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린선생도 중태
또 한분의 양심수(良心囚)가 반세기넘게 그리던 가족을 못보고 생을 마감했다.
양심수 오기태 선생이 7일 새벽 전주에서 별세했다고 통일뉴스가 전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평소 폐가 나빠 투병생활을 해 왔다. 지난 2005년에도 급성 폐렴으로 2주간 사경을 헤매다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고인은 아내와 2남2녀가 있는 북으로 돌아가는 날만을 꿈꾸며 살아왔다.
‘통일운동가 故 오기태선생 장례위원회’에 따르면 빈소(殯所)는 전주예수병원 장례식장 201호이며, 8일 오후 6시 30분 장례식장에서 추도식을 갖고 9일 오전 9시 발인할 예정이다. 장지는 전주시 효자 공원묘지이다.
고인은 1932년 전남 신안군 임자면에서 태어났으며, 1950년 빨치산 활동을 하던 중 의용군에 입대했다.
1957년 중사로 제대, 김외식 씨와 결혼, 슬하에 춘자, 정자, 정일 등 4남매를 두었다. 함경북도 은성탄광에서 일하며 1959년 청진공산대학에 입학한 그이는 1967년부터 대남업무를 시작했다.
1969년 노동자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단기간 공작원으로 남파됐다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던중 광주에서 경찰에 발각, 생포됐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광주·전주교도소에서 복역한 그는 1989년 12월 24일, 21년을 복역한 후 강제 전향서(轉向書)를 쓰고 크리스마스 특사로 석방됐다.
출소 후 전주 ‘남문화방’에서 목수로 일한 고인은 2005년 급성폐렴으로 쓰러져 2주간 혼수상태로 있을 때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이하 송환추진위)가 구성돼 가족이 있는 북에 돌려보내줄 것을 호소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15년을 더 살았지만 끝내 그는 꿈에도 잊지 못한 가족을 못보고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전주지역에서 고인을 돌보아온 방용승 (사)전북 겨레하나 공동대표는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녘의 자식들이 보고 싶어 2차 송환을 희망했으며, 매일 아침 뒷산인 학산을 오르내리며 건강에 신경을 쓰셨다. 투병생활에도 나이에 비해 건강하셨는데 올해 추석 때 뵈었을 때 등이 굽어 기운이 떨어지신 느낌을 받았다”며 “선생님은 전북지역의 마지막 장기수인데 그렇게도 원하던 자식들을 못보고 돌아가셨다. 분단체제가 얼마나 원망스럽겠나”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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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죽기전 북으로 보내주오” (2020.12.6.)
문대통령,박종린선생 이대로 둘텐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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