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대통령 선거제도의 복잡성
미국대통령 선거과정이 꽤 복잡하다. 연방제를 바탕으로 한 특이한 간접선거(間接選擧)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연방제는 지방정부들이 안으로는 독립성과 자주성을 지니고 밖으로는 강력한 통합정부를 이루는 형태다. 미국이 1787년 연방헌법을 만들 때 각 주 대표들을 어떻게 뽑을지 합의하기 어려웠다. 인구 많은 주는 주별로 인구수에 따라 대표를 뽑자고 했는데, 적은 주는 인구크기에 관계없이 모든 주가 같은 수의 대표를 뽑자고 했다. 의회를 두 개 만들어 하원은 인구비례로 뽑은 대표들로 구성하고, 상원은 어느 주에서든 2명씩 뽑아 구성하기로 타협했다.
하원은 1929년 의원 수를 435명으로 고정시켜놓고, 10년마다 인구조사를 실시해 주별로 의원 수를 할당해 대표를 선출한다. 2020년 기준 인구 4000만 캘리포니아는 52명, 2900만 텍사스는 38명, 2200만 플로리다는 28명, 2000만 뉴욕은 26명을 뽑고, 인구가 100만도 되지 않는 와이오밍, 버몬트, 알래스카 등 6개 주는 1명씩 뽑는 식이다. 임기는 겨우 2년이다. 상원은 인구 4000만 캘리포니아에서든 60만 와이오밍에서든 50개 주에서 2명씩 의원을 선출하니 모두 100명이다. 임기는 6년이나 되는데 급격한 변화를 막기 위해 2년마다 1/3씩 뽑는다.
주별로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을 합친 수만큼 대통령 선거인단이 구성된다. 캘리포니아는 하원의원 52명과 상원의원 2명으로 54명, 알래스카는 하원의원 1명과 상원의원 2명으로 3명이 되는 식이다. 인구 70만 안팎의 워싱턴 디시는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이 전혀 없지만, 수도의 특별성을 감안해 3명의 선거인을 갖는 특혜를 갖는다. 인구가 아무리 적은 주라도 최소한 3명의 선거인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인단이 전체 하원의원 435명과 상원의원 100명을 합친 535명에 워싱턴 디시 3명을 덧붙여 538명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들 투표가 각 주별로 집계되면 단 1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가 주에 할당된 선거인을 모두 갖는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유권자 3000만 가운데 2000만이 민주당후보에게 투표하고 1000만이 공화당후보에게 투표했다면, 두 후보가 2:1로 선거인을 나눠 갖는 게 아니라 민주당후보가 선거인 54명 전부 갖는 식이다. 연방제 특성 때문이다. 각 주가 독립성과 자주성을 지니고 있어 주별로 대통령을 확정하는 것이다. 영어로 ‘winner-take-all’이라 하고, 대개 ‘승자독식(勝者獨食)’으로 번역하는데, 난 쉽게 ‘싹쓸이’라 부른다. 이에 따라, 극단적 사례로, 한 후보가 인구 많은 12개 주 국민투표에서 단 1표씩이라도 더 얻으면 나머지 38개 주에서 단 1표를 얻지 못해도 선거인 281명을 확보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 2000년과 2016년 대선에서 그랬듯, 전체 유권자의 표를 적게 받아도 선거인 다수를 확보해 대통령이 될 수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 경상도 사람들은 국힘당 지지 성향이 강하고 전라도 사람들은 민주당 지지 경향이 크듯, 미국에서도 공화당후보와 민주당후보가 지역별로 다수표를 계속 차지하는 흐름이 있다. 민주당은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에서 자주 이기고, 공화당은 텍사스와 플로리다 등에서 종종 승리하듯, 각 당에 ‘안전한 주 (safe state)’가 몇 개씩 있다. 펜실베이니아와 조지아처럼 선거 때마다 표심이 그네처럼 왔다갔다하는 ‘그네 주 (swing state)’ 또는 ‘경합주’도 있다. 선거인이 54명이나 되는 캘리포니아와 40명의 텍사스 같은 ‘안전한 주’엔 대선후보들이 거의 들르지 않고, 선거인 19명의 펜실베이니아와 16명의 조지아 등 ‘그네 주’를 뻔질나게 찾아가는 이유다.
