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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대학 종합정책학부 교수. 전공은 정치 커뮤니케이션, 인터넷 선거. 한양대학교 수학과 졸업. 한국기자협회 편집국 차장을 거쳐서 2000년 일본 게이오대 정책미디어 연구과 입학. 2008년 정책미디어 박사 취득. 국사관, 중앙대, 전수대학 강사, 2008년 게이오대 COE 연구원을 거쳐 2011년부터 현직.2002년 대통령선거 민주당 선거캠프 연설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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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日王)의 정년(停年)

참정권 없는 왕족
글쓴이 : 이홍천 날짜 : 2016-08-28 (일) 01:36:57

 

지난 8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서 생전퇴위를 시사하는 의사를 밝혔다. 이미 한 달 전부터 예고된 일이어서 새삼스럽게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일본 언론은 물론 전 세계의 언론이 주요 뉴스로 다뤘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일왕의 메시지는 지난해 12월의 생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수상 관저(官邸)를 비롯한 정부여당과 조정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아서 생전퇴위 의사는 밝히지 못하고 “나이가 든 것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고, 행사 때는 순서를 틀리는 일도 있었다”고 발언하는데 그쳤다.

 

일왕의 비디오 메시지 이후 일본 언론들도 이에 동조하는 논조가 대부분이다. 일왕의 지인들과 주변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건강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생전퇴위를 당연시하려는 여론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을 포함해서 일부 언론들은 일왕의 생전퇴위와 여성 일왕제에 대한 국민들의 긍정적인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해 일왕의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왕의 이번 비디오 메시지는 일본 사회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가.

 

첫번째는 일왕의 정년제에 대한 문제다. 일반 국민들은 60세나 65세가 되면 현역에서 물러나는 정년(停年)을 맞이한다. 물론 고령화 사회에서 70세까지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일정 연령이 되면 경제적인 활동을 멈추게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의 상징인 일왕에 대해서는 이런 규정이 적용되고 있지 않다.

 

일왕의 지위와 기능 활동은 일본국 헌법과 왕실전범에 규정되어 있다. 일본국 헌법 제1조 “일왕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지닌 일본 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고 일왕의 지위를 규정하고 있다. 제2조부터 7조는 일왕의 기능을 명시하고 있다. 왕위계승과 섭정에 관한 상세한 규정은 왕실전범(王室典範)이라는 법령에서 언급하고 있다. 헌법과 법률은 일왕의 재임 기간을 종신제(終身制)로 규정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새로운 일왕의 즉위는 전 일왕의 서거와 새로운 연호의 시작과 맞물려 있다. 현 아키히토 일왕은 부황 히로히토(裕仁) 쇼와(昭和) 일왕이 서거한 1989년 1월에 즉위했다. 즉위와 동시에 연호가 헤이세(平成)로 바뀌었고 올해로 28년째를 맞이한다.

 

요미우리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80%가 생전퇴위를 위한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해 일왕의 의사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60%가 생전퇴위가 일회적인 방법보다는 제도화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질문에서 생전퇴위를 정년제라는 말로 바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여성 일왕에 대해서는 72%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언론은 “일왕 생전퇴위 표명”이라는 제목을 달아서 보도했지만, 비디오 메시지에서 일왕은 한 번도 이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일본국 헌법은 일왕의 정치적인 기능을 일체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전퇴위”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법률개정은 물론,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정치적인 활동이 되기 때문이다. 일왕이 자신의 속내를 에둘러 건강과 고령화 문제로 표현한 것도 이같은 이유다.

 

고령화 사회인 일본에서 고령자들이 사회·경제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법령에 정해진 업무들을 종신제로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두번째는 이번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서 일본 일왕은 일본국 헌법의 규정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정에 관한 일왕의 모든 활동은 내각의 동의와 조언을 얻어야만 하는 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내각이 외교관계에 일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다. 또 일왕을 비롯한 왕족은 헌법상 상징적인 존재라는 이유로 국민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참정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퇴위가 제도화되려면 헌법과 왕실전범의 개정 등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생존퇴위는 법을 개정하는 것으로 해결될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논의가 구체화 되면 고이즈미(小泉) 정권 시절 본격적으로 검토한 바 있는 여성 일왕제 문제도 같이 검토되지 않을 수 없다. 일왕의 비디오 메시지로 아베 정권의 개헌 논의가 지장을 받을 것이라는 정치적인 해석도 있다.

 

평화주의자인 일왕이 자유로운 여생을 영위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일왕의 낮은 목소리에 담겨져 있는 진정한 속마음을 알아차리는 혜안(慧眼)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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