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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당신을 죽여버리겠소”

글쓴이 : 김중산 날짜 : 2015-12-16 (수) 13:49:15

 

19422월 미국무부 극동문제 담당 국장인 윌리엄 랭든이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안을 입안하여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랭든은 후일 존 하지 남한 미점령군 사령관의 정치고문이 된다)

 

랭든은 미국이 국제사회에 한국신탁통치안을 제안하게 된 취지(趣旨)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이웃 강대국들의 지배와 40여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사람들 대부분이 문맹인으로 경제적으로도 너무 낙후되어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자신의 정부를 직접 운영해본 경험이 없는 민족으로 일본 식민지배로부터 해방이 되더라도 연합국이 공동관리하는 신탁통치하에서 일정기간 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원칙과 절차를 익히고 배워 한국사람들 스스로 나라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적인 독립국가를 다스릴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일제의 엄혹(嚴酷)한 식민 통치하에서 신음하던 한국사람들은 미국의 신탁통치안에 환호했다. 일본의 야만적인 식민지배로부터 한국사람을 해방시켜 민주적인 독립국가를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보호해주자는 데 한국사람으로서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안을 제안하게된 근본적인 목적은, 신탁통치하에 연합국이 한반도를 공동관리할 경우 연합국인 자유중국과 영국 그리고 소련 중에 미국의 동맹국인 자유중국과 영국이 식민통치 과정에서 자연히 미국을 지원하게 될 것으로 결국은 신탁통치를 통해 미국이 한반도를 독점 지배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같은 제안을 했을 뿐이다.

 

19431029일 모스크바에서 미국을 포함한 영국, 소련 등 3국 외상이 참석한 회담에서 미국무장관 코델 헐이 전후 한반도에서 시행될 미국의 신탁통치안에 대해 소개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미국의 동맹국인 영국 외상 안토니 이든은 반대를 하고, 당연히 반대할 줄로 알았던 소련 외상 몰로토프는 좀 더 연구와 협의가 필요한 문제이나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지지를 표명한다. 한편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연합국의 일원이자 미국의 동맹국인 자유중국마저도 미국의 제안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장개석 총통은 한술 더떠 전후 즉각적인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는 연합국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할 것을 주장한다. 미국으로서는 결국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꼴이 되고 만것이다.

 

1943121일 발표된 카이로 선언에는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안에 대한 연합국의 이견으로 겨우 선언문 말미에 간단히 “--- 연합국은 한국사람들이 일정한 기간을 거쳐 해방이 되어 독립국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내용을 발표한 게 전부였다. 이로써 미국의 신탁통치안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 되고 말았다.

 

연합국의 지원 아래 신탁통치를 통해 한반도를 독점 지배하려던 당초 계획이 무산되자 이에 당황한 미국은 한반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소련의 한반도 진출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는 것뿐이란 전략적 판단에 따라 임의로 한반도 분단을 결정하고 19452월 얄타회담에서 이같은 결정을 소련에 통보하게 된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신탁통치안은 연합국뿐만 아니라 미국에 의해 분단된 한반도내에서도 찬성과 반대로 갈려 전국이 격렬한 혼란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미국의 음흉한 속내를 간파한 김구를 비롯한 우리의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급기야 19451229일 조국의 인위적인 분단과 외국군의 계속적인 점령을 반대하는 항의데모를 하도록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그들은 이땅에서 외국점령군과 친일세력을 몰아내고 오직 민주적인 통일 독립국가를 우리 손으로 세우는 것이 우리 민족의 유일한 소원이자 목적이라고 선언했다.

 

국민들의 항의데모가 남한 전체로 들불처럼 번지자 미군정은 반민족 친일경찰을 선봉(先鋒)에 세워 조직적으로 항의데모를 유혈진압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미군정은 남한의 민족주의 지도자들에게 선동하지 말라고 위협하면서 분단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한 어떤 정치활동도 철저히 규제하는 ‘Ordinance(법령) No-55No-72’란 총 81개 항의 군사제재 조치를 실시하게 된다.

