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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의 평화세상
1996년부터 원광대에서 주로 미국정치와 평화연구 북한사회와 통일문제 등을 강의해왔고 1999년부터 <남이랑 북이랑 더불어 살기위한 통일운동>을 전개해왔다. 2014년 현재 원광대 사회대학장 및 한중정치외교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쓰거나 번역한 책으로는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요한 갈퉁 지음) <두눈으로 보는 북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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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미국 공영방송과의 인터뷰

북한 핵.미사일 개발과 대북 제재
글쓴이 : 이재봉 날짜 : 2016-05-18 (수) 20:30:35

광주항쟁, 미국 공영방송과의 인터뷰

 

 

오늘 5월 18일, 광주학살 및 광주항쟁 36주년을 맞는군요.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받친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립니다. 저는 그 때 언론 보도대로 “폭도(暴徒)들의 난동”이라 생각했던 진짜 ‘무의식 무개념’의 대학생이었기에 ‘민주화의 죄인’으로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마음을 갖겠습니다. 전두환과 박근혜 정권은 아직도 5.18정신을 모독하고 있습니다만.

 

지난주 소개한 <함석헌학회> 주최 요한 갈퉁 교수와의 대화 장소에 관해 안내해드립니다. 5월 30일(월) 13:30-15:30 “평화연구와 평화운동”을 주제로 국가인권위원회 11층 배움터에서 진행되는데, 국가인권위원회가 작년까지 서울시청 옆에 있었지만 지금은 저동 (삼일대로)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2호선 지하철 을지로2가 5번출입구에서 1분 걸린다는군요.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2주전 이메일에서 말씀드렸듯이, 지난 5월 2일 밤 미국의 라디오방송과 인터뷰한 내용을 한글로 옮기고 살을 좀 붙여 격월간 <씨알의 소리> 5.6월호에 실었습니다. 잡지가 지난 주말 출판되었기에 공유하고자 하니 읽어보시고 좋은 의견 많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며 이재봉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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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봄 한반도 주변 정세가 몹시 불안정한 가운데 남북 관계가 너무 험악하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그리고 남한과 미국의 강력한 대북 제재 및 최대 규모의 합동군사훈련이 맞물려 한반도에서 금세 전쟁이 터질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미국과 남한의 고고도미사일방어망 (THAAD) 도입 계획엔 북한보다 중국과 러시아가 크게 반발하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도 갈등이 분출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공영방송이 어젯밤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신문.잡지엔 자주 글을 실으며 즐기지만, 방송과 인터뷰하거나 출연하는 것은 매우 꺼리는 편인데 기꺼이 응했다. 남북 관계 및 한반도 주변 정세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다른 시각으로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녹슬고 서툰 영어로 전화 인터뷰를 하는 게 좀 답답했지만 미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충 털어놨다. 살 좀 붙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첫째, 북한이 미사일 도발(挑發)을 통해 보여주려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도발’이라는 단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남한이 북한에 군사 위협을 가하는 것은 누구도 ‘도발’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편견 또는 왜곡 아닐까. 미국과 남한은 북한을 코앞에 두고 해마다 수차례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한다. 특히 올해는 두 달에 걸쳐 김정은 목베기 작전을 포함해 사상 최대 규모로 훈련했다고 한다. 바로 며칠 전 끝났다. 당신네 미국인들은 북한이 어느 나라와 무슨 합동군사훈련을 한다는 얘기를 단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전혀 없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 남한이 합동군사훈련을 벌이지 않는다면 핵무기와 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지만, 미국이 거부했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미국과 평화협정 또는 국교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협상하자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1950년부터 53년까지 3년간 전쟁하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63년 동안 정전/휴전협정을 유지하고 있는 이렇게 비정상적인 상태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소위 ‘호전적’이라는 조그만 나라는 전쟁을 법적으로도 완전히 끝내자고 줄기차게 요구하는데, 세계 평화를 지킨다는 초강대국은 한사코 평화협정을 거부하고 정전협정 고수(固守)를 외치는 이토록 역설적인 현상을 생각해보라.

 

미국은 북한이 붕괴되는 것을 바라지도 않고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서다. 중국 주변에 북한이라는 적국을 두고 있어야 그를 빌미로 급속하게 떠오르는 나라를 쉽게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시아로의 회귀 (pivot to Asia)’ 또는 ‘아시아 재균형 (Asia rebalancing)’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이유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위협을 빌미로 한반도에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을 도입하려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말해,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시험을 하는 것은 미국에 평화협정과 외교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촉구하며 치는 몸부림이다.

 

둘째, 중국도 이에 대해 불편해 하거나 반대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느냐는 물음과 함께. 물론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이 조금이라도 중국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공개적으로 반대하거나 비난하며 유엔의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위협을 빌미로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남한에 고고도미사일방어망 (THAAD)을 구축하겠다는 것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인데 이미 밝혔듯이 그 구실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 아닌가.