2. 트럼프 당선자의 전쟁반대
이러한 제도와 배경을 지닌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겼다. 나는 2016년부터 그의 전쟁반대 대외정책을 좋아했다. 그가 성차별, 인종차별, 종교차별을 일삼으며 개망나니처럼 굴어도 무고한 사람들이 무수하게 살상당하는 전쟁을 단 한 번이라도 덜 벌이겠다는 게 바람직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통일.평화운동에 소박하게나마 참여해온 목적은 전쟁 가능성을 단 1%라도 낮추기 위해서다. 미국 안에 사는 내 일가친척과 친지들이 각종 차별로 불편과 고통을 겪는 것보다 미국 밖에서 전쟁으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일을 피하는 게 더 절실하지 않은가. 트럼프가 자유를 중시하는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건 아쉽고 안타까울지라도, 전쟁을 일삼는 제국주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건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내가 즐겨 써왔듯, 이 세상에 미국처럼 전쟁 많이 하고 전쟁 좋아하며 전쟁 잘하는 나라 없다. 전쟁으로 나라를 세우고 영토를 확장했으며, 전쟁을 통해 초강대국이 되고 세계패권을 유지해왔다. 전쟁으로 먹고살아온 것이다. 오죽하면 대통령을 지낸 카터가 2019년 당시 대통령 트럼프에게 “미국은 242년 (1776-2018) 역사에서 오직 16년간만 평화를 즐기며 ‘세계 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 (the most warlike nation in the history of the world)’가 되었다”고 말했겠는가.
세계 여기저기에 군사기지를 만들어 군사동맹을 맺고 국제문제에 적극 개입하며 걸핏하면 무력침공을 일삼아온 미국에 2016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하고, 군사동맹을 경시하며 해외파병을 자제하고, 미국이 직접 침공당하지 않는 한 전쟁을 벌이지 않으며, 세계문제에 대한 개입과 간섭을 줄이고 국내문제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트럼프가 대선에 뛰어들어 당선된 것이다.
트럼프가 2017년 집권 초기엔 북한 김정은과 서로 ‘핵 단추 (nuclear button)’를 자랑하고, ‘불과 분노 (fire and fury)’로 위협하며, ‘코피 터뜨리기 (bloody nose)’라는 정밀타격(精密打擊)을 구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6월 사상 최초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70년 이상 지속돼온 두 나라 적대관계를 끊고 한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자고 합의했다. 2019년 2월 두 번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진전을 이루지 못했지만, 트럼프는 김정은과 ‘연애편지 (love letter)’를 주고받으며 북한과 군사적 갈등과 긴장을 높이지는 않았다.
그가 8년 후 2024년 대선에 다시 뛰어들어 지난 7월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현대 최초의 대통령이었습니다.... 난 전쟁하지 않아요. 내가 물리쳤던 이슬람국가 (ISIS)와의 전쟁 말고는 전쟁하지 않았는데, 그건 이미 시작된 전쟁이었습니다. 우리는 전쟁하지 않았어요. 나는 전화 한 통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오직 전화 한 통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었어요.” 그리고 북한 지도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북한 김정은과 매우 잘 지냈습니다. 그와 매우 잘 지냈어요. 내가 그렇게 말할 때 언론은 몹시 싫어했지요. 알다시피 많은 핵무기를 가졌든 아니든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습니다. 옛날엔 그게 멋진 일이라고 말했을 거에요. 지금은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난 그와 잘 지냈고 우리는 북한으로부터의 미사일 발사를 막았습니다. 이제 북한은 다시 사나워지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다시 집권하면 난 그와 잘 지낼 겁니다. 그도 나를 다시 보고 싶어하겠지요. 진실을 말한다면, 그가 날 그리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11월 5일 대선 개표에서 선거인단 과반수 270명을 확보하자마자 부리나케 당선연설을 하며, “우리는 4년간 전쟁하지 않았습니다. 전쟁하지 않았어요.... 나는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겁니다. 전쟁을 멈출 거에요 (we had no wars four years. We had no wars.... I'm not going to start a war. I'm going to stop wars)“라고 거듭 공언했다.

