “아무리 보아도 이 어린 아이는 일종의 방화광(放火狂)인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모든 취조도 마쳤으므로 어쨌튼 일건 서류와 함께 재판소로 넘길 터이나 철 모르는 어린 아이의 일이므로 어찌 될는지는 확실히 모르나, 아마 경성부에 보호를 부탁하는 동시에 거주 제한 같은 것을 할 듯 합니다” 하더라.
아카이빙 전문매체 근대뉴스(http://www.19c.co.kr/) 제공으로 백년전 해당 기사를 소개한다.
☯ 용산(龍山)중학교 교사가 학생에게 맞아 (1924.05.19.) 매일신보
미인을 희롱하다가 생도에게 곤봉으로 맞아
수학여행의 차 속에서 남의 부녀를 희롱하다가

당당한 중학교 교사가 계집을 놀리다가 자기 제자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싸움을 일으킨 괴이한 사실이 있다. 이제 그 내용은 용산중학교의 생도 일부가 지난 16일에 수학여행 차로 개성(開城)에 갔다가 돌아오는 차 중에서, 동교 교사 모(某)가 술이 엉망으로 취하여 그 곁에 앉아있는 어떤 묘령의 미인을 가지고 희롱을 시작하였다. 이 꼴을 본 생도 일동은 그 교사에게 “수백 제자를 거느린 선생님이 더구나 제자가 보는 앞에서 이같은 아름답지 못한 짓을 함은 체면에 관계되는 일이니 그렇지 말라”고 경고하였던 바, 이 교사는 오히려 성을 내어 생도가 건방지게 교사의 일에 간섭한다 하고 2~3명을 때리므로, 그제야 생도 일동도 이 이상 암을 수 없다 하고 가졌던 몽둥이로 그 교사를 때려 평화한 차 속은 격투장으로 변해 일시는 살풍경을 이루었더라는 바, 이따위 선생은 일시라도 일찍이 교육계로부터 쫓아 냄이 옳다는 소리가 목도(目睹)한 사람의 입으로부터 높아지는 중이더라.
☯ 누(淚)의 농민, 소(笑)의 공리(公吏) (1924.05.19.) 동아일보
안성(安城) 사회
한 쪽은 생활난
한 쪽은 취흥장(醉興場)

지금 농촌 주민의 생활난은 극도에 달하여 쌀밥은 고사하고 조(粟)죽도 변변히 얻어먹지 못하여 솥 안에 든 고기(釜中之魚) 같이 죽을지 살지 모르고 고초 중에 지나는 이때에, 경기도 안성 읍내에는 요사이 술주정꾼의 싸움질이 끊일 날이 없이 일어난다는데, 이 자들은 대개 하는 일이 있든지 없든지 농민의 피와 땀으로 된 월급으로 배를 불리고 지내면서도 오히려 부족하여 밤이면 주사(酒肆) 청루(靑樓)에 출입하며 술주정으로 세월을 보낸다 하는 바, 들은 바에 의지하건대 수일 전에는 군속(郡屬)으로 다니는 모(某)가 어떤 술집에서 질탕히 놀고 취한 김에 어떤 사람에게 모욕적 언사를 쓰다가 때리고 맞고 해서 일장 풍파가 일어났는데, 그 똑똑하고 얌전한 군속 모는 그 이튿날 군청으로 찾아간 모(某)에게 대하여 백배사죄하고 말았다 하며, 이미 보도한 바와 같이 지난 15일 밤에 공립보통학교 선생 모모(某某)와 어떤 학부형 사이에 『선생으로서 요릿집에 출입하는 것이 옳으니 그르니』하여 큰 풍파가 일어나던 요리집 명월관에서 그 일이 있은 지 두어 시간 뒤에 술주정으로 이름이 높은 그곳 경찰서에 있는 송(宋)순사는 자동차 운전수 모(某)에게 술주정을 하다가 함부로 구타를 하여 피차에 상처가 난 일까지 있었다는데, 백성은 굶주려서 죽을 지경, 관리는 술에 취해 못 견딜 지경이라 하여 일반이 분개한다고. (안성)
☯ 노량에서 열린 교외 음악대회 (1924.05.19.) 조선일보

