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적...선생님이셨던 아버님은 5남매를 낳았지만 잦은 전근(이것도 추측이지만 60~70년대엔 몇년마다 주기적으로 그 주위 학교로 교육청에서 발령을 내곤 하였다)과 이사, 살림 공간 문제 등으로 네째인 나는 조부모님 댁에서 자라는 행운(?)을 갖게 됐다.
정확히 몇 살때인지 모르겠지만 밤에 요강을 사용한 기억을 떠올리면 초등학생 전이지 않았을까..등잔불을 켜고 밤 생활을 할때며..뒷간을 가려면 안방을 나와 신발을 신고 대문을 지나야 했으니 족히 25~30m는 떨어져 있었다. 밤엔 꼭 할머니께서 동행 해 주셨다. 시골에 전기가 들어오고, 집의 벽에 라디오 스피커도 달리고.. 4학년이 돼서야 부모님과 부여읍내서 살게 되었다.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조부모, 그리고 아직 장가를 안가신 작은 아버님, 머슴, 식모분들과 시골에서 자라면서 듣고, 본 그 시절의 여러 정서들이 화가로 사는 삶에 있어 적잖은 도움을 주었고, 내 그림 세계에 스며들었다. '자연'이라는 의미의 아우르는 '상'들과, 문명이라는 인위적 세계와의 동행(同行)과, 상충(相衝)으로 인한 이야기를 드러내는 나의 그림 세계이다.
우리 집에는 나무를 이용해 손수 만든 작품들이 있다. 식탁, 의자, 티테이블, 양성 의자(통나무 의잔데..여기엔 자연스럽게 남자, 여자의 성기가 은유적 모양...아니다 만지면 누구나 수긍이 가는 팬티속의 그것이 자연스럽게 앞뒤로 있다), 함지박, 접시 등등...
조부모 밑에서 자라던 시절, 연장이라는 연장은 호기심에, 아님 필요에 의해 다 섭렵(涉獵)했다. 어느 날, 톱으로 팽이를 만들려고 나무를 자르다 아뿔싸 작은 톱이 삐끗하며 부러지고 말았다..할아버지께서 식사하실 때 여지 없이 남자들끼리만 상에 앉던 그런 땐데...혼날까봐 마루에 걸터앉아 목을 빼고 할아버님의 그 어떤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작은 아버님이 나의 처지를 소상히 아뢰는 작은 목소리가 들린 후에.. "성모야 괜찮다. 어서 와 밥먹어라~" O.M.G. 그 관대하심에 그 후론 할아버님 말씀엔 ‘Yes man’, 안되면 불효손이지 아니한가...
때때로 그림 외에 뭘 만드는것 또한 좋아한다. 필요한 물건은 사서 쓰는 살림살이인데...내가 만든것 중에 오늘 식탁과 티 테이블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여러분도 원목가루를 좋아 하실게다..베니어나, MDF로 만든 가구는 처음엔 쌈박하게 보이는데 얼마 못가 그 값을 한다..그러나 원목 가구는 세월을 먹을수록 색과 함께 고상함과 품위가 있다.
식탁은 Glen Cove에 살때 토네이도로 넘어진 120년된 White Oak로(와잇 오크는 오랫동안 휘거나 뒤틀림이 적어 가구 소재로 많이 쓰인다) 2005년에 만들어졌고, 티 테이블은 역시 White Oak로 2017년에 만들었는데 칼라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식탁은 Polyurethane, 티 테이블은 Penetrating Wood Stain을 칠해서 다른 색으로 보인다.
식탁은 보다시피 넓은데도 불구하고 120년, 티 테이블은 더 좁은데도 200년이 넘는다...이유는 다들 아실거다. 120년 짜린 고생 않고 좋은 조건에서 크고, 200년 얘는 추운데서 자라 그렇다.
내가 옆에 가까이 놓고 보는 이 티테이블 녀석..???? 에고 증조 할아버님이 살아계셔도 그보다 더 나이가 많으시네.....Wow. 이 테이블님을 가까이 하며 겸허, 겸손하려 함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조성모의 Along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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