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분단된 지 70년이 흘렀지만 통일(統一)은 문턱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통일에 대한 무관심이나 반대 여론은 늘고 있다. 통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거나 통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통일의 혜택을 듬뿍 받을 젊은 세대들 가운데 더욱 그렇다. 이를 바로잡는 데 통일문학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 문학이란 한 시대를 그리며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를 이끄는 역할까지 맡아왔기 때문이다.
문학계에서 ‘통일문학’이란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말이었을 것이다.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북한의 문학작품이 부분적으로나마 해금되면서부터다. 그러나 이 글에서 통일문학이란 분단(分斷)을 해소하거나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하거나 추구하기 위한 소설과 시를 가리킨다.
1940년대 해방정국 이후 남한에서 통일문학이 처음으로 등장한 때는 1960년대였다. 그 무렵 부흥했던 민족문학의 일환이었다. 1960년 4월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와이로 망명하자, 1950년대 초 이승만 정부를 비판하다 일본으로 쫓겨 갔던 문학자 겸 언론인 김삼규가 귀국해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해 통일논의에 불을 지폈다. 독일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도쿄에서 일본과 남한의 월간지를 통해 한반도 중립화통일론을 제기해오던 터였다. 1960년 7월 총선거를 계기로 진보적 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이 본격적으로 통일론을 전개했다. 9월엔 혁신세력을 중심으로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가 만들어졌고, 11월부터는 학생들이 동참하기 시작해 1961년 초까지 전국적으로 각 대학교 및 일부 고등학교에까지 '민족통일연맹'이 들어섰다.
4월혁명은 통일운동을 불러온 데 이어 통일문학을 낳았고, 통일문학의 선봉엔 시인 김수영이 섰다. 그는 1960년 발표한 '가다오 나가다오'에서 한반도를 분단시킨 미국과 소련 두 나라의 제국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한반도에서 즉시 철수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세를 배제하고 자주적으로, 그리고 미국식 자본주의와 소련식 사회주의에서 벗어나 중립화통일을 추구하자는 외침이었다.
1961년엔 소설가 최인훈이 나섰다. 중편소설 '광장'을 통해 그 역시 미국과 소련을 거부했다. 물론 이 작품은 한국전쟁이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와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사이의 이념 갈등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전쟁문학이다. 이와 아울러 한반도가 두 초강대국 사이에 벌어진 무력 충돌의 희생자라고 묘사하며 미국과 소련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중립화를 제시하는 통일문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은 1970년대 중반까지 네 번이나 다시 쓰였고 1980년대까지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켰던 이채로운 작품이다.
1964년 박경리가 발표한 소설 '시장과 전장'도 비슷했다. 한반도의 분단이 미국의 경솔한 계획에 따라 약탈자들의 무리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한탄하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둘 다 거부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유를 빙자하여 기업합동과 기업연합을 합리화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임금의 노예로 만들고, 공산주의 사회는 미래의 행복이라는 공허한 약속 아래 자유를 박탈(剝奪)한다며 중립화 통일을 암시했던 것이다.
1960년대 통일문학의 최고봉엔 시인 신동엽이 올랐다. 시인 김수영이 1960년대 민족문학 또는 참여문학의 씨를 뿌렸다면 신동엽이 꽃을 피운 셈이랄까. 그는 1967년 발표한 무려 5천행이 넘는 장편 서사시 '금강'에서 민족의 자주를 외치며 특히 미국이 한반도를 착취하기 위해 분단시켰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그리고 같은 해 발표한 '껍데기는 가라'에서 남북한이 중립화 통일을 이루겠다며 외세를 상징하는 ‘껍데기’와 무기를 의미하는 ‘쇠붙이’들은 한반도에서 나가달라고 호소했다. 나아가 1968년에 쓴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밤은'에서도 중립을 강조하며 통일을 기원했다.
1970년대 유신독재 때도 통일문학은 목숨을 이어갔다. 이른바 ‘저항문학’의 일환이었다. 언론을 탄압하고 대학까지 폐쇄하던 철권통치에 맞서 일단의 혁명가들은 비밀리에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했다. 남한을 미국과 일본의 ‘신식민지’로 규정하고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남한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투쟁했던 것이다. 이와 아울러 민주화운동 활동가들은 시인이 되었고 시인들은 투쟁가가 되었다. 그들은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외세에 맞서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한 투쟁의 유용한 도구로 시를 활용했다. 어떠한 종류의 정치적 집회도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기에 그들은 시를 낭송하거나 배포함으로써 정치적 견해를 표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백기완, 고은, 양성우 등이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며 많은 시를 발표했다.