☯ 18,000원의 부동산을 정주 오산(五山)학교에 기부 (1924.05.20.) 조선일보
평안북도 선천군 전봉현(田鳳顯)씨의 공익심


평안북도 선천군 선천면 천남동 전봉현 씨는 당연 85세의 노인으로 그 소유 재산 18,000여 원 어치를 정주 오산학교에 기부하였다는데, 그는 본래 선천군 심천면 동림동에서 약간의 유전(遺傳)하는 가산으로 지내다가 우연히 실패하고 37세에 철산 차련관에서 상업에 종사하여 10년 동안에 가산이 부유하게 되었는데, 그는 평생을 근검 절약으로 지내며 재산으로 생명을 삼아 치부(致富)하기로 전력을 하던 바, 이번에는 자기의 연령이 90세에 가까워 오며 이 세상에 남은 인연이 많지 아니 함을 자각하는 동시에 우리 민족의 교육 사업은 항상 경비 곤란이 큰 장애가 되어서 진흥되지 못함을 느끼고, 그의 영랑(令郞; 아들) 전락호(田洛浩)씨로 하여금 오정은(吳鼎殷)씨를 소개하여 오산학교 교주(校主) 이승훈(李昇薰)씨에게 아래와 같은 부동산을 기부하였으므로, 그 학교 당국은 전씨의 열렬한 공익심을 감사히 여긴다 하며 장래에도 또 어떠한 공익 사업에 더욱 힘쓸지 알지 못한다더라.
기부 부동산
▲ 선천군 군산면 고부동 689번지 소재
-. 건물 와집(瓦葺) 2동 (24간) : 가격 2,400원
▲ 선천군 군산면 고부동과 용동 소재
-. 토지(답) 19,870평 : 가격 12,931원 79전
-. 전(田) 7,488평 : 가격 1,842원 20전
-. 대(垈) 1,411평 : 가격 806원 96전
-. 유지(溜池; 인공연못) 370평 : 가격 22원 10전
이상 총계 18,003원 18전
☯ 9세의 방화범 정복순(鄭福順) (1924.05.20.) 동아일보
가경(可驚)할 정복순의 괴벽(怪癖)
집도 부모도 동무도 없이
날마다 하는 일이 방화(放火)뿐

요즈음 경성부 내 일대에는 방화 사건이 빈발하여 일반 주민들은 자못 불안한 가운데서 날을 보내 왔으며, 경찰 당국에서는 이래 범인을 체포하기 위하여 각 방면으로 비상경계를 하던 중 지난 16일에야 비로소 혐의자를 인치하고 엄중히 취조한 결과, 방화범은 정복순 이라는 9살 된 여아(女兒)로 판명되었는데 그 자세한 내용을 듣건대 아래와 같다.
논산(論山) 출생의 무의(無依) 고아
천지(天地)로 집을 삼고 방화로 낙(樂)을 삼아
그 아이는 자칭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면 강경리 혹은 장기리에 본적을 두고 일정한 주소도 없고 의지할 때도 없이 돌아다니는 애달프고도 가련한 신세로 지내는 중, 금년 4월 23일경에 강경인 자기 고향을 떠나 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왔으나, 본래 아무 철없는 어린 아이라 아무 주견(主見)과 생각이 없으므로 다만 발길 가는 대로 집을 떠나 서울에 온 북순이는 어찌 할 줄을 모라 오직 길가에서 방황하여 한 많은 울음을 짓고 있던 중, 마침 시내 남대문통 4정목 28번지에서 음식점 영업을 하는 이종현(李鍾鉉)이라는 사람이 지나다가 이 어린애를 발견하고 작기 집으로 데려다가 양녀를 삼아 길러 오던 중, 이 어린애는 일찍부터 부모없이 가정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까닭인지 또는 선천적으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까닭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 4일 오전 8시경에 돌연히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고 이래 이곳 저곳으로 얻어 먹고 돌아다니며 일종의 유흥거리로 무서운 줄도 모르고 각처에 ㅎ불을 놓은 것이라더라.
방화 구획(區劃) 22곳
서대문 관내 18곳
지난 4월 30일부터 이달 16일까지 반 달 동안에 부내 전체에 방화한 곳이 전후 22군데나 되는데 이제 그곳을 정동(町洞)별로 하면
-. 봉래정 6곳
-. 중림동 6곳
-. 합동 1곳
-. 화천정 3곳
-. 어성정 4곳
-. 적선동 1곳
-. 통의동 1곳
경관 동행으로 일일이 자백
이와 같이 불을 놓기 좋아하는 복순이는 어느 곳이든지 자기가 두류(逗留)하고 있는 그 부근은 모조리 남겨 두지 않으려고 지난 16일 저녁 때에도 화천정 장수동(張壽同)의 집에도 불을 놓고, 또다시 그 이웃집으로 옮겨가서 놓으려는 것을 현장에서 체포한 것이라 하며 불놓는 방법은 성냥을 얻어 가지고 몇 번이나 불이 붙어 오를 때까지 추녀 끝이나 혹은 나무에다 불을 붙여 놓고는 재미있게 구경을 하였다는데, 위의 불 놓는 곳은 서원(署員)과 같이 다니면서 일일이 거짓없이 자기가 놓은 곳을 가르쳐 주었다더라.
처치 방법은 거주 제한
우선 경성부에 보호를 부탁
위와 같이 놀라운 방화범인 어린 계집애 정복순의 처치에 대하여 석교(石橋) 서대문 경찰서장은 말하되, “아무리 보아도 이 어린 아이는 일종의 방화광(放火狂)인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모든 취조도 마쳤으므로 어쨌튼 일건 서류와 함께 재판소로 넘길 터이나 철 모르는 어린 아이의 일이므로 어찌 될는지는 확실히 모르나, 아마 경성부에 보호를 부탁하는 동시에 거주 제한 같은 것을 할 듯 합니다.”하더라.
☯ 멸륜(滅倫) 파속(破俗) (1924.05.20.) 조선일보
재산을 탐낸 끝에
친척 고부(姑婦)를 모두 간통

