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정원과 경찰청을 고소한다”며 “한 달에 한 번꼴로 내 정보가 털렸다”는 <시사IN> 기사를 소개한 뒤 수십 통의 격려와 지지 이메일을 받은 가운데 다양한 반응을 얻었습니다. 정신적 충격이 얼마나 컸느냐며 저 같은 순진한 사람이 그렇게 심하게 감시당했다니 소름끼친다는 얘기부터 “그것들이 아주 빨대를 꼽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한 달에 한 번밖에 도둑질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의견까지.... <시사IN>에 실린 글을 다시 기사화한 지역 신문도 있고요.
사실 저는 꼭 20년 전 교수가 된 직후부터 국정원과 경찰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아왔습니다.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이 널리 알려지던 1996년 ‘새내기 교수’가 되어 굶주리는 북녘동포에게 식량을 보내자는 대중강연을 하기 시작했는데, 강연장엔 경찰 1-2명이 꼭 참석해 열심히 들으며 메모한다는 사실을 한 경찰로부터 귀띔 받았습니다.
1997년 초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이 국정을 농단(壟斷)한다는 뉴스를 듣고 원광대신문에 “아들이 아니라 대통령이 물러날 일”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더니 이게 <중앙일보>에 “지방대 교수가 대통령 퇴진 주장”이라고 보도되더군요. 그러자 국정원에서 학교신문사에 전화해 앞으로 제 글을 싣지 말라고 부탁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한편, 1997년엔 북한이 곧 붕괴된다는 주장이 국내외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이를 주제로 학술대회가 많이 열렸습니다. 소위 북한전문가들이 북한이 몇 년 안에 붕괴(崩壞)되거나 심지어 현재 붕괴되고 있는 중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는 가운데, 저는 겁 없이 “북한 붕괴는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논문을 발표했지요. 학회가 끝나자 정보원들이 제게 다가와 혹시 운동권 출신이냐는 엉뚱한 질문을 건네기도 하더군요.
1998년 제가 함경남도-전라북도 자매결연을 추진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다는 뉴스를 한 신문이 보도하자 국정원에서 대학본부로 몇 차례 전화해 제 신상에 관해 물어봤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강의하는 북한/통일 관련 교양강좌 교재를 보내달라며 학교 수업내용에까지 뜨거운 관심을 갖는 경찰도 있었고, 제 연구실로 직접 찾아오는 형사들도 적지 않았지요.
당연히 제 수업을 염탐(廉探)하는 ‘짭새’나 ‘끄나풀’도 있었고요. 그 무렵엔 북한/통일 관련 제 교양강좌가 꽤 인기를 끌어 이 수업을 듣지 않으면 원광대 학생이 아니라거나 ‘간첩’이라는 영광스런 소문이 학교 안에 퍼져있었는데, 제가 강의실에서 얘기하는 내용이 국정원을 통해 통일부에 전해지는 것을 통일부 직원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주에 150명씩 꽉 들어찬 강의실 세 곳을 돌며 “이 가운데 정보원이나 그 앞잡이 있으면 확실히 들어라. 내 말을 상부에 보고하려면 똑바로 듣고 앞뒤 자르지 말고 제대로 보고하라”고 오히려 호통치는 객기를 부렸더니 학생들 사이에 “이재봉 교수님은 국정원에서 주시하는 유명한 분”이라는 재밌는 소문까지 덧붙여지더군요.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정보형사들이 한반도 주변정세에 관해 제 ‘조언’을 듣고 싶다며 가끔 연구실로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난 이 정권을 비판하되 조언하지 않는다며 끊기 마련이지만 찜찜해집니다.
아무튼 40대 초 ‘신출내기 교수’ 때부터 이런 일을 무수히 겪어오고 있는터에 이젠 회갑을 넘긴 ‘백발 노교수’가 그까짓 통신자료 좀 조회당했다고 쫄거나 활동을 줄이겠어요? 더 열심히 공부하며 더 많이 글쓰고 더 자주 강연하렵니다.
다만 이런 못된 짓거리를 일삼으며, 대통령선거 때는 지질하게 댓글이나 달고, 간첩을 잡기보다 조작해내며, 세월호 참사에서 자식을 잃고 단식하는 부모들 옆에서 ‘폭식’ 투쟁하는 짐승보다 못한 ‘일베 청년’들이나 ‘어버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내세우고 추한 짓을 하는 ‘어르신’들에게 아까운 세금을 퍼붓는 국정원이라면 주저 없이 해체시켜야 되지 않겠어요? 지난 4.13 총선에서 ‘국정원 해체’를 공약으로 내걸고 강남에서 출마했던 김수근 후보가 당선되지 못한 게 아쉽군요.
청년학생들과 통일강사
지난 8일 일요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에서 통일문제에 관해 강연했는데 몹시 감동스러운 자리였습니다. 요즘 어디서든 평화나 통일을 주제로 강연하면 청중 가운데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학생들이 취업도 포기하고 연애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한다는 등의 말이 나오는 터에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지 못하겠지요. 그런데 전국적으로 전공과 학년에 관계없이 모인 50명 안팎의 대학생들이 5만원 정도의 수강료까지 내고 그것도 남들은 놀거나 쉬는 날 온종일 통일문제를 공부하는 자리였던 겁니다. 더구나 이들은 강의를 듣기 전에 강사의 논문과 책을 몇 편씩 읽고 왔더군요. ‘통일경제포럼’의 ‘청년통일 아카데미’에 관심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16일 저녁엔 전주의 평화통일 교육센터에서 강연할 예정인데 여기서도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통일강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에 젊은 주부들을 중심으로 34명이나 신청했다는 겁니다. 몇 년 전 경기도에서 시작해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많이 생긴 것 같은데 지금까지 강연했던 다른 지역에서는 10명 안팎의 예비강사들만 있었거든요. 서울에서든 전주에서든 대학생들이든 주부들이든 젊은 사람들이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니 박근혜 정권이 남북 관계 진전을 가로막아도 평화와 통일이 조금이라도 앞당겨지겠지요?
5월 행사 안내
올해도 제 은사인 ‘평화학의 창시자’ 요한 갈퉁 (Johan Galtung) 교수가 한국을 방문합니다. 제주에서 5월 25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2016’에 초청받아 오는 것이지요. 비싼 돈 받고 방한하는 외국인 유명학자를 값싸게 활용하기 위해 몇 몇 학회와 연구원 등에서도 강연하도록 주선했습니다. 학자들의 세미나 이외에 일반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강연회와 대담을 소개하니 관심 있으면 공짜로 참여해보시기 바랍니다.
1) <행동하는양심 광주전남협의회> 주최 요한 갈퉁 교수 초청 강연
- 일시: 5월 28일 (토) 13:30-15:30
- 장소: 광주 시청자미디어센터 4층 대강의실 (062-650-0300 / 서구 회재로 905)
- 주제: “5월 광주와 한반도 평화”
2) <함석헌학회> 주최 요한 갈퉁 교수와의 대화
- 일시: 5월 30일 (월) 13:30-15:30
- 장소: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11층 배움터 (을지로2가 5번출구)
- 주제: “평화연구와 평화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