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다 바닷가 둔덕에 떨어진 걸까? 아니면
낮달맞이 꽃무리가 지는 해를 달로 착각하고 활짝 핀 것일까.
바닷가 가까이에선 기댈 언덕이 없으면 노을 사진은 다분히 심심하기 쉬운데 꽃, 돌탑이 한 몫 했다.
어제 노을을 보며 걸으려고 용두암에서 도두봉 쪽으로 올레 #17 길을 역으로 걷기 잘한 듯 싶었다.
지난 달 애월의 노을은 유채와 어우러졌고, 어제 도두의 노을은 낮달맞이와 함께 기억되겠다.
이래 저래 하루 하루 해는 넘어가는데.. 무얼 찾아 걷는 건지 아직 모르겠다.
그저 한 발 한 발 뚜벅 뚜벅 내딛으며 눈에 들어오는 자연의 경이(驚異)에 감탄 할 뿐...
길 12
ㅡ 산방산

제주 서남부엔 모슬포로부터 동쪽 4㎞ 해안에 높이 395m의 종상화산인 산방산이 있습니다.
옛날 한 포수가 한라산에 사냥을 나갔다가 잘못해서 산신의 궁둥이를 활로 쏘자 산신이 노하여 손에 잡히는 대로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 날아와 산방산이 되고 뽑힌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다는 무척 뻥이 쎈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 산방산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필름값 안 들어간다고 마구마구 찍어대는 요즘은 사진 홍수시대인데 그 쪽에서 사진 찍을 때마다 어디를 배경 삼을까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어디서든 산방산이 한 쪽 어딘가에 자리하면 구도가 쉽게 잡힙니다. 풍경사진 뿐아니라 인물사진도 한 쪽 균형을 잡아주기에 그만이지요.
사진 찍을 때 산방산이 눈에 들어 오면 어느 한 쪽에 꼭 넣는데, 사람도 꼭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산방산 같은 사람.
길 13
ㅡ 먹고 사는 일

물론 하루 세끼(삼식이) 먹는 것이야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먹느냐가 삶의 질을 규정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종일 고개를 처박고 풀 뜯어 먹느라 바쁜 말들에게 뭣이 중헐까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이 고고하게 생식을 즐기는 말과, 농기구 즐비한 마당에서 비닐 뜯고 생라면 먹듯 건초더미를 헤집어 먹는 말이 대조적입니다.
며칠 전 늦게까지 걷다 끼니를 놓치고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컵라면 대신 봉지라면 사 갖다가 뭔 펜션에 냄비가 없어 40여 년 만에 생라면을 뜯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캔맥주 안주로 제법 어울리고 배고프니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올레길 걷는 길에 낭만과 사색만 있는 게 아니라 고행도 있습니다. 횡설수설입니다.
길 14
ㅡ 밤 길

제주의 밤은 이제 귤꽃향이 지배한다
어디가 어딘 지 분간 안되는 밤 길
마치 어딘선가 향수를 제대로 쏟은 것 같다
찔레꽃은 이미 기가 죽은지 오래
뭍엔 지금 쯤 라일락이 접수했을까
떠날 날이 다가오니 향기로 붙잡는구나
길 15 ㅡ 추자도
올레길 걷기를 #18-1 추자도 코스로 완주하며 드디어 마무리 했다. 오늘은 특별하게 여행작가 안 정훈 선생님이 기꺼이 함께 해주셨다.
뿐 아니라 요즘 며칠 째 안 작가님이 머물고 계시는 중문의 펜션에 방을 내주셔서 여러가지로 신세를 지고 있다. 작가님 또한 페북으로 만나 뵙게 된 귀한 인연이시다.
안 작가님은 군 장성으로 은퇴 후 무려 2년 동안 세계 50여 나라를 여행하시고 <철부지 시니어 729일간 내 맘대로 지구 한바퀴> 여행기를 펴 내신 바 있다.
지금은 제주에 머무시며 올레길 걷기에 몰두해 코로나 기간에 체력을 증진하고 계신다. 코로나 팬데믹이 어느 정도 극복되면 다시 세계여행을 하실 계획이시란다.
언젠가 건강하게 여행하다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으시다는 소망을 말씀하신 것이 인상적이었다.

추자도는 전남 완도와 제주도 중간 쯤에 위치한 원래 전남에 속했던 섬이었으나 1914년 일제강점기에 전라도에서 제주로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단다.
현재 섬 인구는 1,800여 명으로 4개의 유인도(상추자, 하추자, 횡간도, 추포도)와 38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90%는 어업에 종사할 정도로 풍부한 수산업과 낚시가 유명하다고 한다.
추자도 올레길을 걷다보니 제주 올레길에서 늘 만나는 현무암 검은 돌들이 보이지 않고 나무 등 식생도 달라 자연적인 차이도 그렇고 원래처럼 전남에 부속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제주 올레 여행자센터에 가서 인증서와 완주기념 메달을 받아야겠다.
길 16 ㅡ 머체왓 숲길

올레길 걷기를 마치고 오늘은 그 동안 리본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인증스템프를 찾기 바빴던 발을 쉬게 하려고 '머체왓 숲길'을 찾아 왔습니다.
고요한 숲길을 따라 걷다가 편백나무 숲 속에서 조용한 음악이 흐르기에 들어가 보니 해먹이 곳곳에 매여 있는 '숲멍카페'가 있었습니다.
오늘 첫날이라 준비한 머체왓숲몸치유 프로그램을 점검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무료라며 진행하시는 분이 차와 담요도 내주시면서 숲멍을 체험하고 가시라며 조용한 피아노곡 moderato.m4a 음악까지 화일로 보내 주시더군요.
해먹에 누워 하늘을 보며 멍때립니다. 눈 감으니 여러 종류의 새 소리, 바람에 몸을 맡긴 편백나무 흔들리며 대화하는 소리, 소음에 길들여져 무딘 귀가 열리고 더불어 자연이 된 듯 합니다.
이렇게 숲에서 고요한 쉼을 하며 지금껏 걸어 온 삶에 얼마나 쉼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몸과 마음이 일체된 이렇듯 행복한 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아주 행복합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wangl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