1975년 초 유신체제 아래의 남한을 ‘동토 (凍土: 얼어붙은 땅)’로 비유하는 시 <겨울 공화국>을 낭독했다가 근무하던 고등학교에서 쫓겨났던 시인 양성우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해 말 500행이 넘는 장시 '노예 수첩'을 발표했다. 박정희 유신정권에서의 삶이 노예생활과 다름없다며 ‘양키들’과 ‘쪽발이들’에게 떠나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리고 백기완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잔혹한 고문을 당하며 ‘몸서리치는’고통을 고백하며 통일을 절규하는 내용의 <진술 거부>를 1979년 다음과 같이 썼다. “양놈들은 / 조국을 가르더니 / 네 놈들은 마침내 / 내 허리를 뿐질러 / ..... / 이대로 쓰러져도 통일 / 내 진술은 / 그저 통일이다 / 이놈들아.”
1980년대엔 광주항쟁을 계기로 민중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민중문학이 발달했고, 민중문학의 일환으로 반미문학과 통일문학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중운동의 세 가지 주요 목표는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외세의 지배로부터 실질적 독립을 성취하며, 외세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반도 통일을 실현하는 것이었는데, 외세는 주로 미국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대 말 ‘북한 바로 알기 운동’과 함께 전개된 통일운동은 통일문학의 전성기를 불러왔다.
먼저 소설가들은 미국의 한반도 핵무기 배치와 한미 합동군사훈련 등을 비판하며 미국을 한반도 통일을 저해하는 세력으로 묘사했다. 남정현의 '핵반응' (1988), 윤정모의 '빛' (1988)과 '고삐' (1988), 정도상의 '겨울 꽃' (1989) 등을 꼽을 수 있다. 김규동을 비롯한 18명의 작가들은 1988년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는 29편의 콩트를 써서 '임진강 흘러 하나 되리'라는 소설집으로 펴냈다.
이 가운데 윤정모의 '고삐'는 그녀를 1980년대 가장 유명한 소설가의 한 사람으로 만든 작품이다. 1990년대 초까지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1991년 한겨레신문에 의해 대학 신입생들이 읽어야 할 20권의 책에 뽑히기도 했다. 1945년 한반도 분단부터 1980년 5월 광주학살 및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에 대한 지원까지 “미국 제국의 모든 악행들”을 보여주면서,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해놓고 한반도 통일을 가로막고 있으니 미국이라는 “고삐를 끊고 당당히”나가자고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시인들 역시 미국이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해놓고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통일을 외쳤다. 대표적 시집만 몇 권 소개한다. 문익환, 고은, 문병란, 백기완, 박봉우, 조태일, 양성우, 정희성, 김준태 등 14명의 쟁쟁한 운동가 겸 시인들이 1985년 ‘해방 40년 기념’으로 “우리에게 가장 급선무는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이라며 '민중과 하나 되는 그 날까지'를 펴냈다.
김남주는 1980년대의 ‘반미문학’과 ‘통일문학’을 얘기하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다. 반미나 통일과 관련해 작품의 양으로든 내용의 강도로든 그를 앞지를 시인은 없었을 것이다. 1972년 이른바 10월유신이 선포되자 반대투쟁을 시작해, 1979년 10월 박정희가 죽기 직전 ‘남민전’사건으로 체포되어 1980년 감옥에 갇혔다가, 1988년 풀려나 1994년 세상을 뜨고 말았던 그는 자신을 시인이라기보다는 ‘전사(戰士: 싸우는 군사)’라고 간주했다. 시는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자주와 통일을 위한 그의 무기였던 셈이랄까. 그가 감옥에 있을 때인 1988년 그의 대표시집 '조국은 하나다'가 백낙청, 염무웅, 황석영에 의해 편집 출판되었는데, 여기서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반제(국주의)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에의 열망을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가장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싸우는 김남주 시인”의 “문학은 압제와 착취에 신음하는 전 세계 민중의 가장 귀중한 예술적 재보이며 자유와 해방을 지향하는 전 인류적 투쟁의 가장 빛나는 무기로 되고 있다.”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 <조국은 하나다> (1988)에서 김남주는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자신의 슬로건으로 “조국은 하나다”를 외쳤다.