이 글을 쓰는 11월 9일 대선 개표가 끝났다. 선거인 538명 가운데 트럼프가 312명, 해리스가 226명 확보했으니 여론조사.언론.전문가 등의 예상과 크게 달리 트럼프가 압승(壓勝)을 거두었다. 이와 함께 상원 선거에서는 공화당 52명, 민주당 46명 당선 확정으로 공화당이 다수당 됐고, 하원 선거에서는 공화당 213명, 민주당 202명이 결정돼 나머지 20명 중 공화당이 5명 이상 추가하면 다수당 된다. 트럼프의 전쟁반대 정책이 의회의 큰 반대.지장 없이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2017-21년 집권할 때 우리 귀에 익숙했던 존 볼턴 등 이른바 ‘호전적 네오콘’들은 이미 트럼프 곁을 떠났기에 그의 전쟁반대 행보에 내부 걸림돌도 사라졌다. 그가 사기꾼이나 정신병자 같고 대선에 더 이상 나올 수 없으니 어떤 공약이든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비판이 많지만, 나는 그가 목메다시피 원했던 노벨평화상을 의식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과 중동에서의 전쟁뿐만 아니라 70여년 지속돼온 미국-북한 전쟁을 끝내는 데도 힘쓰리라 기대한다.
물론 한반도 전쟁을 끝내려면 북미관계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도 진전돼야 하는데, 트럼프의 전쟁반대 정책에 남한의 자주성이 덧붙여져야 한다. 참고로, 트럼프는 2018년 6월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자고 합의했다. 문재인 역시 2018년 4월과 9월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경의선 연결, 전쟁 종식 등을 합의했다. 이에 따라 남한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經濟制裁)를 풀려고 하자, 트럼프는 2018년 10월 “남한은 미국 승인 없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 승인 없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They won't do it without our approval. They do nothing without our approval)"고 했다. 남한이 미국에 얼마나 의존적.종속적이고, 미국은 남한을 얼마나 경시.무시하면 이렇게 기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막말했겠는가. 문재인이 김정은과 세 번이나 만나 온갖 합의를 하고도 임기 끝날 때까지 하나도 지키지 못해 김정은에게 거칠게 비난당한 이유다.
앞으로 트럼프가 취임하면 이미 밝힌 대로 남한에게 주한미군 방위비를 훨씬 더 많이 부담하라고 압박할 텐데, 남한은 조금만 깎아달라며 굽실거리기 십상이다. 주한미군이 1980년대까지는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있었을지라도, 1990년대부터는 중국을 견제.봉쇄하기 위해 있으니, 오히려 미국이 방위비 전체를 내든지 아니면 철수하라고 큰소리칠 수 없을까. 남한은 세계 약 200개 나라 가운데 경제력 12위 안팎, 군사력 6위 정도의 국력을 갖춘 강국이다. 미국 없이는 살기 어렵다는 노예근성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지녀야, 미국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며 진정한 평화와 통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 이 글은 내가 2024년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하는 ‘미국 제대로 알기’ 공부모임에서 강의한 내용, 11월 7일 <인천 생명평화포럼>이 주최한 ‘미국대통령 당선자와 한반도 평화’에서 강연한 내용, 11월 8일 서울 <K-평화.통일연대>와 <한국기독교 평화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한반도평화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본 칼럼은 <통일코리아> 2024년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 이재봉 /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