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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의 강경대응 제주 4.3비극 단초”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 특강

글쓴이 : 뉴스로 날짜 : 2018-05-23 (수) 18: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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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재외동포방송편집인협회(재외편협)가 14~19일 서울과 강원 양구 제주를 순회하는 국제심포지엄 행사를 열었다. 16일 제주 서귀포 칼호텔에서 ‘4.3의 진실과 화해’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이 특강은 김석주 제민일보 편집국장의 사회로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이 진행했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이 땅에서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비극은 삼일절 우연한 사고로 시작되었다. 1947년 3월 1일 제주 북국민학교에서 삼일절 기념 제주도 대회가 열렸다. 2만 5천~3만여 명의 주민이 모인 이 날 행사를 끝낸 군중들이 가두 시위에 들어갔다. 시위대가 미군정청과 경찰서가 있던 관덕정을 지나가고 기백 명 정도의 군중이 시위행렬을 구경하고 있던 도중 사건이 하나 터졌다. 오후 2시 45분 경, 기마경찰이 타던 말의 말굽에 아이가 채었는데 경찰이 이를 모르고 지나가버린 것이다. 분노한 군중들이 경찰을 비난하며 몰려들었고 기마경찰은 황급히 도망쳤다. 군중들은 도망가는 기마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러자 경찰서에 있던 경찰들은 군중이 경찰서를 습격하는 줄 알고 관덕정 주변의 사람들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 일로 6명이 죽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는 시위에 참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사망한 6명 중 5명이 등 뒤에 총을 맞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과잉 대응(過剩 對應)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자신들의 발포를 정당화했고 3월 1일의 군중들이 경찰서를 습격하려 했다는 미확인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흘렸다. 3월 1일 저녁부터 통행금지령이 제주도에 선포됐고, 수백 명의 경찰이 육지로부터 보강 파견됐다. 여기에 3월 1일의 시위와 관련하여 여러 명이 경찰에 끌려가자 제주도의 민심은 크게 동요했다.

 

발포사건으로 격앙된 민심은 남조선로동당에게는 좋은 기회로 다가왔다. 남조선로동당은 제주도 내의 좌익 세력을 이끌면서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는 운동을 주도했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여기에 호응했다. 우익 세력들도 우려를 나타내며, 점차 경찰을 향해 광범위한 비판적 여론이 형성됐다. 3월 10일부터 중앙정부에 사과를 요구하는 총파업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관공서는 물론, 통신기관, 운송업체, 공장, 회사, 학교 등 공무원 노동자, 학생들은 일제히 파업에 참여했고, 13일까지 제주도 전역으로 퍼졌다. 심지어 66명의 제주도 출신 경찰들도 파업에 참여할 정도였다. 총파업에 참여한 직장과 사람들은 166개 기관, 41,211명이었다.

 

그러나 미군정은 철저히 이런 요구 조건을 무시해버렸다. 미군 보고서는 총파업의 원인이 3.1 발포사건에 대한 분노와 남조선로동당의 선동(煽動)에 있다고 봤지만, 제주도민 인구의 70%가 좌익단체에 동조자라며 제주도민을 좌익으로 몰았다. 파업에 참여한 66명의 경찰이 해임되고 그 자리는 육지에서 온 서북청년회 소속 사람들로 충원되었다. .

 

3월 말 총파업이 가라앉았지만 탄압은 계속되었다. 육지에서 온 경찰과 서북청년회원들을 중심으로 파업 참여자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했고 검거된 이들은 경찰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했다. 1947년 3.1 발포사건 이후부터 1948년 4월 3일까지 2500여 명이 감옥에 갇혔다. 이들을 수용하기에 제주도의 감옥은 너무 좁았고, 때문에 미군 감찰반의 보고에 따르면 약 3평 정도의 방에 35명이 갇혀 있을 지경이었다. 수용자들의 상태가 최악이었던 것처럼 감옥에 갇히지 않은 사람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지속적인 탄압을 받던 남조선로동당 제주도당은 자신들이 받는 탄압에 대해 더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싶어했고, 1948년 초부터 격렬한 찬반 논의 끝에 남로당 제주도당은 무장투쟁을 하기로 결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결정은 남로당 중앙과의 협의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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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주에서 가장 강력한 정당은 남로당이었다. 제주는 유독 남로당 세력이 월등했고 시대 분위기에 따라 탄압이 가해졌다. 48년 2월과 3월의 정세는 단독선거였다. 소련과 미국의 냉전이라는 격렬한 싸움 시작됐다. 소련 한민족이 결정하도록 하자고 했다. 그도그럴 것이 당시 사회주의 세력은 압도적이었다. 70%가 사회주의 지지했고 자본주의 10% 공산주의 10%였다.

 

1988년부터 1999년까지 제주신문은 4.3취재반을 출범시켜 11년간 기념비적인 연재에 들어갔다..<자료 참조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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