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10시간 휴식이 끝나는 시간을 기다려 바로 출발했다. 오늘은 프리트립 인스펙션도 생략했다. 대신 저녁에 포스트 트립 인스펙션을 해야 한다. 법으로 정해진 것이라 실제 하든 안 하든 전자 로그에는 그 시간이 기록되야 한다.
원래 8시 약속인데 어제 플릿 매니저에게 9시에 도착할 수 있다고 얘기했으니 그 시간은 맞춰야 한다. 70마일 정도 거리인데 1시간 반 정도를 예상했다. 운전은 내가 했다. 애틀란타 가까이 이르자 교통이 복잡해지고 길이 막혔다. Nathan의 속은 탈 것이다. 그래도 제한속도 보다는 느리게 가라고 했다. 다행히 9시에 배달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이후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물건을 내리기 위해 트레일러를 Dock에 댈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했다.
무사히 두 번째 배달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트럭 세차장으로 향했다. 매번 짐을 싣기 전에 트레일러를 세차하는 모양이었다. 오늘 간 세차장은 주로 탱크를 세차하는 곳이었다. 트레일러 내부를 물로 씼어냈다. 비용은 50달러 였다. 나중에 회사에서 준다.
짐을 실으러 가는데 어찌된 일인지 좁은 시골길을 달린다. 나중에는 마을로 들어갔는데 좁은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시켰다. 우리 트럭에는 세 대의 GPS를 쓴다. 하나는 트럭에 기본 장착된 것. 또 하나는 퀄컴 전자 로그 시스템에 내장된 것, 다른 하나는 가민에서 만든 트럭 전용 GPS이다. 거기다 스마트폰으로 구글맵도 사용하니 총 4대의 GPS를 쓰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네비라고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GPS로 부른다. 그런데 한 대의 GPS는 아예 막힌 길을 안내하고 다른 GPS는 회전이 거의 불가능한 길을 안내했다. 유투브에 시급 600만원짜리 트럭 기사 어쩌고 하는 비디오에 나오는 첫 장면을 오늘 내가 그대로 재현해야 했다. 그런데 이건 약과였다. 거길 통과해 나오니 그 다음 길은 좌회전을 안내하는데 우회전만 허용되는 곳이다. Nathan은 그냥 좌회전 하자고 했다. 야 나는 아직 면허도 안 땄는데 티켓부터 받아야겠니? 경찰이 없기만을 바라며 좌회전을 하려는데 Nathan이 경찰이 있다며 그냥 직진하자고 했다. 그 길로 가서 좀 돌아가면 되겠거니 했는데 Nathan이 쇼핑몰로 좌회전 해서 들어가라고 했다. 들어가긴 했는데 도저히 나올 각이 안 나온다. 후진도 할 수 없고. X됐다 싶었다. 간신히 건물 뒷편으로 난 길로 해서 겨우 차를 돌려 나왔다.
물건을 싣는 곳에 갔는데 이곳에서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한참 후에 8번 Dock에 대라고 했다. 도저히 각이 안 나오는 곳이라 Nathan이 댈줄 알았는데 나보고 하란다. Nathan이 내려서 시키는대로 이리저리 좌후전후로 왔다갔다 하다보니 트레일러가 Dock에 대어져 있었다. 나는 아직도 어떤 원리로 트레일러가 후진을 하는 지 이해가 안 됐다. 운전은 몸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라 시키는대로 하긴 했다만. 트럭을 대고 앉아 있으니 옆 트럭에 있던 할배가 내려서 문을 두드린다. 뭔 일인가 싶어 열어보니 할배가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그 할배도 신입이었다. 트레이너가 더 젊었다. 2주간 8천마일을 달렸다 했다. 시애틀을 두 번 다녀왔다고. 내가 후진하느라 쩔쩔 매는 것을 보고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 나는 언제쯤이나 후진에 감이 올까? 후진 잘 하는 트럭커들 보면 존경스럽다.
다음 배달지는 프라임 본사가 있는 스프링필드다. 모레 오전 배달인데 700마일 정도니까 가능할 것이다. 오늘은 기다리느라 시간을 많이 써서 4시간 정도 밖에 운전을 할 수가 없다. Nathan이 조지아 주에 있는 트럭스탑으로 쉬어갈 곳을 정했다. 3시간 정도를 달렸다. Nathan은 하루에 한끼만 먹는데 오늘은 왜 이리 배가 고픈지 모르겠다고 했다. 트럭스탑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었다. 간신히 한 공간이 있었다. 어둡기도 하고 해서 Nathan이 댈 줄 알았는데 또 나보고 대란다. 이번에도 몇 번을 앞뒤로 오가며 간신히 댔다. 마지막에는 뒷 트럭을 살짝 박았다. Nathan이 뒤에서 멈추라고 손짓을 했는데 어두워서 보여야지 말이지. 다행히 마음씨 좋은 운전자라 그냥 넘어갔다. 다른 운전사들은 어찌도 좁은 공간에 후진을 잘도 하는지 신기했다. 나도 저런 날이 오겠지.
Nathan은 배고파 죽겠다며 밥 먹으러 가자 했다. 트럭스탑에 딸린 식당 Denny's에서 나는 나초를, Nathan은 meatball 스파게티를 시켰다. 기다리는 동안 메뉴 종이 뒷면에 그림을 그려 후진의 원리를 설명했다.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음식이 나왔다. 그런데 Nathan은 먹고 나서 두 접시를 더 시키는 것이었다. 아 왜 한끼만 먹는지 이해가 됐다. 배가 터질 정도로 배불리 먹고 나서 Nathan은 기분이 좋았는지 말이 많아졌다. 스파게티에 얽힌 추억도 얘기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트럭에 돌아와서는 그래도 프리트립 연습을 했다. 이제 대충 절반 정도는 외운다. Nathan은 태어나자마자 한국에 와서 2년을 살았다고 했다. 그 다음은 독일로 갔단다. Nathan 엄마가 당시 21살 정도였는데 보모도 있고 해서 그런지 한국말을 조금 한다고 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비교적 정확한 발음을 했다. 또 다른 한국말을 했는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유추(類推)가 안 됐다.
Nathan은 평소 조신한 태도와는 달리 오늘은 웃통도 훌렁 벗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술이 아니라 스파게티에도 사람이 취하는구나.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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