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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우연과 필연

〈오늘의 역사속으로〉 10월 26일
글쓴이 : 뉴스로 날짜 : 2026-10-27 (화) 22:31:17

〈오늘의 역사속으로〉 10월 26일



 AI 생성 이미지


어떤 날은 한 사람의 결단이 나라의 운명을 흔들고, 어떤 날은 한 시대를 뒤흔든 총성이 역사의 방향을 바꿉니다. 1597년 이순신 장군은 울돌목의 거센 물살을 이용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1909년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고, 1920년에는 만주의 청산리 일대에서 독립군의 항전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18년간 이어진 장기집권과 유신체제가 종말(終末)을 맞았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이 한날에 겹쳐 있다는 것은 역사의 기묘한 우연(偶然)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같지 않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항일투쟁과 권위주의 통치의 종식,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민주주의의 과제까지. 10월 26일은 권력과 저항, 용기와 책임을 함께 돌아보게 하는 날입니다.

 

[역사속의 주요 장면]

 

1597년 10월 26일 — 명량대첩, 열세를 딛고 지켜낸 바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전선 13척을 이끌고 전남 진도와 해남 사이의 울돌목에서 일본 수군과 맞섰습니다. 조선 수군은 칠천량 해전의 참패로 전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였습니다. 이순신은 물살이 빠르고 물길이 좁은 지형을 활용해 일본 수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큰 승리를 거뒀습니다. 명량대첩은 단순한 전투의 승리를 넘어 무너진 조선 수군의 사기를 되살리고 일본군의 서해 진출을 막아낸 전환점이었습니다. 절망적인 조건에서도 지형을 읽는 지혜와 치밀한 전략,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 안중근 의거, 침략의 심장부를 겨누다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대한제국 침략의 핵심 인물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를 저격했습니다. 이토는 을사늑약 강요와 통감부 설치 등을 통해 한국의 주권을 침해한 인물이었습니다. 안중근은 현장에서 체포된 뒤 재판을 받았으며, 옥중에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모색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식민지화로 치닫던 조국의 현실을 세계에 알린 항일투쟁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안중근이 꿈꾼 것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습니다. 침략과 지배가 아니라 국가 간 존중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평화였습니다. 그의 의거를 기억하는 일은 독립을 향한 결의와 함께 그가 남긴 평화의 문제의식까지 되새기는 일입니다.

 

1920년 10월 26일 — 청산리 전투, 독립군의 항전이 남긴 승전보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만주 지린성 청산리 일대에서는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과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을 비롯한 독립군 부대들이 일본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백운평과 어랑촌 등 여러 곳에서 이어진 전투에서 독립군은 지형을 활용한 전술과 기동력으로 일본군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청산리 전투는 봉오동 전투와 함께 한국 독립군의 대표적인 항일 무장투쟁으로 기억됩니다. 전투 이후 일본군은 간도 지역에서 한인 사회를 상대로 잔혹한 보복을 자행했고, 독립군 역시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승리의 기록 뒤에는 이름 없이 희생된 사람들과 고향을 떠나야 했던 동포들의 고통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 10·26 사건, 유신체제의 종말과 또 다른 격랑

 

서울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해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박정희는 1961년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뒤 약 18년 동안 권력을 유지했고, 1972년 유신체제를 출범시켜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했습니다. 긴급조치와 정치적 억압 속에서 민주주의와 기본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거센 제약을 받았습니다. 10·26 사건으로 유신체제는 무너졌지만, 민주주의가 곧바로 뿌리내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권력 공백 속에서 신군부가 부상했고, 이듬해 5·18 광주항쟁과 유혈 진압이라는 비극이 뒤따랐습니다. 따라서 10·26은 한 독재자의 죽음만으로 완성된 역사가 아닙니다. 권위주의의 종말과 민주주의의 미완, 그리고 이후 시민들이 감당해야 했던 새로운 투쟁을 함께 살펴야 하는 날입니다.

 

[오늘의 탄생인물]

 

최한기 (1803~1877)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사상가로, 전통적인 성리학의 틀을 넘어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새로운 학문을 추구했습니다. 서양의 과학기술과 지리학, 천문학 등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실제적인 지식과 탐구가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방대한 저술을 통해 변화하는 세계에 대응할 지적 토대를 모색한 그는 조선 후기 사상사의 중요한 인물입니다. 낯선 지식에 문을 열고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려 했던 그의 노력은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상재 (1850~1927)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사회운동가로,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민족의 자주와 계몽을 위해 힘썼습니다. 관직에 몸담았던 그는 뒤에 개화와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독립협회와 YMCA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실력을 기르고 청년을 교육하는 일에 헌신했으며, 신념과 소박한 삶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생애는 나라를 되찾는 길이 무장투쟁만이 아니라 교육과 시민의식, 공동체의 각성으로도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프랑수아 미테랑 (François Mitterrand, 1916~1996)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1981년 사회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돼 프랑스 현대정치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두 차례 대통령을 지내며 사회정책과 유럽 통합을 추진했고, 냉전 종식과 독일 통일을 둘러싼 격변의 시기를 이끌었습니다. 정치적 현실주의와 국가의 장기적 이해를 중시했던 그는 현대 유럽의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정치적 유산은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도자의 선택과 책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의 타계인물]

 

박정희 (1917~1979)

대한민국 제5~9대 대통령으로, 1961년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한 뒤 장기간 집권했습니다. 경제개발계획과 수출산업 육성을 통해 산업화의 기반을 확장했지만,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고 권력을 집중한 유신체제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크게 훼손했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그의 통치는 경제성장과 권위주의라는 상반된 유산을 남겼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산업화의 성과와 민주주의 억압을 함께 놓고 살펴야 합니다.

 

[오늘의 한마디]

 

“역사를 바꾸는 결단보다 더 어려운 일은, 그 결단이 남긴 내일에 책임지는 일이다.”

 

10월 26일은 서로 다른 의미의 총성이 역사의 갈림길을 만든 날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총성은 국권을 빼앗기던 시대에 독립의 의지를 세계에 알렸고, 김재규의 총성은 유신체제의 종말을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두 사건을 단순히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는 식민지 침략에 맞선 독립투쟁이었고, 다른 하나는 권위주의 정권 내부에서 발생해 정치적 격변을 촉발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순신과 독립군의 항전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공동체를 지키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독립 이후의 세계까지 내다보려 했던 사유(思惟)를 남겼습니다. 10·26 이후의 역사는 권력자의 퇴장만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영웅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자유와 평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오늘 우리의 책임임을 깨닫는 데 그 참뜻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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