  

 

194611일 미군정과 미점령군 총사령관 하지 중장은 중국에서 항일독립투쟁을 주도한 절세의 애국자이며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을 그의 집무실로 불러 세워놓고 감히 선생 면전에서 김구, 당신이 우리 점령군과 점령작전을 반대하도록 당신의 국민들을 계속해서 선동할 경우 당신을 죽여버리겠소라고 협박하기에 이른다. (다음은 관련 원문 중 일부 내용이다)

(On January 1, 1946, Gen. John R. Hodge, Commander-in-Chief of both the American Military Government and the American Occupation Command in the south of Korea, summoned Kim Koo, a top nationalist patriotic leader and ex-president of the exiled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into his office and threatened: “I will kill you if you went on instigating your peoples to revolt, or demonstrate against my occupation forces and our occupation operation in Korea.”)

해방된 자신의 조국에 돌아와서 외국점령군 사령관의 야만적인 행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민족적 굴욕감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김구 선생은 당신 같은 사람한테 이런 민족적인 치욕 (恥辱)을 당하느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는 게 낫겠다고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

(Kim Koo, who could barely controlled his emotion for an unbearable national disgrace for such an inhuman and barbarous act of the commander of a foreign occupation forces in his home country, responded to him by saying that “I’d better kill myself on your carpet than receiving this national disgrace from you.”) 


 

온 국민의 절대적인 존경과 지지를 받고 있던 불세출의 민족 지도자 김구에 대한 미점령군 사령관의 협박과 방약무인(傍若無人)한 태도는 곧 우리 약소민족에 대한 협박과 조롱이었고 선생은 결국 우리민족을 대신해 그같은 설움과 수모를 당했던 것이다. 하지로부터 죽여버리겠다는 폭언을 들은 지 불과 몇 년 뒤인 1949626일 낮 1236분 김구는 서울 경교장에서 인도의 간디가 그랬듯 동족에 의해 시해된다. 김구는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가 꾸며지고 있다는 제보를 접할 때마다 일본인도 살해하지 못했는데 어찌 동포가 위해를 가하겠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한다. 분단과 단정 수립 그리고 외국군 주둔을 결사반대했던 김구의 암살은 우리나라의 분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세력에 의해 감행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결별하기 전 김구와 호형호제하며 가깝게 지냈던 이승만은 끝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반면, 후일 이승만은 일제 땐 악질 친일파로 악명을 떨쳤고 해방 후엔 민족주의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처단하는 등 악행을 저지르다 암살당한 특무대장 김창룡의 장례식엔 보란 듯이 참석해 많은 뒷말을 남겼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1948419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연석회의에 참석차 북행길에 오르면서 삼팔선을 팔베개 삼아 누워서라도 분단을 막겠다던 만고의 애국자 김구, 그러나 하늘은 끝내 그를 외면했고 우리민족을 버렸다. 그가 서거한 후 6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일장기가 나부끼던 자리에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을 뿐, 그가 생전에 우려했던 외세에 의한 민족 분열과 분단의 고착화로 통일에 대한 기대 가능성은 세월이 흐를 수록 점점 더 희박해져 가고 있다. 친일 숭미 분단 기득권 세력의 청산(淸算) 없이는 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어쩌면 한낱 구호로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현안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지난 이틀간 남북 당국자들이 개성공단에서 8년 만에 다시 만났지만,이산가족 문제 해결이 먼저냐 아니면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 해결이 먼저냐를 놓고 티격태격 하다가 또 아무런 성과 없이 서로 얼굴만 붉힌 채 헤어졌다고 한다.

 

통일과 같은 궁극적인 문제도 아니고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 같은 지엽적인 문제 하나 제대로 풀지 못하고 번번이 판을 깨는 남북 당국자들에게 묻는다. “외세가 그어놓은 삼팔선을 국경 삼아 아무 죄없는 남북 팔천만 민족을 볼모로 도대체 언제까지 못난 짓을 되풀이 할 작정인가?”

 

김구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언 66년이 지났지만 세월의 연륜이 쌓일 수록 조국 광복과 분단 극복을 위해 아낌없이 일생을 바친 그가 더욱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민족에게 정녕 제2의 김구 같은 절세의 애국자는 다시 없을 것인가

 

 <필자주> 위 칼럼 내용 중 두 영문 패러그래프는 1993KBS가 한국현대사에 관한 특별 다큐멘터리 필름 프로그램(special documentary film program)으로 방영하여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내용으로 "Why Has Our Country Been Divided? by Seok-Gwan Hong (2001)에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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