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오면 가끔 제주가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육지의 자본이 들어와 제주의 토속문화(土俗文化)와 어울리지 않는 난개발로 제주민들에게 낯선 형태의 이질적인 문화가 제주 행세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가 고향인 송일만 작가는 최근 펴낸 책, <어머니의 루이비통>에서 제주의 풍속과 문화를 자신의 삶 속에서 꺼내어 제주의 언어와 함께 정겹게 소개한다. 그가 보는 현 제주의 변화는 제주의 자연을 왜곡시키고, 사람 중심의 변화가 아닌 자본 중심의 변화로 돌이키기 힘든 제주가 될까 우려한다.
대다수 제주 토착민들은 관광도 개발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도로를 넓히기 위해 삼나무를 베어내고, 더 많은 관광객이 제주로 들어오게 하려고 제2공항을 세우기 위해 주변의 오름들을 무지막지 하게 깎아 뭉개려는 것을 진정 원하지 않는다.
COVID-19가 창궐하기 전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는 한해 2,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들고 한 때 16만 명이던 인구는 5만여 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관광객들의 도를 넘는 행태가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오버투어리즘’으로 원주민들은 “외지인은 떠나라”고 시위까지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제주는 어떤가. 아직 제주는 복잡한 공항만 벗어나 패키져들이 붐비는 일부 관광지만 아니면 한가롭고 여유 있다. 비행기와 배로 들어올 수 있는 여행객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제주는 제2공항을 추진하면서 갈등하고 분열되고 있다. 강정의 해군기지처럼 외세를 위한 공군 기지화 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10여 곳의 오름을 깎아내리고 비행장을 만들려는 계획에 경악(驚愕)하지 않을 수 없다.
억새로 뒤덮여 아름다운 '새별오름'엔 해마다 들불축제를 치르기 위해 주변에 오름의 서너 배나 되는 면적의 주차장이 있다. 제2공항이 생기고 방문객이 배로 늘어난다면 주차장도 더 늘려야 할 것인가?
2017년 제주도민의 20~30배 넘는 관광객들이 제주를 방문했고, 1,700만명이 쏟아내는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해 매립장이 가득 찼다고 한다. 그런데 제2공항을 만들어 4,000만명을 받아들일 계획이라면 각종 수용능력이 초과되고 제주도는 쓰레기섬이 될 것이다.
제주의 가치는 자연에 있고 사람들은 그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쉼 없는 자본의 증식 운동은 오름을 뭉개고, 비자림 수백년 된 고목들을 베어내면서 결국 쓰레기섬을 만드는 길로 가고있고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어제 Vincent Song 작가님을 제주에서 만났고 함께 식사하고 차 한 잔 나누면서 제주에 관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뿐 아니라 최근 쓰신 책 <어머니의 루이비통>을 함께 여행 중인 친구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작가가 가장 좋아하신다는 성산일출봉이 신비롭게 다가온 날이었다.
유민미술관
지난 제주 여행에서 성산 섭지코지에 있는 유민미술관을 들러 보았다. 콘크리트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 주변의 자연을 그대로 담아내는 '안도 타다오' 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자연과의 교감으로 미학적 기능을 구현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전시장 내부에는 19C 말부터 20C 초까지 유럽에서 일어났던 공예, 디자인 운동인 아르누보의 유리공예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으나 잘 모르기도 하고 다가오는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통로의 돌담 벽 중간을 빈 공간으로 만들어 외부의 자연이 마치 그림처럼 보였는데, 그 광경이 감동이었다.
앉아 보면 돌담 벽 사이로 성산일출봉이 보이고, 일어서 보면 금계국 노란 꽃물결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꽃과 성산봉에 안개까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건축가는 벽 중간을 뚫어 파노라마 공간을 두었을 뿐인데 그것으로 건축물 밖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마치 안에 전시하는 효과를 영악하게(?) 누리고 있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입장료 값은 했다고 생각했고, 건축가의 창의적 발상이 새삼 감동이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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