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절친(김순O, 85)께서 우리 옆 동에 사시는 어머니(김복O, 86)댁에 놀러 오셨다. 100여 km 거리를 두고 떨어져 사시는 두 분은 몸도 불편하시고, 이제 한 번 더 만나지도 못하고 세상을 뜨겠구나 생각하셨단다.
그 집 사위가 볼일 있어 가까이 오는 길에 모시고 왔고, 3박4일 동안 그리움을 풀며 지내시는데, 안타깝게도 서로 마지막 만남이 될 것 같은 예감(豫感)에 애틋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갔을 때는 자주 오가며 관계를 유지했으나, 수 년 전 멀어진 곳으로 자식 따라 이사 가신 뒤로는 불편하신 다리로 혼자 오시기도 힘들어 그리움만 키우셨단다.
두 분은 우리가 어릴 때 십 수 년을 옆집의 이웃으로 사셨다. 오죽하면 음식이 왔다갔다 하는 심부름도 힘들어 두 집의 벽을 헐어 통하는 문까지 내고 한 집처럼 가깝게 지냈을까.
그러다보니 서로의 살림살이와 음식의 취향까지도 훤하게 꿰고 있는 것은 물론 희노애락도 함께 했고, 멀리 있는 친척들 보다 가깝게 지낸 형제 이상의 사이였다.
두 분을 모시고 예전에 즐겨 드시던 막국수를 대접하기 위해 갔다가 서로의 전화번호를 단축번호로 입력해 드리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분을 늘 '아주머니'라고 불렀고, 가족내에서는 'OO엄마'라고 호칭했다. 그 쪽 집에서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 분을 늘 '동생'이라고, 아주머니는 어머니를 늘 '형님'이라고 부르셨다.
전화번호를 입력해 드리는 과정에서 두 분은 80대 후반의 연세로 인생을 정리하는 싯점에 이르러서야 서로의 이름 석 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순간 믿을 수 없었고 절친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두 분이 50여 년을 교류하면서 사시는 동안 서로 알 필요가 없었던 이름처럼, 자신들의 삶 보다는 OO의 엄마로서의 삶만 사셨던 것이다. 어쩌면 두 분은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나시게 될 수도 있었다. 두 분은 오로지 자식이 전부였던 것이다.
저녁 늦게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의 결말을 보다가 아내가 눈물을 훔치는데, 갑자기 두 분의 애틋한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나도 그만 터지고 말았다. 자세한 내막(內幕)을 모르던 아내는 자신 보다 더 울면 안된다며 놀렸다.
드라마는 배우 김혜자의 다음과 같은 독백으로 마무리 된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드라마는 그렇게 끝났어도 두 분의 애틋한 우정은 오래 지속되기를 빈다.
앞으로는 통화하실 때 서로 꼭 이름을 부르면서 하시라 당부드렸고 웃음으로 답하셨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