충청남도 보령군 천북면 궁포리에 본적을 둔 백남순(白南淳)은 그 동리에서 어느 유부녀를 간통한 혐의를 받아 피신하여 홍성군 서부면 양곡리 358 자기의 당질(堂姪)되는 백금록(白金錄)의 집에 와서 있던 바, 백금록이가 아직 나이가 어린 것을 기화(奇貨)로 여기고 재산을 탐을 내 백금록의 조모(祖母)를 학대하며 또 백금록의 실모(實母)는 머슴과 간통하였다 하여 쫓아내고 백금록이는 어느 강습소에 가서 공부하고 보낸 후, 백금록의 처를 간통하여 배가 불러오는 고로 차차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는데, 백남순은 오히려 백금록의 조모 이성분(李成分)을 걸어 모함(謀陷)한다 고소하였으나 무사히 되고, 마침내 백금록의 고소를 만나 남녀가 모두 사실을 자백하였으나 다시 백금록의 취하로 방면되었으며, 백남순은 그래도 백금록의 재산을 넘보아 토지 서류와 백금록의 인장과 백금록의 실모 정춘월(鄭春月)의 인감증명을 가지고 많은 금전을 사기한 후 백금록의 처를 데리고 도망하려는 기미를 안 백금록의 모자는 이를 염려하여 홍성군 결성 읍내에 사는 고모(高某)에게 1천 원을 주기로 약속하고 재산의 정리를 의뢰하는 고로, 고씨는 이를 승낙하고 전후 5개월 동안에 백남순의 간계(奸計)를 방지하며 백금록의 재산을 정리하여 보호하였는 바, 백남순은 더욱 분개하여 작년 음력 12월 중에 경성으로부터 내려와서 다시 백금록의 실모 정춘월을 조용한 곳에 데려다가 비밀한 관계를 맺은 후 고모(高某)를 오히려 고소하여 20여 일이니 구금을 당하게 하였으므로, 백남순의 궁흉(窮凶) 극악(極惡)한 행동은 다시 말할 수 없거니와 고모(高某)의 실모와 처의 추악한 행실도 일반이 모두 타매(唾罵)한다더라.
☯ 죽으면 죽었지 잔소리까지 못 하고는 살 수가 없다 (1924.05.20.) 조선일보

전남 무안군 암태면 천(千) 지주는 무리한 소작료를 받으려다가 소작인들이 불납동맹(不納同盟)을 하였다고, 이것이 미워서 자기 땅에 지은 집은 방만 남기고 모조리 기경(起耕)을 하라 하며 “너희 집에 문 낼 곳이 없으니 공중으로 다리를 놓고 다니라”고 한다지. 이런 세상에도 살 수 없고, 술 취한 학생이 왜놈의 무리한 압박을 받는 것이 분하다고 하였다고 본정 경찰서에서는 이것이 배일(排日) 사상을 가진 학생이라 하여 즉시 인치 구류하였다니, 이런 세상에서도 과연 살 수 없다. 아무리 눈 가리고 귀 틀어 막고 살려고 해도 이런 일 저런 일 보기 싫고 듣기 싫어 과연 살 수가 없다. 그런 일을 보고 들을 때에 입까지 봉하고 말도 아니 하고자 하나, 죽으면 죽었지 잔소리까지 못하고는 더구나 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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