 

북한과 중국은 전통적으로 이와 입술처럼 가까운 관계(脣齒關係)다. 남한과 미국처럼 피로 맺어진 동맹(血盟)이기도 했다. 남한이 미국에 특히 군사적으로 종속적인 관계라면, 북한은 중국에 상대적으로 독립적이라는 게 차이다. 그런데 냉전 종식 이후 중국이 오히려 남한과 가까이 지내며 북한을 멀리하고 유엔의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에 몹시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겠는가. 아마 중국의 배반이라고 간주할 것 같다.

 

셋째, 북한에 대한 제재는 효과가 있을지 물었다. 효과를 살피려면 목적부터 따져봐야 한다. 대북 제재의 목적이 어려운 북한 경제를 옥죄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막는 게 목표라면 전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지속적으로 북한에 대해 제재해왔다. 북한은 그러한 제재 아래서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을 것이란 뜻이다.

 

또한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변하는 가운데 중국이 북한에 등을 돌릴지라도 북한 붕괴를 이끌 수 있는 제재에까지 동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정은이나 북한 체제가 좋아서가 아니라 중국 자신의 안보를 위해서다. 미국이 태평양 건너 15,000km나 떨어져 있는 남한의 안보에 신경 쓰는 정도와 중국이 압록강-백두산-두만강을 따라 1,500km나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한의 안보를 우려하는 정도가 비교라도 되겠는가. 만에 하나 북한이 무너져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게 된다면 주한미군이 중국의 코앞까지 올라갈 수 있을 텐데 중국이 그것을 가만 지켜볼 수 있을까. 북한이 아무리 미워도 중국이 북한 붕괴(崩壞)로 이어질 수 있을 정도의 제재는 가할 수 없으리라는 뜻이다.

 

넷째, 그러자 김정은에 대한 군부의 불만이나 소요(騷擾)가 없는지, 그리고 군사쿠데타의 가능성은 없는지 물었다. 나는 북한에 그런 소요가 있었다는 소문을 가끔 듣고 있다. 그러나 몹시 폐쇄된 나라의 국외자로서 그런 소문을 확인할 길은 거의 없다. 강력하게 통제되는 폐쇄 사회에서 그게 얼마나 가능할지 궁금하다. 그와 반대로 김정은이 확실하게 권력을 장악해 과거보다 더 안정된 체제를 유지한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지닌 것 같다.

 

다섯째, 그러자 미국과 남한의 군사.정보 담당자들은 북한에 관해 나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갖고 북한 붕괴를 예측하고 있지 않느냐고 따졌다. 맞다. 나는 그들처럼 북한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가질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이 무슨 정보를 어떻게 취하든 그들의 분석엔 정치적 의도가 깃들여져 있는 것 같다. 미국과 남한의 군사.정보 당국은 1990년대 초부터 북한 붕괴를 주장해왔다. 5단계 또는 7단계에 걸쳐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고, 몇 년 이내에 붕괴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으며, 심지어 지금 붕괴중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무너지지 않고 있지 않은가. 나는 1990년대부터 북한의 붕괴는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해왔다.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북한 체제의 특성 때문이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탈북자 문제와 전쟁의 가능성 때문이다.

 

여섯째, 이른바 ‘기쁨조’에 대한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북한의 소녀들(young girls)이 김정은을 비롯한 고위 권력자들에게 봉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장한다는데(be raised) 사실이냐고 물은 것이다. 두어 달 전 한 프랑스 잡지와 인터뷰할 때도 이 질문이 제기되었다. 서양인들의 호기심이랄까. 그런 소문은 오랫동안 들어왔다. 다시 얘기하건데 몹시 폐쇄된 나라의 국외자로서 그런 소문을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데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북한이 워낙 독재적이고 폐쇄적이라 그렇지 않겠는가. 따라서 미국과 남한이 대북 제재보다 북한으로 하여금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그런 불행한 현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그럼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면 된다. 북한과 둘이 대화하는 것도 좋고 기존 6자회담 틀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 직접 담판 짓는 것을 가장 선호하겠지만. 미국도 물론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전제 조건을 다는 게 문제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해야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남한에 군대를 유지하고 핵우산을 제공하며 핵무기를 실은 함정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수시로 보낸다. 그리고 남한은 20-30년 동안 북한보다 20-30배의 군사비를 써오며 미국의 첨단 무기를 엄청 사들이고 있다. 작년엔 세계 제1의 미국무기 수입국이었다. 이런 판에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먼저 포기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올까.

 

중국이 제안한 대로 미국과 북한이 서로 상대방이 먼저 행동하기를 주장할 게 아니라 둘이 동시에 하면 된다. 미국이 원하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포기 및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과 국교정상화를 같이 묶어서 협상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게 가장 바람직하면서도 아마 유일한 협상의 길일 것이다. 점점 쇠퇴(衰退)하는 미국이 급속하게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을 영원한 주적으로 삼아야 하는 정책을 바꾸기 쉽지 않은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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