1980년대 말엔 백기완이 시집 '백두산 천지' (1989)를 펴내며, 머리말에서 “분단을 틀어쥐고 있는 제국주의와 그 세력의 앞잡이”에 맞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해방통일의 어기찬 물결에 끝까지 따라 붙어 이 민중에 의한 해방통일 민족통일이 완결되는 것을 내 생애의 과업으로 다할 것임을 다시 한 번 맹세”한다고 했다. 그리고 김준태는 1989년 발표한 ≪오월에서 통일로≫라는 시집에서 같은 제목의 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우리는 가고 있다 / 무등에서 백두까지 / 오월에서 통일의 그날까지 / ..... /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 / ..... / 아, 통일과 민족해방의 나라로 / .....”
1990년대엔 이른바 ‘북핵 문제’가 불거지고 ‘북한 붕괴론’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머지않아 통일이 이루어질 것 같은 기대나 환상을 그린 소설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유정룡의 통일문제 장편소설 '오웰, 우리들의 그날' (1992), 한석청의 '아사달' (1992), 김진명의 '플루토늄의 행방' (1992)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1993), 정을병의 '제1통일공화국' (1994) 등이었다. 이 작품들은 머지않아 북한의 붕괴에 따른 남한의 흡수통일을 예상하면서도 국가연합이나 연방의 정부형태를 제시하거나 궁극적으로 중립화를 제시하기도 한 게 이채로웠다. 노태우 정부가 1989년 발표한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가운데 2단계가 ‘국가연합’이었던 데 영향을 받았던 탓일 게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및 2000년 6.15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 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증진되면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2003년 '통일문학전집'을 펴냈다고 보도되었다. 1945년부터 2000년까지 발표된 남한작가 746명의 작품 4,406편과 북한작가 258명의 작품 976편을 CD에 담아 북한자료 특수취급 인가를 받은 연구소와 도서관 등 175곳에 배포한다는 것이었다. 남북한 문화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겠다는 취지로 정부 산하단체가 북한의 문학작품까지 발굴해 자료집을 펴낸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그러나 북한을 반대하는 데 앞장서온 남한 소설가들의 작품은 실으면서도, ‘이념적 편향성’을 지닌 북한 문인들의 작품은 수록(收錄)하지 않았다니 그게 진정한 통일문학 전집이 되었는지 의문이다.
2004년엔 남북한 문인들이 만나 남북작가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에 따라 결성된 2008년 6.15민족문학인협회 기관지로 '통일문학' 창간호가 2008년 1월 출판되었다. 북한 문단은 1989년부터 ‘남조선 문학작품’과 ‘해외동포 문학작품’도 실으면서 계간 '통일문학'을 펴오던 터였다. 북한이 이의 연장선에서 2008년 6.15민족문학인협회 기관지 통일문학 창간호를 출판해 남한에 보냈는데, 국가정보원은 북한 작품들의 이념적 편향성을 문제 삼아 반입을 허락하지 않다 ‘수령’등의 표기를 지우고 배포했다고 한다. 남북한 사이의 이념 갈등을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 대목이다.
바로 여기서 통일문학의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남북한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고 이념적 차이를 줄이거나 극복하며 교류와 협력을 늘리는 가운데 평화통일을 지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문학의 역할 말이다.
맨 앞에서 썼듯이 올해 2015년 한반도가 분단된 지 70년이 흘렀지만 통일은 오히려 멀게만 느껴진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반북’을 내세우고,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종북몰이’를 해온 탓이다. 북한은 언젠가 더불어 살아야 할 형제동포라는 생각보다는 상종하지 못할 적이요 무너뜨려야 할 원수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북한 사람들이 한 핏줄 같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남한 사람들이 도와줘야 할 천덕꾸러기들이란 생각을 많이 가진 듯하다. 거지 떼를 먹여 살리려면 세금이 많이 들어야 하기 때문에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참 고약한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북한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을 추구해온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이리라. 따라서 통일에 대한 젊은이들의 무관심이나 반대를 줄일 수 있도록 분단의 심각한 폐해와 통일의 엄청난 편익을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통일문학이 필요하다. 그리고 북한의 붕괴는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만에 하나 북한이 붕괴되어 다시 만에 하나 남한에 흡수통일 되더라도 이는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거나 재앙이 되리라는 것을 예견해주는 통일문학도 필요한 때다.
나아가,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면 더욱 엄혹해진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한반도가 휩쓸리며 통일이 더욱 멀어지고 있잖은가. 특히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남한은 두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 줄을 서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며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태어나겠다며 한반도에 대한 군사개입까지 호언장담해도 어정쩡하게 지켜보고만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를 비호하는 미국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모두 분단 때문에 빚어지는 서글픈 현실이다. 바로 이 때 미국과 중국 등 외세의 영향력이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민족의 얼을 지킬 수 있는 길을 밝혀주는 통일문학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