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올레여행자센터를 방문해 올레길 완주 메달과 인증서를 받았습니다. 센터에는 올레꾼들로 붐비고 친절한 안내자의 목소리 만큼이나 조금은 들뜬 분위기였습니다.
올레길 두 번째 완주를 서너 코스만 남겨 놓으신 올레길 선배, 안 작가님께서 여행자센터까지 안내해 기념 사진도 촬영해주셨습니다. 저에겐 올레길 뿐아니라 여행 길의 멘토 같으신 분입니다.
이제 제주의 3대 미션 중 두 가지를 이뤘습니다. 하나는 제주 해안도로 250km 자전거일주인데, 친구와 함께 또 홀로, 두 번을 했습니다. 또 하나는 올레길 425km 걷기 완주로 오늘 이룬 것입니다.
이제 남은 다른 하나는 제주 370여 오름 중 과반이 넘는 200 곳의 오름 탐방하기인데 현재 60여 곳을 다녀 왔으니 140여 오름을 남겨 둔 셈입니다. 호시탐탐 제주 올 기회를 계속 엿봐야 할 이유입니다.

길 18
ㅡ 돌 담

지구 심연(深淵)에 들끓던 청춘
지금은 식어 어느 집 담장으로
말없이 배경 되어, 한 포기
자란(紫蘭)꽃과 그림 같이 사는구나
서양 어느 집 담장에 놓인
화분을 이에 비할까
따로 또 같이, 어우러진 모습
조화로운 부부 같구나
길 19
ㅡ My way
얼마 전 오후 늦게 모슬포 넓은 뜰 올레길을 걸으며 허허벌판 한 가운데서 노래를 한 곡 불렀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그랬는지 문득 노래 하고 싶어졌고 'My way'가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페북에서 2년 쯤 전에 한 약속도 기억났구요.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노래 '제망매가'를 모슬포 망망한 벌판 길을 터덜터덜 걸으며 불렀습니다.
우연히 찾아 온 희열이었습니다.
길 20
ㅡ 디지털 노마드

밤 늦은 서귀포 버스터미널 앞 정류장에 한 관광객 부부가 자신들 숙소로 가는 버스 노선을 물었습니다. 정류장엔 몇 사람이 있었으나 그들의 숙소 위치를 알지 못하니 답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는 내리는데 갈 길이 막막하자 허둥대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까워 목적지를 물어 검색했더니 정반대 방향인 북제주 쪽 한라산 중턱에 있는 모 리조트였습니다. 스마트폰을 달라고 해 카카오맵을 깔고 길찾기로 버스 노선과 환승 지점도 보여주고 저는 먼저 온 버스를 탔습니다.
세상의 길에 여행자가 되려면 디지털 노마드로 적응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앱으로 비행기 티켓, 숙소, 음식점 등을 예매 예약하고, 지도앱을 보고 버스를 타고, 걷는 길이 맞는 지도 확인합니다.
꽃과 나무를 촬영해 이름이 뭔지 확인도 하고, 걸으면서 글과 사진을 포스팅하면 친구들의 반응이 댓글로 달리고, 답글하며 교감하고, 투표도 하고 세상의 변화에 참여하며 길을 걷습니다. 무인 카페에서 기계와 소통이 되어야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시대입니다.
아날로그를 고집할 수는 있지만 미련하고 불편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떻든 변화에 적응하고 교류해야 세상의 길은 넓고 다양해지며 원하는 방향으로 수월하게 갈 수 있겠습니다.
올레길 걷느라 제주에 머무는 동안 세 분 페친을 만나 함께 하며 도움도 받고 신세도 졌습니다. SNS 가상공간에서 알게 되어 실제 악수하게 된 분들입니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지만 여행자가 되려면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길 21
ㅡ 독한 놈들

올레길 걷다 보면 바닷가 검은 현무암 틈에 눈에 확 띄게 피어 있는 노란 꽃이 있습니다. 알고보니 '등대풀꽃'인데 독한 놈들이 화려하다는 속설에 맞고 척박한 돌 틈에서도 무성하더군요.
생긴 모양은 등대가 아니라 술잔에 가까운데 일본 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잎과 줄기가 찢어지면 나오는 하얀 액체가 피부에 닿으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니 유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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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멍카페가 있던 머체왓 숲길, 좀처럼 풀들이 자라기 힘든 편백나무 숲에 나무들 사이로 범상치 않게 생긴 모습의 풀이 곳곳에 나 있더군요. '큰천남성'이란 독초인데 고요한 숲에서 멍때리며 해먹에 누워 힐링하는 곳에 독초들을 가까이 두고 힐링을 한 것이었습니다.
천남성은 조선시대 사약 재료로 쓰였을 정도로 독성이 강한데 잎을 만지기만 해도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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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에서 자라는 사상자(蛇床子)와 비슷한 갯사상자는 바닷가 바위 틈이나 모래땅에서 자라는데 '뱀의 침대'라는 의미의 이름처럼 주위에 뱀이 많고 잠을 자기도 하고 열매를 먹기도 한다니 역시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올레 길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나무, 풀, 꽃 등 식물 역시 뭍의 것들과 다른 것들이 많아 알아 가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지만 독한 것들은 주의해야 되겠습니다.
길 22
ㅡ 올라 길

에머럴드 빛 푸른 바다
젊은 낭만 바람을 타던 서퍼들
검은 흙 안고 돌아가던 돌담
올레길
고요한 소양강
바람 자는 호숫가 늘어진 카페
참나무 가득 잎을 펼친 동네 산
올라길
길은 어디에나 있고
노래 한 곡 끝날 시간이면
산 길에 들어서
걷다 보면 妄想도 나무 만큼 크고
이어지는 긴 江처럼
오늘도 느리게
느린 시간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wangl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